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응답하라 1988], ‘남편찾기’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16.01.13
tvN [응답하라 1988]은 17회에서 1994년으로 6년을 건너뛰었다. 그러나 정환(류준열)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덕선(혜리)을 좋아하고, 여전히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망설이다 역시 덕선을 좋아하는 택(박보검)에게 자신의 말처럼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1988년 덕선에게 결국 고백하지 못한 마음은 1994년에 고백을 농담으로 돌리는 것으로 끝났다. 6년 동안 누구와도 사귀지 않을 만큼 깊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은 6년 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1997, 1994, 1988로 이어지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물들은 모두 10대처럼 사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그중 누군가 갑자기 첫사랑이 된 것에 혼란스러워한다. 정환이 좁은 골목길에서 덕선과 몸이 닿거나 택이 덕선을 안아 들었을 때처럼, 감정은 예상치 못한 육체적 접촉이 반복되면서 자각된다. 고교생부터 20대 초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어색하지 않고, 그만큼 설렘을 전달하기 좋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아이들은 6년 사이 사회에 나갔다. 덕선과 택은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고도 했고, 헤어진 선우(고경표)와 보라(류혜영)는 그리움만큼 아팠다. 그러나 그들은 6년 뒤에도 정환처럼 고백을 농담으로 얼버무리거나, 보라처럼 선우를 만날 “1%”의 확률에 기대 선우와 같은 과 학생과 소개팅을 한다. 그들은 어른이 됐지만, [응답하라 1988]은 그 시간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6년 전으로 리셋한다.  

청소년이 고민하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이것은 청춘의 시간을 삭제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6년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됐지만, 정서적으로 여전히 10대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누가 다치거나, 의도치 않은 로맨틱한 상황이 와야 자각된다. 20대 중반이 된 덕선이 ‘남편찾기’를 하는 순간에도 10대와 같은 순수함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다. 대신 정환이나 보라처럼 자신의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타이밍”과 “1%”의 확률에 기대 마음을 전할 뿐, 이런 요소가 중요해지는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고 표현하지 못한다. 그들이 6년 후에도 마치 어제처럼 6년 전과 같은 방식의 사랑을 하면서, [응답하라 1988]은 캐릭터의 감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청춘의 성장이 사라진 세계에서 캐릭터의 멜로는 10대 시절의 도돌이표를 그린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는 이 지점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대 중반이 되어도 감정 표현에 서투른 그들은 결혼을 해야 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결혼을 통해 그들은 10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끝내고 안정을 얻을 수 있다. 2016년에 중년이 된 덕선과 그의 남편은 그의 부모들처럼 편안한 관계가 돼 대화한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처럼 자식을 위한 삶을 살 것이다. 덕선이 아버지 동일(성동일)에게 그의 꿈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식들이 잘되는 것’이라 말한다. 다른 아버지들 역시 자신의 한때 꿈을 포기하고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란다. 10대와 부모는 있다. 하지만 청춘은 없다. 결혼과 아이 외의 선택지에 대한 고민은 10대 시절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내레이션을 하는 것은 단지 그가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 때문에 자신의 꿈을 버릴 수도 있는 그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적자다. 

[응답하라 1988]이 1994년의 풍경을 보여주는 소재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한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를 끔찍하게 아끼는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의 모습은 동일이나 정환과 비슷하다. 아직 20대 중반인 1994년에 내레이션을 통해 회고하듯 말하는 정환은, 사실상 그때 존재했던 어떤 유형의 남자에 대한 회고를 위한 매개체다. 그는 현재진행형의 사랑을 하고 있지만, 1994년에 정환이었던 이들은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이 그랬듯 자신의 젊은 시절 첫사랑을 떠올릴 수 있다. 다만 [응답하라 1988]은 현재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단지 아내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10대에서 20대의 사회인으로, 다시 중년으로 가는 시기에 겪게 될 일들은 지웠다. 대신 지금의 어른들이 그때는 물론 지금도 계속될 미숙함이나 잘못도 긍정한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은 덕선의 ‘남편찾기’로 시작해 정환에 대한 이해로 끝난다. 어린 시절부터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감정표현에는 서툴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눌려 있던 남자가 온전히 이해받는다. 다시 말하면, tvN [응답하라 1997]에서 H.O.T.의 팬이었던 소녀의 일상에 대한 이해로 시작한 한 세대의 이야기는 그보다 10년 위쯤 남자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 완벽한 ‘복고’다. 특정 세대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았으니. 단, 현재로 오는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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