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생존법│① 생존 기계 김구라 Ver. 2.0

2015.11.03


김구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최근 MBC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는 “자신이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꿰고 있다”는 MC 유재석의 소개가 무색하지 않게 [무한도전]의 시청률 14%와 KBS [해피투게더 3]의 시청률 3.7%를 술술 말하며 [무한도전]의 여전한 저력을 인정하고, 유재석의 분발을 촉구했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에서 게스트에게 얼마 버느냐고 질문하는 건 거의 항상 그의 몫이며, 본인 책에서도 자신이 회당 950만 원을 번다는 악의적인 기사에 반박하기 위해 지상파에서 450만 원, 케이블에서 600만 원을 받는다는 것까지 공개했다. “시장에서 인정받으면 그게 진짜 내 위치가 된다”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 숫자는 스타나 대세 같은 자의적인 개념보다 훨씬 정확하게 대상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다. 그리고 이 기준에서 현재 김구라는 유재석의 말처럼 MBC 연예대상 후보로 손색이 없다. 그는 현재 MBC에서만 총 4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파일럿부터 꾸준히 출연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최근 들어 시청률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한창 잘나갈 땐 10% 수준을 유지했고, MBC [일밤] ‘복면가왕’은 여전히 13%를 기록하고 있다. 숫자로만 놓고 보면, 그는 현재 유재석 이상이다.

현재 김구라가 방송계의 실질적 일인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난 2012년 위안부에 대한 과거 잘못된 발언이 밝혀져 방송 활동 중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최근 아내와의 이혼과 아내가 진 빚 문제로 힘겨워했음에도 현재의 그는 본인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 말대로 빚을 갚기 위해 다작을 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앞의 인용처럼 그에 대한 높은 시장 평가 없이는 다작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다. 기존 방송에서 볼 수 없던 직설화법으로 지상파에 안착했을 때만 해도 과연 저 새로움이 언제까지 유효할까 싶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패턴이 읽히며 매너리즘에 빠졌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지금 그의 활약은 역주행에 가깝다. 지난 3월 [아이즈]는 ‘김구라의 인생’이라는 기사에서 “생계를 위해 매달리는 일이, 때론 정말 어떤 경지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한 바 있다. 김구라의 현재는 이에 대한 대답처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자신의 먹고사는 어려움을 강조하지만, 생존의 방식은 훨씬 세련돼졌다.


김구라가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방송을 한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사실이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 오프닝에서는 “욕먹으면서도 왜 호사가를 하느냐고요? 저도 먹고살아야죠”라고도 했다. 신념이나 윤리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가장 이득이 되는 길을 찾는 삶. 김구라의 실용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명백히 기회주의적이다. 흥미로운 건, 그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결과적으로 그를 재미로든 윤리적으로든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가령 [마리텔]이나 tvN [집밥 백선생]에서의 태세 전환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마리텔] 파일럿 당시에만 해도 방송 초보인 백종원 방에 들어가 자기 방 채팅창에 비하면 올라오는 글이 적다고 거들먹거리던 그는, 백종원이 신계에 진입하고 본인이 거의 최하위로 떨어지자 전문 예능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소위 ‘팟수’라 불리는 채팅 고수들의 ‘드립’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에 적응해갔다. [집밥 백선생]에서도 은근슬쩍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지만 백종원이 받아주지 않아 오히려 겉돌게 되자 적극적인 학생의 태도로 전환해 프로그램에 녹아들었다. “(인터넷 방송) 청취자들이 센 욕을 원해서” 연예인에게 욕설을 하던 그는 이제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백종원에 대한 예의를 신경 쓴다. 방송을 생계를 위한 비즈니스로 바라보고 숫자로 본인의 정확한 시장 가치를 측정하는 그는 누구보다 경쟁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터넷 방송 시절, 여성 연예인과 여성 일반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욕설과 비하를 퍼붓던 그가 최근 들어 그 어떤 MC보다 여성 문제에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이러한 민감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마리텔]에서 시청자 고민 상담을 시도한 그는 여성들의 파벌과 뒷담화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간호학과 남학생에게 그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속성이라고 단칼에 정리했다. 지난 5월에 종영한 MBC every1 [결혼 터는 남자들]에서도 피임을 요구하는 여성에게 서운할 수 있다는 멘트를 한 건 김성주와 장동민이었고, 이를 비판했던 건 김구라였다. 김구라가 여성 문제에 대해 몇 년 사이에 크게 반성하고 각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라디오스타’에서 카라의 강지영에게 애교를 강요했던 게 2013년이다. 하지만 장동민의 여성 비하 발언 이후 상당수 여성 시청자들은 방송 속 여성에 관한 발언에 대해 예의주시하게 되었고, 김구라는 놀라울 정도로 그 허들에 걸리지 않고 있다. 장동민과 김성주, 또 최근 성시경의 실언에서 볼 수 있듯, 여성에 대한 공정한 태도는 말하자면 현재 예능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시장 참가자라면 이러한 가치를 빨리 선점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김구라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제대로 된 시장주의자의 승리다. 사실 누구에게나, 심지어 예능의 신인 유재석에게도 방송은 일차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다. 하지만 단순히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자신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시장의 흐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반영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김구라는 후자다. 그는 새로운 포맷의 예능에 누구보다 빠르게 합류하고, 대중의 반응에 따라 그 안에서의 스탠스를 역시 빠르게 수정한다. 먹고사는 게 진심으로 간절하면, 누구도 관성에 빠질 수 없다. 제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생존 너머에 있는 가치까지 계산해야 한다. 하여 지금 김구라가 최종적으로 증명하는 건, 그가 유지하는 게임 방식의 효율성이 아니라, 게임 룰 자체의 중요성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의 인격을 난도질하던 참가자가 생존을 위해 올바른 척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룰. 문명화된 시장이란 그렇게 돌아간다. 높은 가치에 적절한 숫자를 붙여가며.

글. 위근우
사진 제공. MBC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한국, 광고, 혐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