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패밀리즘│① 동일은 좋은 아버지였나

2015.12.15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동일(성동일)은 이른바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은 따뜻한 아버지’의 전형이다. 딸들이 싸우거나 말썽을 피울 때 “염병할 년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기랄 년들 그만 싸워! 죽여 블랑께!” 같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지하철 외판원이 막내아들 노을(최성원)과 닮았다는 이유로 물건을 사주고, 부모가 제대로 된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해주지 않아 섭섭해하는 딸 덕선(혜리)에게 케이크를 사주며 “아빠도 아빠가 처음잉께 좀 봐줘”라는 말로 18년 동안 쌓인 섭섭함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러나 덕선은 단지 생일이 비슷한 첫째 보라(류혜영)와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 싫어서 화를 낸 것만은 아니었다. 공부 잘하는 언니는 물론, 아버지가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노을과는 달리 덕선은 오랫동안 차별을 받았고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동일은 덕선에게 생일 케이크를 건넬 뿐, 덕선이 화가 났던 이유를 이해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봐줘”라고 말할 뿐이다. 동일이 자식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방식은 자신의 생각대로 잘 해주는 것이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대화의 결론은 결국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된다. 동일이 딸들의 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보라. [응팔]의 학생운동은 보라에게,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의 H.O.T.는 시원(정은지)에게,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연세대 농구부는 나정(고아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동일은 시원이 좋아하는 토니를 “원숭이 새끼”라고 지칭하며 포스터를 찢어버리고, 나정이 농구선수 이상민을 좋아하는 것을 “연예인에 미친년”과 동일 선상에 두며 “미친년마냥 전국을 쏘다”닌다 말한다. 딸들은 시대에 따라 문화나 사상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지만, 동일은 그것을 늘 이상한 행동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심지어 [응사]의 동일은 프로야구팀 코치로서 어린 선수들이 좋은 선수가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런 선수를 좋아하는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딸을 사랑하지만 딸이 무엇을 원하는가는 들으려 하지 않고, 딸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소통의 방식은 결국 폭력적인 언행으로 귀결된다. [응팔]에서 동일은 보라가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네 호적에 줄 그어지면 그날로 이 집안도 다 날아가는 거”라며 그를 집에 가두고 밥도, 물도 못 먹게 한다. [응칠]에서는 토니 숙소에서 밤을 새우고 온 시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다른 인격의 신체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폭력이다. 또한 딸에게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결정권을 쥐었다. 물론 그는 딸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아내 일화(이일화)가 때려도 화를 참는다. 그러나 이는 동일이 참아주는 것일 뿐, 가족이 그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라의 학생운동처럼 동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숨죽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근본적으로 가부장제로 유지되는 가정의 주인과도 같은 위치에 있고, 이것을 잊지 않는다.

물론 1988년의 많은 아버지가 동일과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중 동일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경우도 많았을지도 모르고, 가부장제하에서 자라온 그들이 의식을 바꿔 딸과 아내를 동등한 입장에서 보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27년 후의 [응팔]이 그 아버지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내와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아내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메뉴를 시키고, 아내가 씻고, 삶고, 까고, 양념을 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꼬막무침을 해주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또한 덕선의 가정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동일이 보증을 잘못 선 것이 결정적이었고, 종종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쓰는 동일의 성격은 그들의 살림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응팔]은 일화가 이것을 “팔자”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당연하다는 듯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동일이 딸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동안 딸과 대화하고, 둘 사이를 조율하고, 빠듯한 살림까지 모두 관리하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다. 그리고 동일과 일화 부부의 이웃 미란(라미란)처럼, 어머니들은 자신이 일일이 살림을 챙기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응팔]은 아버지의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부여하고, 대신 어머니에게 ‘모성’을 바탕으로 한 희생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응팔]이 보여주는 1988년의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상이다. 여기에는 그 시대의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딸과 어머니의 입장은 없다. [응팔]은 1988년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지만, 거기에는 절반의 목소리가 생략돼 있다.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동일의 딸들이 남편을 찾는 이야기는, [응팔]에 이르러 동일의 사위를 찾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응칠]과 [응사]에서 외동딸만 있었던 동일은 자신과 말투와 행동이 닮은 사위를 얻는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그들은 사위이자 아들 같은 존재다. 그리고 [응팔]에서는 여자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충고하는 아들이 있다. 자신의 언행과 생각이 닮은 남자가 아들이거나 아들 같은 사위가 되는 가족. 그렇게 동일의 세계는 이어지고, 확장된다. 그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가족이다. 따뜻하고 그립다고 말하는 그 가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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