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롬 UNCLE]의 헨리 카빌, 의외의 산뜻함

2015.11.05

상품 설명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며 정중하게 다가왔던 16살의 헨리 카빌에게 러셀 크로우는 이 말을 손수 적어 보낸다. 13년 후 [맨 오브 스틸]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날 때까지 영화의 크레딧보다는 각종 섹시남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왔던 헨리 카빌이 몇 번이고 새겨봤을 법한 충고다. 그러나 헨리 카빌은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해리 포터]의 세드릭 디고리 역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것을 시작으로, [트와일라잇] 열풍이 한창일 때는 원작 작가의 공개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패틴슨에게 주연 자리를 넘겨줘야했고,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에게, 거의 손에 잡힐 듯 했던 [007]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슈퍼맨 리턴즈]마저도 브랜든 루스에게 밀려나면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운 없는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시기를 떠올리면 씁쓸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더 어울리는 배우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모범 답안을 꾸준히 내놓을 뿐이었다. [맨 오브 스틸]의 흥행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슈퍼맨으로 살아가야 하는 부담에 대해 털어놓다가도 돈 잘 버는 인기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불평할 수는 없다고 자신을 다잡는 헨리 카빌은 이렇게나 무난하고, 꾸준히도 정석적인 남자다.

[맨 프롬 UNCLE]은 헨리 카빌의 이런 진중함이 고뇌하는 초인에게만 어울리는 자질이 아님을 보여줬다. 멋있지만 지루한 슈퍼맨이라는 평을 의식한 걸까. 헨리 카빌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나폴레옹 솔로가 이기적이고 시니컬한 인물임을 여러 번 강조했지만, 영화 속의 그는 실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타의에 의해 스파이가 된 나폴레옹 솔로는 폭력을 즐기지 않으며, 도발에 소질이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불쾌한 언행은 하지 않는다. 특정 대상을 향한 불타는 복수심도 없다. 죄책감과 후회로 너덜너덜해진 스파이들이 대유행인 시대에 이렇게까지 무해하고 태평한 스파이라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캐리 그란트의 느긋한 매력을 모티브로 삼아 본드보다 덜 잔인한 스파이를 선보이고자 했던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의도에 헨리 카빌 특유의 차분한 에너지는 맞춤 수트처럼 말쑥하게 어울린다. [맨 프롬 UNCLE] 속의 헨리 카빌은 지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우주적 규모의 고뇌를 내려놓은 덕에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재치는 깔끔하다. ‘재미있는 카빌’이 가능할까 갸우뚱하던 사람들 앞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산뜻한 카빌’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깜찍한 베스타를 타고. 

성분 표시
팻 카빌 40%
태어나서 외모 고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안 해봤을 것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키가 작고 통통했던 어린 헨리 카빌의 학창 시절 별명은 ‘팻 카빌’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종종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진다는 그의 말은 믿기 힘들지만, 이런 숙맥 같은 면이 이 덩치 큰 미남을 좀 더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맨 프롬 UNCLE]의 나폴레옹 솔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폴레옹 솔로의 매끈한 유혹 능력이 부럽다는 헨리 카빌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작 영화 속에서 그는 거의 얌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깔끔한 매너를 갖고 있다. 덕분에 그는 구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 바람둥이 캐릭터들이 잘 빠지는 불쾌한 여성 혐오의 함정도 너무나 수월하게 피해 가 버린다. 이쯤 되면 어차피 리부트인데 나폴레옹 솔로도 소년 시절에는 외로운 팻 솔로였다는 설정을 넣어주는 편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슈퍼맨 40%
영국인이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 히어로에 대해서 뭘 알겠냐고 불평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친구가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클락 켄트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는 헨리 카빌은 [맨 오브 스틸]을 당당하게 흥행시킨 후에도 여전히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쏟아진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한 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슈퍼 히어로 팬들의 매서운 시선을 대신 받아 줄 교체 선수로 벤 에플렉의 배트맨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외국어 능력 20%
불어와 영어가 공용어인 저지 섬에서 나고 자란 헨리 카빌은 한때 무려 9개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실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까지 총 4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맨 프롬 UNCLE]에서는 독일어와 이탈리어를 맛보기 정도만 선보였지만 앞으로 올 다른 영화들에서는 숨겨두었던 외국어 실력을 마음껏 뽐내게 되기를 빌어본다.


취급 주의
안 웃기다고 놀리지 말아
태생적으로 안 웃긴 친구가 아닐까 살짝 의심이 되는 헨리 카빌이지만 아미 해머처럼 명랑한 파트너에게 장단을 맞출 정도의 재간은 있다. 그러나 재미는 없어도 늘 깍듯한 이 남자의 ‘노잼력’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인터뷰어가 슈퍼맨에 대한 농담 따먹기를 시도할 때다. 어떤 시시한 농담이나 가벼운 조롱도 진지하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헨리 카빌은 인터뷰어가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을 지경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10년이 걸려 찾아온 기회인 슈퍼맨에 관한 한 그는 언제나 150% 진심이니까.

글. 와조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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