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알아야 지지 않는다

2016.01.15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야당 의원들과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보육비 지원 사업) 예산을 누가 책임질지가 문제였다. “누리과정은 중앙정부가 약속한 대로 짊어져야 되는 것”, “말씀하신 대로 최종적인 책임은 국가가 지고”,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 아닙니까?”, “전반적으로 국가가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름이 없습니다.” 

야당은 집요하게 ‘중앙정부’라고 쓰고, 황우여 장관은 고집스레 ‘국가’라고 쓴다. 핵심은 누가 돈을 내느냐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내도록 했다. 교육청도 어쨌거나 국가기관이니 포괄적 의미로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맞다. 반대로 야당은 누리과정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중앙정부 예산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맥락에서 ‘중앙정부’는 교육청과 별개의 책임 주체다.

중앙정부는 내국세 수입의 20.27%를 교육청에 보낸다. 마음이 착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주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교육감은 이 돈에서 교사 월급 등 고정지출을 빼고 남는 돈으로 자기 정책을 펼쳐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대통령 공약을 이 돈에서 감당하라고 한다. 말을 듣지 않자 ‘누리과정 책임은 교육청’이라고 시행령을 만든 후 “안 지키면 법령 위반”이라고 윽박지른다. 교육청은 당연히 반발한다. 이게 매년 반복되는 보육대란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퇴임 직전인 1월 5일에도 “누리과정 예산에 쓰라고 돈을 보냈는데 편성을 못 한다는 것은 법령 위반”이라며 교육청을 압박했다. 궤변이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대선 후보들은, 중앙정부가 일단 거둬들인 후 나누게 되어 있는 지방정부 예산과 교육청 예산을 제 주머니처럼 베팅할 수 있다. 화려한 공약을 내고, 재원은 어차피 중앙정부에게는 ‘남의 돈’인 지방재정으로 돌린다. 대통령은 중앙정부 재정 한 푼 안 들이고 생색을 낼 수 있다.

미국 독립 혁명의 지도자들이 일찍이 설파했듯이, 시민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정부는 너무나 간단히 나빠진다. 권력 작동의 원리를 이해하는 시민이 많아야 정부도 좋아진다. 돈의 배분, 그러니까 재정은 그중에서도 핵심 축이다. 고려대 김태일 교수가 쓴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재정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의 부제는 ‘누구나 알아야 할 재정 이야기’다. 좋은 정부를 갖고 싶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알아야 할’이라는 수사가 과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왜 세금을 걷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출발해, 정부와 시장의 역할 분담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거쳐서, 한국 사회가 맞이할 미래에 어울리는 재정전략까지, 재정이라는 키워드를 대중 눈높이로 쾌속 일주한다. 우리는 고기 한 근을 사면서도 가격비교를 하는 꼼꼼한 소비자이지만, 그와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한 ‘세금으로 내고 재정으로 돌려받는 거래’에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이것만 달라져도 우리는 좋은 정부, 적어도 주권자에게 궤변을 늘어놓지 않는 정부를 가질 수 있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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