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① 우주의 이야기, 이야기의 우주

2015.11.10


양영순 작가의 웹툰 [덴마]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덴마다. 행성 우라노의 무혈사신이라 불리던 악당 다이크의 정신을 꼬마의 몸에 이식시켜 우주 택배기사가 된 이 캐릭터는, 하지만 정작 갈수록 작품 안에서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12년부터 연재된 에피소드 ‘a catnap’ 이후 작품 내 주요 세력인 고산 가와 엘 가, 태모신교 종단 등이 제8우주 전체의 패권을 다투는 수준으로 확장된 이야기에서, 능력도 대단치 않고 수천 택배기사 중 하나인 덴마는 말 그대로 우주 앞의 티끌과도 같다. 많은 독자들이 반은 진심으로 [덴마]는 좋지만 덴마는 싫다며 작품 속 그의 등장을 썩 반기지 않게 된 건 그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덴마를 중심으로 작은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해결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소년만화로 시작했다가 의도치 않게 이야기의 스케일이 확장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야기의 우주가 거대해질수록 상대적으로 한 캐릭터의 크기는 점으로 수렴한다. 그럼에도 [덴마]의 주인공은 덴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덴마]가 정말 뛰어난, 아니 그 말로도 부족할 작품인 이유다.

[덴마]의 무엇이 그렇게 좋은가요. [덴마]의 팬이라면 한 번 이상 들어봤을 질문이다. 강풀이나 조석의 만화처럼 대중적인 작품도 아니고, 최규석의 [송곳]처럼 동시대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화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열혈 독자들의 강력한 충성 때문에 인기에 비해 작품의 인지도는 매우 높으니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다. 많은 [덴마] 독자들은 제8우주를 무대로 진행되는 작품의 스케일을 이야기한다. 물론 무대가 우주라는 것이, 이야기가 우주적이라는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작품 초기 덴마가 여러 행성의 수취인에게 택배를 배달할 때도 이미 무대는 우주였다. 문제는 저 넓은 우주를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스타워즈]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은하영웅전설]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원피스] 등의 일본 소년만화는 가상의 역사와 거대한 세력들로 이 시공간을 채운다. [덴마] 역시 ‘식스틴’ 에피소드에서 태모신교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이야기를 비약적으로 확장하며 비슷한 방식을 따르는 듯하다. 하지만 [덴마]의 주인공은 덴마다.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단이,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등이 나름의 거물이 되어 이 거대한 이야기의 중심부에 선다면, 덴마는 그럴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 누구도, 심지어 제8우주의 실질적 주인이라 불리는 고산조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8우주의 향방을 이끌 수 없다. [덴마]의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한 명의 주인공도 거대한 세력도 아닌 인과율의 법칙이다.


인과율 계산을 통한 미래 예측은 [덴마]의 중요 테마다. 태모신교의 비밀병기 란은 종단 타임라인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계산해 종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수를 통제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지닌 데바림 종족은 란의 계산에 맞서 미래를 바꿀 요소들을 미리 준비하고, 제8우주의 실질적 지배자 고산은 파우스트 박사가 만든 계산기로 인과율을 계산해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런 면에서 [덴마]의 세계는 마치 라플라스의 이상을 구현한 듯하다. 18세기 수학자인 그는 “불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최고 지성의 눈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현재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존재도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령 그 자체로는 주요 캐릭터인 이델의 러브스토리인 ‘식스틴’에서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벌인 이델의 살인은, 이델의 형 집행을 막기 위한 혈육 발락의 감찰국 복귀로 이어지고, 발락의 감찰국 복귀는 감찰국 내부의 세력 개편으로 이어지며, 발락의 감찰국은 최종적으로는 란이 바라는 종단의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덴마]의 모든 존재들은 인과율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의 행동은 또한 각각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세계관을 품은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덴마]는 세계관 자체가 스토리다. 인과율로 엮인 우주가 [덴마]의 세계관이라면 그 인과율의 연쇄 작용을 따라 벌어지는 사건들이 [덴마]의 이야기다. 이것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어떤 이야기가 아닌, 우주의 이야기다. 제8우주의 인과율을 계산하는 란의 모습은 작가 양영순의 페르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덴마]는 라플라스의 평온한 우주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로 진입한다.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는 세상에선, 아주 작은 존재의 작은 선택도 우주적 사건이 된다. 진짜 총이 아닌 장난감 총을 가져온 사제 때문에 아비가일이 하데스 암살에 실패한 에피소드는 [덴마] 독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나비효과처럼 이야기된다. 사실이다. 죽지 않은 하데스는 결국 태궁 교차공간을 침범해 다른 우주로 분화되고, 다른 우주로 나갔던 하데스는 종단 음모를 막기 위해 강력한 부하들을 이끌고 제8우주로 돌아온다. 나비효과, 즉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은 초기의 작은 변수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인과율을 계산하던 란의 회로에는 과부하가 걸린다. 여기서 덴마를 비롯한 각각의 인물들은 인과율의 노예 혹은 장기말이 아닌, 모두가 우주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된다. 데바림의 수장 아론은 제8우주의 미래를 위해 덴마에게 양자통신공진기를 전달한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지금껏 그토록 하찮게 여겨지던 덴마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설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God's Lover’ 에피소드에서 잠깐 등장했던 빵봉투 고산이 지금처럼 독자의 관심을 받게 될 거라고는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것이 [덴마]의 세계다.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우연은 하나도 없는 세계.

그래서 [덴마]는 우주의 이야기인 동시에 또한 이야기의 우주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갈수록 에피소드가 장기화되면서 에피소드 구성이 조금 무색하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덴마]는 각각 분리되고 중심인물도 다른 작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그 이야기들이 우주의 인과율 안에서 별자리를 이룬 별처럼 더 거대한 이야기로 합쳐지는 구조다. 이것은 각각의 인물과 집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또한 우주적인 시점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연재 중인 [덴마]를 정주행하는 독자들이 ‘덴경대’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새 연재분이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건 그래서다. 주 3회 연재 특성상 여타 웹툰에 비해 짧은 분량의 이야기가 오픈되지만, 그 짧은 이야기 중 사소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만화계에서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와 비교해도 도드라지는 경지다. 물론 이것으로 [덴마]의 무엇이 그토록 좋은가, 라는 질문에 대한 온전한 답을 주진 못할 것이다. 다만 아주 조금의 호기심이나마 생긴다면 그 답은 얼마든지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 수많은 이야기의 성좌로 이루어진 거대한 우주를 유영하며.

글. 위근우
영상. 정명희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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