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TV에 안 나오는 걸 그룹은 행사에서 무슨 ‘급’일까

2015.12.02
걸 그룹 밤비노는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기 어렵다. 대신 유튜브에서 그들의 이름을 치면 수많은 영상이 검색된다. 기업이 후원하는 [레진코믹스 몸에 좋은 콘서트]부터 불과 수십 명 정도의 관객이 있는 듯한 재경 포항중고 동문가족 체육대회까지, 수많은 행사에서 관객이 찍은 ‘직캠’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인기 댄스곡을 추는 커버댄스팀이던 그들은 때로는 선정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만큼 섹시한 춤으로 행사에서 호응을 끌어냈다. 그들이 올해 가수로 데뷔한 것도 섹시안무가 ‘직캠’을 통해 화제가 된 이후다. 안무를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밤비노를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 쉽게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상관없지 않을까. 한국에는 매년 3만여 개의 행사가 열린다. 

“다른 회사도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예산을 들여 TV에서 활동시키는 걸 그룹을 500만 원 밑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가요 관계자 A의 말처럼, 행사 시장은 철저하게 ‘급’에 따라 출연료가 나뉜다. 한 번에 몇십만 원씩을 받으며 하루 10개의 마트 오픈식을 도는 신인 트로트 가수가 있는가 하면, 노래 3~4곡에 1억 원 이상을 줘야 하는 톱스타도 있다. 인기 남녀 아이돌 그룹은 최소 3천만 원 이상, 음원차트에서 인기 높은 힙합 뮤지션들은 1,500만 원, 여기에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높으면 30분 행사에 4,000만 원 이상까지 오른다. TV를 통해 얼마나 얼굴이 알려졌는지도 당연히 ‘급’의 기준이다. 밤비노는 이런 행사 시장의 틈새를 메운다.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걸 그룹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많은 ‘직캠’에서 볼 수 있듯, 섹시함을 강조한 춤으로 행사에서 주로 남성들의 함성을 빠르게 끌어낸다. 행사 시장의 요구가 걸 그룹과 댄스팀 사이에 위치한 형태의 팀을 만들어낸다. 

행사 시장의 돈이 만들어내는 힘을 이해하면,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여러 현상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음원차트 순위는 행사의 ‘급’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같은 ‘급’이라면 분위기를 신나게 띄울 곡들을 가진 가수가 유리하다. 경쾌한 댄스를 앞세운 걸 그룹, 젊은 세대의 트렌드이자 음악이 나오면 모두가 손을 위로 흔드는 힙합 뮤지션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니 많은 중소 기획사에서는 걸 그룹, 트로트 가수, 래퍼들의 음원을 제작한다. 그중에서 걸 그룹은 가장 자본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섭외 가능성도 높아진다. 밤비노처럼 섹시함으로 불특정 다수의 남자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는 팀은 어느 행사의 라인업이든 들어가기가 용이하다. 많은 무명의 걸 그룹이 선정적인 콘셉트를 들고 나오는 것이 노이즈 마케팅 때문만은 아니다. 

대신 이런 회사들에게는 기획력 이상으로 행사에 가수를 출연시킬 영업력이 중요하다. 가요 관계자 B는 “행사 섭외를 진행하는 이벤트 회사마다 각자 리스트가 있다. 어지간한 가수들은 이 리스트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걸 그룹에게는 행사 수익이 가장 중요하다”는 A의 말은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현재다. 대부분의 기획사들이 가수의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TV에 출연시키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행사의 ‘급’을 높여 이 대행사들의 라인업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과도 같다. 대중에게 사실상 공짜로 콘텐츠를 주고, 돈은 행사를 여는 학교‧지자체‧기업 등으로부터 받는다. 

예외는 있다. 월드투어를 도는 톱스타 빅뱅은 행사에서 ‘부르는 게 값’이 아니라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정도다. 음반 판매와 공연, 해외 활동과 굿즈 판매까지 가능한 스타들은 굳이 행사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그중 대부분은 해외까지 팬덤이 있는 몇몇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다. 반면 그들은 인기가 없으면 행사에서도 호응을 얻기 어렵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많은 돈과 기획력을 쏟아 해외에서도 통하는 K-POP 스타를 만든다. 아니면 지금 바로 행사에서 쉽게 활동시킬 수 있는 가수를 제작해 어떻게든 행사 라인업에 집어넣는다. 중간은 없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올해 메르스 발병 이후 많은 뮤지션이 행사가 끊겨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열성 팬이 아니라면, 특정 뮤지션의 단독 공연에 돈을 쓸 소비자가 적은 시장의 한계다. 빅뱅과 EXO가 전 세계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동안, 대부분의 가수와 회사들은 쉬지 않고 영업하고, 쉬지 않고 노래한다. 그러니 유튜브에서 밤비노를 검색해보기를 바란다. K-POP이라는 브랜드에 가려진,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매우 평균적인 현실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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