데이빗 보위는 지금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2016.01.18
2016년 1월 10일 데이빗 보위가 죽었다. 69번째 생일에 마지막 앨범 ★([Blackstar])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이었다. 그 직전에 카네기홀은 오는 3월 루츠, 페리 패럴, 신디 로퍼 등이 참여하는 트리뷰트 공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공식적인 사망 발표가 나온 월요일, 데이빗 보위의 이름이 검색 차트에 등장했고, ‘글램록의 대부’ 같은 예측 가능한 수식과 설명의 추모 기사가 줄을 이었다. 사실 그가 살아 있던 시절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는 1970년대 어느 무렵 성정체성의 경계를 흐리고, 화려한 분장과 의상으로 인기를 누린 록음악 장르의 살아남은 대표자 정도로 여겨졌다.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록이 그 맥락과 의미를 모두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특정 장르의 개척자이자 역사적인 성과를 남긴 전설이었지만, 그 이상의 현재성을 지닌 존재였다.

존 레논이 지적한 것처럼 1970년대 초 보위의 음악은 ‘립스틱을 바른 로큰롤’이었다. 하지만 그 립스틱은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960년대 말 개인적으로 익히고 배운 무용, 연극, 마임, 전위예술이 예술적 발화를 이끌어내고, 음악 활동 이후 만난 마크 볼란, 이기 팝, 루 리드 등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만들어낸 팝 음악의 최전선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넓고 민감한 취향을 대중의 영역으로 삼을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를 소개하기 전 [Hunky Dory]에서 밥 딜런, 앤디 워홀,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호명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선언했다.

보위의 정신적 건강문제로 ‘지기’는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위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다. 1975년 [Young Americans]에서 소울 음악을 선보이며 당시 흑인음악 중심의 버라이어티 쇼 [Soul Train]에 출연한 많지 않은 백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직후 [Station to Station]이라는 중도적 걸작을 거쳐 [Low], [Heroes], [Lodger]로 이어지는 전설적인 ‘베를린 3부작’으로 나아갔다.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만든 석 장의 앨범은 크라프트베르크와 노이 같은 독일 크라우트록 밴드의 영향을 받아 과거 프로그래시브의 방법론을 넘어 개념적이며 미니멀한, 새로운 시대의 실험적인 록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마무리와 동시에 자신의 음악적 근원인 록앤롤로 돌아가 1980년 [Scary Monsters]를 만들었다.

이 5년 사이 데이빗 보위는 예언적 존재마저 됐다. 보위는 자신을 이방인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패션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음악적 방법을 탐구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펑크(punk) 이전의 펑크적인 태도였고, 펑크의 붐이 불면서 그는 ‘립스틱을 바른 로큰롤’을 할 때보다 더욱 전복적인, 펑크의 시대에 이미 ‘포스트-펑크’의 방향성을 제시한 뮤지션이 됐다. 그 이후 보위가 지지부진하거나 일렉트로닉, 인더스트리얼 등의 추세를 쫓아가는 면모를 보였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록음악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포스트-펑크’라는 단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시작에 데이빗 보위 말고 다른 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1960년대에 데뷔한 뮤지션 중 보위처럼 2015년의 음악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진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뮤지션은 극히 드물다. 그는 정말로 지구인에게 우주의 미래가 담긴 음악을 전해주고 떠난 외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위가 2013년 10년 만의 앨범을 발매하며 돌아왔던 것처럼, 사망 소식 역시 아무런 힌트나 예고는 없었다. 하지만 곧 그가 지난 18개월 동안 암과 싸워왔으며,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 마지막 앨범 작업을 마쳤다는 것도 알려졌다. 보위의 오랜 동료이자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그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가장 완벽하게” 해내길 원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예술적 활동의 일환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마지막 앨범은 일종의 선물이 되었다. 관객은 무대를 예감할 수 있으나 준비할 수 없다. 오직 무대에 오르는 자만이 준비한다. 보위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그의 죽음은 정말 순수하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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