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SM 팩토리의 ‘ART’

2015.11.04

f(x)의 신곡 ‘4 Walls’는 Mnet [엠카운트다운]이나 SBS [인기가요] 같은 TV 음악 프로그램용 EDM(Electronic Dance Music)의 탄생이다. 스스로 딥하우스라 소개한 ‘4 Walls’와 그대로 클럽에 갖다 놓아도 될 ‘Rude Love’처럼 그들의 앨범 [4 Walls]는 전체가 EDM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f(x)는 이 장르를 클럽이나 런웨이 대신 음악 프로그램에서 군무를 추며 소화한다. ‘4 Walls’에서 엠버와 루나의 역할은 f(x)가 지금 어떤 팀인지 보여준다. 지난 앨범 타이틀곡 ‘Red Light’에서 곡 후반 ‘지르기’에 사용됐던 루나의 보컬은 ‘4 Walls’에서 EDM이 분위기를 띄울 때 쓰는 도구처럼 활용되고, 정박에 맞춰 양념처럼 들어가던 엠버의 랩은 EDM과 힙합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지금의 f(x)는 걸 그룹인 동시에 래퍼 하나, 보컬 셋으로 구성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의 EDM 팀이다. 다만 그들의 프로듀서는 특정 뮤지션이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다. 

‘4 Walls’의 뮤직비디오에서 네 명의 멤버는 마치 한 사람처럼 묘사된다. 멤버들의 의상과 동작은 한 사람처럼 연결되거나 같은 패턴을 공유한다. 네 사람이자 한 사람인 멤버들이 깨졌던 찻잔을 깨지지 않게 잡는 스토리는 설리의 탈퇴 이후 흔들린 팀을 나머지 멤버들이 재건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 해석과 별개로 티저, 앨범, 뮤직비디오에 이르는 [4 Walls]의 비주얼 디렉팅은 결과적으로 멤버들의 개성을 강조하는 대신 차이를 줄인다. 이미지의 색상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톤을 유지하거나 아예 색이 빠져 있고, 멤버들은 종종 납작하게 2차원적인 느낌이 강조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부각되는 것은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가 아닌 음악과 비주얼이 표현하는 전체적인 느낌이다. ‘4 Walls’의 퍼포먼스에서 f(x)가 같은 패턴의 옷을 입고 일렬로 서서 순간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히는 군무는 춤이라기보다 모델이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EDM이 음악으로 깔리는 무대 위에서 역동성보다 정지됐을 때 멤버 각각의 합을 강조하는 동작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4 Walls’는 지금 EDM에 담길 수 있을 법한 문화적 경향을 f(x)라는 아이돌을 모델 삼아 7백만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의 SM 채널과 지상파 TV의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새로운 영역의 시작처럼 보인다. SM의 또 다른 걸 그룹 레드벨벳의 ‘Dumb Dumb’도 멤버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대신 차이를 줄이고, 극도로 인공적인 분위기를 살린 뮤직비디오로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비트와 멜로디는 힙합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힘이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면 최대한 얇고 가볍게 끌어낸 멤버들의 목소리와 ‘Dumb Dumb Dumb Dumb’처럼 밝고 가벼운 코러스는 이것을 소녀들의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4 Walls]의 편곡 역시 전반적으로 EDM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하지만, 보컬은 얇고 가벼운 톤이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EDM 안에 소녀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YG 엔터테인먼트의 빅뱅, 2NE1, 아이콘은 데뷔 초 힙합을 음악은 물론 패션과 메시지의 기본 테마로 삼았다. 반면 SM은 f(x)와 레드벨벳에게 EDM과 힙합의 장르적 특성을 따르는 음악을 만들어주되, 아이돌과 EDM 또는 힙합의 특질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종합적인 취향을 표현한다. 레드벨벳의 컴백 티저는 인스타그램의 화면 비율로 공개됐고, f(x)의 컴백 티저는 SNS 상에서 이미지 일부가 움직이는 gif 파일로, 이태원에서의 전시회로 공개됐다. 다른 기획사가 걸 그룹 멤버들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콘셉트와 세계관을 만든다면, SM은 f(x)처럼 개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팀을 통해 한 여자의 위태로운 현실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어떤 콘셉트도 입히기 쉬울 것 같은 레드벨벳을 통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소녀들의 정신세계를 판다. 


이 시장을 이른바 ‘힙스터’ 취향의 시장이라 설명할 수도 있다. EDM, 이태원, 대림미술관 같은 단어가 이미 익숙하다 못해 지겹게 느껴지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을 비롯해 현재 대중문화에 직접 돈을 쓰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10대 시절부터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다. 또한 아이돌 팬들도 패션잡지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예쁘거나 파격적인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접한다. f(x)와 레드벨벳은 지금 여자 팬들이 많은 팀으로 꼽힌다. 그들의 복잡한 만큼 섬세하고 낯선 만큼 신선한 비주얼 콘셉트는 다양한 음악과 비주얼 스타일을 접하고 있는 여자들의 미감을 만족시킬 가능성이 높다. f(x)와 레드벨벳의 신곡은 모두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고, 발매 일주일이 지난 [4 Walls]의 판매량은 6만 장(한터차트 기준)을 넘겼다.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접근법이 가능한 시장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 시장이 주류로 부상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돌 산업, 더 나아가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에 흐르는 변화의 기류를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 대중음악사에 재현 불가능할 자국을 남길 비주얼 디렉터는 아이돌에게 ‘힙’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뮤지션들은 마치 런웨이의 음악처럼 비주얼에 어울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돌로 가장 유명한 회사가 아이돌을 통해 아이돌과 거리가 멀었던 것처럼 여겨지던 스타일을 제시하고, 장르 음악을 하되 장르의 고유한 속성 대신 그 장르를 지금 소비하는 어떤 사람들의 취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는 아이돌이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춤과 패션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전시회 같은 순간이다. 그런데, 정작 ‘4 Walls’를 비롯한 SM의 음악들은 ‘라이팅 캠프’(Writing Camp)로 불리는 여러 뮤지션들의 협업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SM의 A&R(artist&repertoire) 팀이고, 그들의 기획에는 시장에 대한 고려가 필수다. 가장 상업적인 회사에서 계획적인 분업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 오히려 시장에서 가장 개성 있는 것들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이돌은 스타인 동시에 회사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소화할 모델이자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SM의 할로윈 파티에서 크리스탈은 앤디 워홀의 뮤즈로 일컬어지던 에디 세즈윅을 코스프레했다. 이것은 지금은 우연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언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사진 제공. SM 엔터테인먼트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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