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을 보러 영화관에 가다

2015.12.02
일요일 저녁 CGV의 한 상영관에서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된 [이터널 선샤인]을 봤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에 남아,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구남친’에 대한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이터널 선샤인]처럼 누군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게 해준다면 그와 내가 다시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렇게 됐다 해도 결국은 다시 헤어졌을 것이라는 합리화 사이의 어디쯤을 오가는 결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온 사람과 나직이 대화를 나누다 불이 켜지고 나서야 일어섰다.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이터널 선샤인]은 영화를 보는 동안 고통스러웠던 이별의 기억을 잃는다면 그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순간, 그 환상은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 영화관은 [이터널 선샤인]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가장 강력하게 증폭시키고,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공간이다.

편안한 집에서 TV를 틀고 VOD로 볼 수도, 파일을 다운로드해 노트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몇 시간 동안 그 안의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를 영화 속에만 남겨 두고 떠나는 경험은 영화관을 통해 가장 극대화된다. 영화관 안의 어둠은 영화관 밖의 현실과 영화관 안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분리해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라던 라쿠나 사의 전제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 전제를 받아들인 후 “현실의 파편들을 조립하고 재구성하”는 [이터널 선샤인]의 세계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참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가 지겨워진 경험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판타지를 제시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 어두운 영화관에서 나설 때 마주하는 밝은 바깥은 지금까지 몰입했던 판타지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과 귀환의 느낌을 준다. [이터널 선샤인]이 주는 아련함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가 끝난 후 현실로 돌아와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영화관에 가서 표를 끊고,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고, 다시 밝은 바깥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의 총체로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다른 영화들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던 영화를 보는 데 잘 어울린다. [이터널 선샤인]의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꾸준히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극장 스크린을 통해 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재개봉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크다”([연합뉴스])고 말했다. 최근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의 발전은 이런 명작들의 재개봉을 영화 시장에서 하나의 틈새시장으로 자리 잡게 했다. CGV 측에 따르면 재개봉 영화들은 충성도 높은 고정 수요층이 존재하며, DVD 소장용이나 어렵게 다운로드 가능한 작품을 상영할 경우 호응도가 높다. [이터널 선샤인]은 올 11월 재개봉한 이후 첫 개봉 당시의 관객수인 16만 명을 훌쩍 넘어, 누적 관객수 39만 7천 명을 기록했다(11월 27일 기준). 올 12월에도 [렛 미 인], [러브 액츄얼리] 등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들이 재개봉한다.

영화관은 지금 20-30대에게 “일상과 가장 근거리에 위치하는 탈일상의 공간”이고,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이런 탈일상의 공간을 통해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진입하고 또 빠져나오는 과정까지 ‘영화를 보는 경험’에 포함될 때 영화가 주는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비단 [이터널 선샤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미 있을 많은 영화들이 그렇다. 누구나 하나쯤은 푹 빠져본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여운까지도 간직하고 싶은 영화가 있고, 그 영화가 다시 개봉하면 영화관으로 향하는 그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그 순간부터 시작이다.

참고 자료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체험에 대한 일고찰. 김중철 (한어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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