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속도], SF에 찾아온 불청객

2016.01.11
[조선일보] 신춘문예 관련 지면기사.

몇 년 만에 “야, 이것도 SF냐?”라는 절규를 들었다. 반갑기까지 한 비명이었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상식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다. [상식의 속도]의 내용은 이렇다. 서기 2841년, 인류는 워프항행 우주선 ‘브레이브 호’를 건조했다. 승무원들은 ‘헤드기어’라는 가상현실 체험기기를 통해 지루함을 견딘다. 하지만 ‘브레이브 호’는 상대의 외양을 복제하는 외계생명 ‘젬’을 만나 침몰하고 모습마저 빼앗긴다.

SF 식구들 사이에서 쓴 소리가 돌았다. 열다섯 번쯤 우려낸 티백 같은 소재를 종류별로 버무린 이 작품이 어떻게 독창적이라는 평으로 상을 받았냐는 것이다. 과학적 오류와 어설픈 설정에 대한 지적은 덤이었다. ‘신춘문예’라는 훈장도 달고 온 이 손님은 불청객 취급만 받았다. SF 팬덤은 자부심이 강하다. 서사와 인물에 논리성이 요구되는 만큼이나 독자들의 교양도 높고 작품에 기대하는 기준도 높다. 거기다 [인터스텔라]나 [매트릭스] 그리고 [어벤져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호령하는 작품을 선보여도 “이 명작을 ‘고작’ SF라 불러서는 안 된다”며 난데없는 시앗 취급을 받았으니, 독한 프라이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박하게 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전쟁도 사상서도 아닌 SNS와 아이폰이 세상을 뒤흔드는 이 시점에 순문학이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탐구하는 SF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필연이다. 그 결과 SF 작품이 늘어나는 일은 환영함이 옳다. 득이 되어서는 아니다. 고작 신춘문예 작품 하나 갖고 일희일비하기에 SF는 이미 충분히 잘나간다. 그저 장르의 저변이 확대되며 겪는 이런 해프닝쯤 웃어넘기자는 것이다. 팬덤의 자부심은 “이것은 SF고 저것은 SF가 아니야”라는 구분 짓기가 아니라 “이것도 SF고 저것도 SF야”라는 확장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상식의 속도]도 SF다. 오해하지 말자. 작품을 SF로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서 관대해지자는 것이 작품의 평가에 관대해지자는 말은 아니다.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새 식구가 될지 모를 사람이니 엄정하자는 다짐이다. [상식의 속도]는 SF가 아니라서 나쁜 것이 아니다. SF임에도 나쁜 것이다. 흔한 소재의 남용과 설정의 오류 탓이 아니다. 그런 사소한 항목들을 열거할 것도 없이 근본적인 문제들이 산재하다.

퀴어적 감성을 보여준다며 ‘제갈량은 게이였다’라고 말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갈량이 게이인 근거를 들겠다며 “아내가 추녀인데도 외도를 안 했네? 이 새끼 고자는 아니니까 그럼 게이구만!”이라는 식으로 저렴함을 자랑하면 좀 꺼지라고 하고 싶다. 논지의 전개가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정합성 있는 추론이 아니라 저자의 차별적 편견을 숨길 정도의 눈치조차 갖추지 못한 비약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뒤를 잇는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분석은 더욱 암담하다. 고길동과 둘리의 관계를 정신적 성장이 결여된 가족주의적 봉합으로 해석하는 저능함을 자랑하면 짜증이 난다. 둘리는 가족이 아닌 셋방살이 객식구이고 그 시절 집주인의 타박과 유세에 피가 마르던 자본주의적 애환을 담은 캐릭터다. 김수정 화백의 날선 시대정신과 간신히 울음을 집어삼키는 풍자는 한국고전 SF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명작더러 정신적 성장이 결여되었다며 혹평하는 식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해봤자 되레 무지만 자백하는 꼴이다. [상식의 속도]는 발칙하고 싶다는 민망한 갈망으로 가득하다. 자기과시에 빠져 얕은 인성과 아둔한 독해력을 솔직함과 기발함으로 착각한다.

마음이야 이해한다. SF처럼 유행도 하고 영향력도 크고 지적으로 고상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르가 부러울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동경하는 마음이 지나쳐 [상식의 속도]에 등장하는 외계인 ‘젬’마냥 타인의 외양만 베껴서는 안 된다. 얄팍한 주제의식을 감추려 서사를 뭉개고는 생소한 단어 몇 개 집어넣은 뒤 예술성이라고 포장하는 버릇부터 버려야 한다. SF는 과학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과학을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라는 말이다.

나는 SF 작가다. 내가 쓴 글들이 다 SF 팬덤에서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낙제생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SF는 내게 있어서 집과도 같다. 가끔은 애인과 모텔에 가는 것처럼 로맨스를 쓸 때도 있고 밤새 술 마시고 친구들과 PC방에 가는 것처럼 콩트를 쓸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출발한, 또 내가 돌아올 집은 SF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나를 SF 작가로 규정한다. 그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으로 머물지 가족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현관에다 신발을 대충 벗어놓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뚜껑도 닫지 않은 채 방치하는 실수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변기 커버도 올리지도 않고 서서 소변을 봐 마킹을 해놓은 뒤 주무시던 집안 어르신의 뺨을 갈겨서 깨우고는 욕설을 내뱉으며 집주인인 양 구는 모습을 반기기란 어렵다. 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여 정신적 성장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지성의 문제다.

덧. 워프항법을 문학적 상징으로 놓고 다방면으로 해석하는 시도에는 감탄했다.

dcdc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장편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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