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의 창│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015.12.08
자국 국민과 IS를 동렬에 두고 언급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1월 14일, TV조선 [뉴스쇼 판]의 최희준 앵커는 오프닝 멘트에서 “슬프고 참담한 마음”이라고 운을 뗀 뒤 이 날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불법 과격 시위대를 봤다. 공권력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면서 “도심 한복판은 무법천지, 해방구”였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그런가 하면 멀리 프랑스 파리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한 그는 “무차별적인 민간인을 향한 테러는 인류 문명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마무리했다. 집회와 테러가 ‘똑같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사건의 성격과 주체를 교묘하게 비틀고 섞어 프레임을 제시한다. 이튿날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인 [올인코리아]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보도한 다른 채널들을 비판하고 “그나마 TV조선과 채널A 정도가 민중총궐기대회의 폭력을 제대로 전했다”며, “명백히 IS와 똑같은 테러행위”라는 의견을 비롯해 다수의 ‘일간 베스트 저장소’ 유저의 발언을 인용해 집회 참가자들을 비난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TV조선으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철저히 정부 친화적인 시선에서 그 반대편에 최대한 불리하게 팩트를 가공해 보도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특정 세력이 아젠다를 형성한다.

12월 1일, 종편 4사(TV조선, JTBC, 채널A, MBN)가 개국 4주년을 맞았다. ‘날치기’로 탄생했고 각종 특혜로 지탱되며 저조한 시청률로 비웃음마저 샀던 종편이 지금처럼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 댁 리모컨에서 종편 번호를 지우겠다’던 이들도 올드한 기획과 조악한 만듦새에 경계를 늦췄다. 언론으로서 신뢰를 얻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인 시사 보도와, 언뜻 비슷비슷해 보이는 세 글자 제목 ‘떼 토크’ 예능의 범람. 그러나 바로 그 속에서 종편은 성장했다. 종편 출범 당시 “방송 산업의 특성상 과도한 정치적 색채의 표현은 시청자 수를 제한하게 되고 그로 인한 광고수익 감소에 직면하게 되므로 정치적 편향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던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하주용 교수는, 지난 해 자신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고 말했다.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을 영입하고 20~49세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와 예능을 적극 편성함으로써 지상파 3사, tvN과 함께 ‘5대 방송사’로 구분되기도 하는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 3사의 기조는 여전히 뚜렷한 보수성이다. 이들의 주 시청 층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스마트폰 대중화 등으로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노년층에게 TV는 여전히 세상을 보는 가장 절대적인 창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4년 방송매체 이용형태 조사]에서 60세 이상 응답자의 92.8%가 ‘일상생활시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매체’로 TV를 꼽았다. 이들 중 ‘평소 뉴스나 시사정보를 알기 위해 일간지를 본다’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5.1%에 불과했지만 TV의 경우는 62.5%였다. 1주일에 적게는 사흘에서 많게는 매일 종편을 시청하는 60세 이상 응답자의 비율은 합치면 44%에 달했다. 박근혜 대통령 일가를 셀러브리티 쇼의 주인공처럼 소비하며 향수를 자극하고,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거나 정치 회동에서 누가 밥값을 냈는가 등의 뒷이야기를 시시콜콜 파헤치는 종편 특유의 방식은 주 시청 층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보다 비교적 저비용으로 제작 가능한 시사 토크쇼와 ‘뉴스쇼’는 종편 3사의 주된 메뉴다. 변호사, 방송인, 탈북자, 전직 경찰, 객원교수나 초빙교수 등이 패널로 출연하는 이들 프로그램 다수의 특징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언어가 아닌 ‘사담’의 방식으로 공적인 이슈를 다룬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역적모의’, ‘간신배’, ‘잡놈새끼’ 등 자극적인 어휘를 거르지 않고 내뱉으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사회자는 짐짓 우려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이들이 보다 과격한 논지를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다. 의제 설정부터 패널 선정까지,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조차 사라진 자리에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방송법 제 6조는 공허한 울림에 그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최근 발표한 ‘국정화 관련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약 2주 간 TV조선과 채널A에 출연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긍정‧옹호한 출연자는 79.6%에 이르는 반면, 국정화 부정‧비판한 출연자는 5.2%에 불과했다. 심지어 정부‧여당의 입장을 반대하는 발언에는 내용과 맞지 않는 자막이나 화면이 삽입되기도 했다.

기존 지상파의 보도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 표면적으로나마 지켜왔던 ‘객관성’과 ‘공정성’의 선은 명백히 정파적인 주장과 원색적인 표현, 막연한 추측과 무분별한 의혹 제기 앞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처럼 “누구라도 보고 한 마디 더 보탤 수 있을 만큼 대화적”(‘종편 저널리즘’ 홍성일, 2013)인 구성은 오락적 재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시청자가 깊이 이입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특히 사회자–패널–시청자 연합을 ‘나라를 사랑하는 질서의 수호자’나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반대편에 ‘종북 좌파 진영’이나 ‘현실 정치인들’로 명명한 이들을 위치시킨 뒤 그들이 ‘선량한 우리’를 포함한 이 사회에 위험과 피해를 야기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분노를 조장하는 방식은 TV라는 매체가 갖는 대중성과 선동성을 통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앞서의 설문조사에서 60세 이상 응답자의 88.8%가 ‘TV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는 콘텐츠나 정보는 믿을 만하다’고 답했다. 개국 초, TV조선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낯 뜨거운 찬사를 보내 조롱당했지만 그 노골적인 화법은 결과적으로 승리의 토대가 됐다. 2012년 대선 직후,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종편이 쏟아냈던 대선 관련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측면에서 종편은 노년층 ‘나꼼수’였다”([프레시안])고 분석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편도 “실버 영화관의 안방 버전”에 그치리라는 보장은 없다. 11월 29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초기의 종편 예능을 이렇게 비유한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종편 3사가 “중장년층 이외의 시청자들을 유인하며 ‘결정적 국면’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 시청 층과, 선명하고도 자극적인 메시지가 결합한다면 종편이 주도하는 보수 여론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지난 1차 민중총궐기대회를 전후해 ‘불법, 폭력, 민폐, 종북’ 프레임을 걸고 거침없이 내달린 TV조선과 채널A는 보도의 양으로나 수위로나 시사 보도에 소극적인 지상파 뉴스를 압도했다. 그 사이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수많은 이유와,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지게 된 과정은 묻히고 가려졌다. 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12월 5일, [뉴스쇼 판]의 오프닝 멘트는 “지난 1차 집회 때와 같은 폭력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였다. ‘벌어지지 않은’ 폭력 사태를 이야기함으로써 ‘벌어졌던 폭력 사태’를 새삼 강조하며 ‘폭력/비폭력’구도에 방점을 찍는 발화, 이 노골적이면서도 교묘한 프레임은 힘이 세다. 물론 그것이 옳다는 것도 진실이라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세지고 말았다.

참고 문헌
‘종편 저널리즘’의 위상과 함의: 과잉된 정파적 저널리즘과 ‘흥분하는’ 시사토론프로그램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기형, 2014),
종편 시사토크쇼와 사담 저널리즘: [쾌도난마]를 중심으로 (박지영·김예란·손병우, 2014)
종편 ’정치토크‘ 프로그램 홍수 이대로 좋은가 (하주용,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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