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돼지책], 엄마는 체념하며 분노한다

2015.12.18
“너희들은 돼지야.” 1986년,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그림책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폭탄을 던진다. 내 어머니가 나를, 내 형제와 내 아버지를 역겹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은유와 위트와 작위적인 해피엔딩이 충격을 완화해주긴 하지만, [돼지책]은 동심의 세계에 돌직구를 내리꽂는 작품이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사이먼, 패트릭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하루 종일 요구만 하는 세 남자 사이에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나가서 일을 한 뒤 돌아와 다시 집안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진다.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적힌 쪽지 한 장을 남겨두고.

한 가정의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는 [돼지책]이 단순한 메시지를 평범하게 전달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사람이다’라든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같은. 그러나 내 위치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서 점차 이 엄마, 피곳 부인의 분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 피곳 부인은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 피곳 씨와 두 아들이 밝은 곳에서 입을 크게 벌리며 시끄럽게 요구하는 동안, 피곳 부인은 집 안의 음지에서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피곳 부인에게도 직업이 있다. 집안일을 하고 나갔다 다른 가족들보다 일찍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파트타임 잡일 것이다. 피곳 부인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얼굴’을 잠시나마 회복하길 원해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상상한다.

피곳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 가출했다 돌아와 무릎을 꿇고 애걸하는 남편과 아들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온화한 승리감으로 빛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분노한 척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이기적인 가족들을 정말, 정말, 정말로 사랑하고, 그저 교훈을 주기 위해 며칠 집 밖에서 기다렸을 뿐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진짜 돼지가 되어버린 가족들이 자신의 경고를 제대로 이해했음을 알고, 행복한 가정의 주도권을 잡은 뒤 미래를 줄곧 평화롭게 주재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작가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피곳 부인이 어떤 사람이냐고? 그녀는 엄마다. 나의 엄마고, 당신의 엄마고, 우리가 기꺼이 소비하는 관념으로서의 엄마다. 미화되거나 매도되거나 그 둘을 동시에 겪고, 박제되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끌려 나와 굴려지는 이미지이고,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도 체념 없이 자아를 응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다. 피곳 부인은 결국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돌아왔을 것이다. 한동안은 반성하는 움직임이 있겠지만, 가족은 본질적으로 이기의 공동체인지라, 가족을 변화시키는 것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곳 부인은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다. 그녀는 만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남녀 역할의 전도가 해답이 아님은 작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 독자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해도, 이러한 결말은 한계일 수밖에 없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분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유진
10년 동안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일만 하다 보니 자신을 정의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인도신화를 소재로 한 소설 [춤추는 자들의 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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