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② 라틴어 첫걸음, 일주일이면 최 부제 흉내를 낸다

2015.11.24
[검은 사제들]에서 최 부제 역의 강동원에게 아우라를 더해주는 건 사제복만이 아니다. 소녀의 구마의식에서 그가 외우는 라틴어 성미카엘 기도문의 이국적인 발음은 같은 뜻이라 해도 다른 언어의 기도문과는 다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사어(死語)가 된 이 언어의 독특한 매력과 힘은 [검은 사제들] 외의 작품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단언하건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이 남긴 ‘Carpe Diem’(순간을 즐기라)이란 경구가 라틴어가 아니었다면 사춘기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훔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짧고 함축적인 라틴어 경구는 같은 뜻도 훨씬 있어 보이게 만들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Carpe Diem’ 이후 별다른 업데이트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라틴어 문구들을 준비해보았다. 아주 입에 착착 붙는 발음은 아니지만 열심히 연습한다면, 최 부제가 입단속을 당부하는 신학대 학장에게 자연스럽게 ‘Cum linguae sanctae(거룩한 혀)’라 답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Feliciter!
Valde bona (보기에) 매우 좋다
발음: 우알데 보나
사용법: 보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았을 때의 감탄사

Valde bona는 영어로 번역하면 Very good 정도의 표현이다. 평범한 뜻도 왠지 품격 있어 보이는 것이 라틴어 발음의 신비라지만, 그 연원에 있어 Valde bona는 평범한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는 문구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의 만족감에 대해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표현하며 여기 쓰이는 문구가 Valde bona다. 즉 세속적이고 시각적인 쾌감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의 마음까지 담아낼 수 있는 최상급 ‘따봉’인 셈이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을 보며 모두들 ‘꺄악’ 혹은 ‘귀여워!’ 수준의 감탄사를 내뱉을 때, 나직하되 힘 있는 목소리로 ‘우알데 보나!’라고 말해보자. 당신은 방금 세상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 중 하나에 가장 어울리는 찬사를 던졌다.

Aqua fons vitae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
발음: 아쿠아 폰스 위타이
사용법: 오늘의 건배사

좀 더 정확히 번역하면 ‘물은 생명의 원천(Water is the source of life)’에 가깝지만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늙은 수도승 알리나르도는 화자인 아드소 수도사에게 병아리콩을 부탁하며 ‘침은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이라며 이 문구를 사용한다. 즉 생명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말인 동시에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는 수분을 수식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삶에 활력을 주는 물인 술을 찬미하기에 이토록 좋은 표현이 있을까. 이것은 술의 찬미인 동시에 삶과 생명에 대한 긍정이라는 면에서 한국의 흔한 음주 표현인 ‘먹고 죽자’와는 정반대의 결을 지니고 있다. 이제 회식 자리에서 재치 있는 건배사를 하겠다며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 ‘사.이.다(사랑하자 이 생명 다 바쳐)’ 등을 외쳐 후배들을 민망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Satis eloquentiae, sapientiae parum 충분한 언변, 부족한 지혜
발음: 사티스 엘로쿠엔띠아이 사피엔띠아이 빠룸
사용법: 종합편성채널 정치 예능에 나온 출연자에 대한 냉소

이 표현은 로마의 정치인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는 당대에 유명한 연설가였지만 정작 본인은 집정관 선거에서 너무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었다가 원로원의 방해를 받았으며, 이에 모반을 꾀하다가 정적인 키케로에게 들켜 처형되고 말았다. 즉 이 표현은 말에 막힘이 없다고 해서 그가 정말 지혜롭다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인데, TV에 출연해 그럴싸한 말로 혹세무민하는 출연자에게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지난 민중총궐기 당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인 종편 출연자는 경찰이 차벽을 세우는 게 위헌이라는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시위대가 차벽을 넘으려는 모습을 공권력의 느슨함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장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들보다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 이 문구로써 싸늘하게 비웃어주자.

