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백석의 맛],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2016.01.08
백석은 평생 단 한 권의 시집을 냈다. 그러나 [사슴]은 2005년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선정되었고, 가장 중요한 한국 시인을 꼽을 때 그의 이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백석의 맛]은 백 년 전의 시가 지금도 가지는 호소력을 탐구하며 음식에 주목한다. 

백석처럼 미각에 집착하는 작가는 한국 문학에 없다. 100여 편의 시에 110가지 음식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곁다리가 아니라 태반이 중심 심상이다. ‘여우난골족’의 인절미·콩가루차떡·고사리, ‘가즈랑집’의 돌나물김치·도토리묵·백설기·찰복숭아, ‘박각시 오는 저녁’의 당콩밥과 가지냉국. 이 풍족한 음식을 보통은 일제 강점기의 궁핍한 생활상에 대한 역설적 상징이나 토속적 음식으로 민족 정서를 불러오기 위한 의도로 해석한다. 그러나 [백석의 맛]은 백석이라는 개인을 지우고 시대에만 초점을 맞춘 해석에 반대한다. 

백석은 1912년생이다. 옛날 사람의 옛날 시라 모르는 음식이 더 많지만 이상하게 먹음직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 말이라 무슨 소린지 긴가민가한 시어가 놀랄 만큼 좋다. 그 이유를 저자는 백석 시의 형식적 특징인 병렬과 반복을 활용한 담담한 서술에서 찾는다. 주저리주저리 설명되는 대신 건조하게 나열된 음식은 굶주림을 해결하거나 부를 과시하는 수단 이상이 된다. 시대에 얽매이는 대신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며 다른 시대의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판하던 해석들과 동일한 함정에 빠진다. 백석 시의 음식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개인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수단을 넘어 공동체의 제의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각은 개인의 주관성을 넘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얻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주관은 객관보다 당연히 열등하고, 개인은 사회보다 언제나 무의미하다. 거대 담론에 집착하는 전근대적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전근대적 여성 혐오로 이어지고 급기야 된장녀를 들먹이기에 이른다. 여자가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문화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균형의 문제다. 햄버거를 그냥 햄버거로만 보는 사람과, 야근과 비만과 가난과 어쨌거나 무언가로 끊임없이 환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 사이에서,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스스로의 편견이 전시되면서 비난하려던 대상 대신 자신이 깎아내려질 뿐이다.

음식의 힘, 언어의 힘, 아름다움의 힘.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왜 비루한 해석으로 박제하는가. 왜 시대에 옭아매는가. 그러나 이 모든 편협함 속에서도 백석의 시는 영롱하게 빛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읽고 그의 시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했다. 시는 어렵게만 여기던 내가 여러 판본 중에서도 그의 조언대로 [정본 백석 시집]을 주문했으니 그 바람은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성공한 셈인가? 한 권의 책의 존재의 이유는 결국 무엇인가 생각이 복잡해진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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