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의 ‘미국 버전’ 메이크업

2015.12.02
지난달 19일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 공식 블로그에는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준 CL의 얼굴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이틀 뒤에는 신곡 ‘Hello Bitches’의 음원과 안무 영상을 공개했고, 영국 패션지 [아이디매거진] 인터뷰를 통해 강렬한 눈매가 돋보이는 사진 2장을 노출했다. 이 밖에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추가로 6장의 사진을 올렸고, 23일 모델로 활동 중인 메이블린 뉴욕과의 한국판 [엘르] 화보도 연속적으로 공개했다. ‘Hello Bitches’가 CL의 미국 진출 사전 예고편이라면, 함께 공개한 CL의 사진은 앞으로 그가 미국에서 보여줄 새로운 ‘얼굴’이다. 그리고 이 얼굴의 핵심 요소는 ‘컨투어링 메이크업’이다.

컨투어링 메이크업은 안면골을 강하게 부각시켜 입체적인 얼굴을 만든다. 하이라이팅과 쉐딩이 생명이고, 깊은 눈매, 강인한 턱선, 도드라진 광대뼈가 미덕이다. 얼굴을 구역별로 나눠 명도가 다른 하이라이터나 컨실러, 쉐이더나 브론저로 밝힐 곳은 밝게, 숨길 곳은 어둡게 칠하면 된다. 쉐딩으로 양악수술 하듯 턱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얼굴 하관이 은근하지만 강인하게 부각되도록 돕는다. 단계별로 피부에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류별로 몽땅 색칠한 뒤 한꺼번에 펴 바르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성형 수술 없이 미셸 파이퍼, 파라 포셋, 안젤리나 졸리처럼 시대별 미국 미인들의 명료한 얼굴 윤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뼈를 깎아서라도 ‘V 라인’을 만들지만 미국은 케이티 홈즈, 산드라 블록, 바네사 허진스 등 턱선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스타들이 주간지 [피플]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시장이다. 컨투어링 메이크업으로 대표되는 음영 메이크업이 북미권에 진출한 한국 여성 가수들에게 효과적인 이미지 전달 방식인 이유다. 보아는 2009년 미국 1집 [Eat You Up] 타이틀곡인 ‘I Did It For Love’ 뮤직비디오에서 얼굴 전체에 깊은 음영을 줘 광대뼈를 한껏 부각시켰다. 소녀시대도 2012년 CBS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 ‘The Boys’를 부를 당시 한국에서 썼던 양보다 훨씬 많은 쉐딩을 콧대와 턱선에 넣었다. 당시 ‘투명 메이크업’의 후예인 4대 광(光) 메이크업(윤광·꿀광·결광·물광)이 시장을 장악했던 한국과는 분명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그래서 CL의 컨투어링 메이크업을 미학적인 측면에서 품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메이크업은 더 이상 아름다워지기 위한 도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직장 여성들에게 ‘데일리 메이크업’이 출근용 노동이듯,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이란 유튜브로 음악을 보는 시대에 팝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마케팅의 일환이다. 현재 아델, 아리아나 그란데, 셀레나 고메즈, 리한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은 컨투어링 메이크업을 부분적으로 차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다듬고 있다. CL도 마찬가지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북미권 예비 팬들이 친숙하게 느낄 만한 외모로 변신했고,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SNS로 이를 알렸다. 다만 ‘Hello Bicthes’ 안무 영상에서 무용수들에게 흡혈귀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메이크업 트렌드인 ‘뱀피 립’을 제안, 식상함을 걷어냈다.

CL은 데뷔 이후 줄곧 패셔니스타로 꼽혔지만 뷰티 아이콘으로 불리진 못했다. 지난해 메이블린 뉴욕의 모델로 발탁돼 이른바 ‘CL 마스카라’ 매출 증가에 큰 공을 세웠지만, 대중들의 관심은 CL의 눈에 집중됐다. 블랙 아이라이너로 두툼하게 그린 뒤 눈 끝 부분에서 사선 모양으로 위로 쭉 뽑는, 아몬드 모양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캣츠아이로 기억했을 뿐 화장의 전 과정을 따라 해야 할 ‘풀 메이크업’ 이상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뷰티 유튜버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니와 손잡은 것이 알려진 지난 7월부터 인스타그램에서 꾸준히 선보인 외모는 CL의 입지를 서서히 바꿨다. 패션전문지들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소개했지만 뜨지는 못했던, 지난 5월 제시가 Mnet [하트어택]에서 선보여 예열시켜 놨던 컨투어링 메이크업은 CL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완벽한 ‘셀피’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자칫 노숙해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망설여졌던 이 고난도 메이크업은 CL과 함께 한국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CL은 세계적인 메이크업 트렌드를 직접 소화, 한국의 트렌드 진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춘 뒤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 앞서 미국에 진출했던 가수들과 달리 ‘미국용 화장’과 ‘한국용 화장’을 따로 하지 않고 양국에서 동일한 이미지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컨투어링 메이크업이 여전히 강세면서도 일부 할리우드 스타들을 중심으로 ‘스트로빙 메이크업’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마치 반사판을 댄 듯 하이라이팅으로 피부를 환하게 밝히는, 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윤광’ 메이크업의 미국판이라 한국에서 다시 히트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에서 정식 앨범을 낼 즈음, CL은 컨투어링을 선택할까 스트로빙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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