Dolor malum certe est 고통은 의심 없이 나쁘다
발음: 돌로르 말룸 케르테 에스트
사용법: 어머니가 치과에 끌고 갈 때의 항변

로마 시대 최고의 웅변가이자 문장가인 키케로의 저서 [투스쿨란과의 대화]에 나오는 표현이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영어의 표현이 더 풍부해진 것처럼, 고전 라틴어 역시 키케로에 이르러 그 기틀이 잡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가 남긴 저서의 문장들은 소위 라틴어 명구로서 여전히 회자되는데, Dolor malum certe est도 그중 하나다. 로마 시대 최고의 지성이 보기에도 고통이란 의심할 여지 없이 나쁜 것이었다. 치과로 끌고 가는 어머니에게, 따끔하지만 참으라며 주사를 놓으려는 의사에게, 몸에 좋은 건 입에 쓰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키케로의 문장을 빌려 말해주자. 내가 지금 주사 맞는 게 겁나서 그러는 게 아니다.

Mundus senescit 세계는 늙어간다
발음: 문두스 세네스치트
사용법: 나이를 먹었지만 늙은 건 내가 아니라는 정신승리 구현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우리가 고대의 인류보다 체구가 작듯이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우리보다 체구가 작을 것이라며 Mundus senescit라는 문구를 인용한다. 즉 여기서 늙는다는 건 지혜로워지거나 생각이 깊어진다는 의미보다는 쇠퇴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 문구가 절묘한 건, 늙고 쇠퇴하는 건 내가 아닌 세계라는 것이다. 마치 ‘나 살쪘어?’라는 질문에 ‘찐 건 살이지, 네가 아니’라는 답변만큼 절묘하다. 세계는 다 함께 늙어가는 것이기에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들은 나보다 늙은 세상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나보다 젊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의문에 일일이 답하는 대신 쉽고 빠르게 정신 승리하기 위해 이 경구가 필요한 것이다.

Disiecta membra 유물의 파편
발음: 디시엑타 멤브라
사용법: 마음에 드는 고전 ‘짤방’을 주웠을 때의 환호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 나왔던 문구로, 말 그대로 시대의 흐름이나 물리적 힘에 의해 부서진 과거 유산의 흔적을 말한다. 얼핏 인디아나 존스 같은 고고학자에게나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과거의 영상 자료를 찾기 위해 구글과 유튜브를 뒤지는 동시대의 네티즌에게도 딱 떨어지는 말이다. 가령 누군가 KBS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에 출연한 강동원 영상의 조각을 찾아내 SNS에 공유했을 때, 자료에 대해 Disiecta membra라고 평해준다면 이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자 역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러한 파편들을 수식해주는 그럴싸한 표현이 있다는 건 해당 자료들을 아직 복원이 안 된 불완전한 무엇이 아닌 하나하나 의미 있고 소중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기도 하다. 멋진 이름을 붙여준다는 건 그런 의미다.

Divide et impera 나누어라 그리고 통치하라
발음: 디비데 에트 임페라
사용법: 국민의 혼이 비정상이라 믿는 지도자의 구마의식 주문

로마 시절부터 마키아벨리, 나폴레옹까지 이어져 내려온 독재자를 위한 통치 비법이다. 국가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치하고 싶은 독재자에게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생각할 줄 아는 시민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아마도 이런 류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 다스릴 텐데 굳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저항하는 국민들의 혼이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을 파훼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대중의 창끝이 권력이 아닌 서로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광장에 나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일련의 대중을 권력의 적이 아닌 선량한 다른 대중의 평화를 깨는 불평분자로 모는 식이다. 이런 갈라치기를 통해 대중의 힘은 약해지고 고분고분한 신민만이 남는다. 아마도 이것이 자신은 좌익 사상에 매몰된 좀비 혹은 비정상적인 혼에 빙의된 이들을 마로부터 구원한다고 믿으면서 실질적인 독재를 펼치는 지도자의 심리이지 않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도 그런 지도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고도서
[카르페 라틴어] 한동일 (문예림)
[기초 라틴어 문법] 조경호 (문예림)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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