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생존법│② 김구라의 일곱 가지 생존 준칙

2015.11.03

방송인으로서 김구라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독설의 안착이 아니다. 그가 기존 방송인과 차별화된 가장 새로웠던 부분은 화기애애하고 웃음이 넘쳐나는 TV 속 세계가 사실은 다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세계라는 걸 까발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가난을 경험했던 그는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방송에 한 예능인의 먹고살기 위한 투쟁의 서사를 덧씌웠고, 이는 그의 캐릭터이자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누구의 삶도 ‘먹고사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김구라는 생존의 방식을 자신의 직업윤리로 삼았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생존 전략이 말 그대로 어떻게 전략적으로 작동했는지 궁금한 건 그래서다. 여전히 살아남아 방송으로 먹고살고 있는 김구라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요약.


1. 배고플 땐 먹잇감을 가리지 말라
과거 회당 3만 원을 받으며 인터넷 방송 [김구라와 황봉알의 시사대담](이하 [시사대담])을 진행하던 시절, 김구라는 정말 세상 거의 모든 것을 물어뜯었다. 미국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도 깠고, 반대편의 빈 라덴도 깠으며, 보수당인 한나라당을 까면서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지원도 너무 퍼준다고 깠다. 이효리, 베이비복스 등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적 비하나 문희준의 솔로 활동에 대한 욕설 등은 지금도 그의 원죄로 회자된다. SBS 공채 2기 개그맨이었지만 동기인 홍록기처럼 TV에 자주 출연해 돈을 벌 수 없던 그는 당장 이슈에 빌붙어 쌍욕이라도 해야 지금보다 훨씬 덜 정제되고 거칠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서에 기대 팬덤과 청취자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배고픔이 악의를 정당화해주진 못한다. 김구라 스스로도 에세이집 [독설 대신 진심으로]에서 당시의 자신에 대해 “사냥개가 아니라 미친개”였다며 “물어야 할 대상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한 미친개의 업보”를 반성한 바 있다. 적어도 그때만큼 배고프지 않은 그는 이제 아무에게나 이빨을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tvN [더 지니어스] 시즌 1에서 홍진호의 딕션을 조롱하거나, tvN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에 약한 윤상을 타깃 삼아 놀리는 것처럼 여전히 그는 자신의 방송 내 영향력을 위해 종종 먹잇감을 찾는다. 좀 더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2. 하지만 약자의 위치에 서라
재야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상의 약점을 찾아 독설을 날리며 명성을 쌓아왔지만, 김구라는 절대 자신을 포식자로 포지셔닝하지 않는다. 그가 그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공격성이 아닌 배고픔이다. 가장 공격적인 [시사대담]에서도 그와 황봉알은 출연료 미지급에 대한 두려움, 치안이 썩 좋지 않은 동네에 사는 것에 대한 불안함 등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약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살았던 시기의 어려움은 아들 동현과의 방송 출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개됐으며, 일종의 과거 청산 프로젝트였던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선 출연료가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해 하소연했다. 생활보호대상자로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내뱉은 말들이 악의가 아닌 절박함에서 출발한다는 전제를 공유했고, 이를 통해 독설의 당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필연성이 부여됐다. 자신의 강한 턱과 이빨을 과시하기보단 주린 배를 호소하는 하이에나의 등장. 이것은 분명 기만적인 면이 있지만 대중의 연민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얻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예전만큼 독설에 의지하지 않는 지금도 17억 빚이 있다는 것과 공황장애를 겪은 사실 등을 고백하며 김구라는 약자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3. 부끄러움 없이 동아줄을 잡으라
김구라는 상승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플랫폼, 더 많은 출연료는 그가 꾸준히 강조하는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의 속물근성을 캐릭터 삼기도 하지만, 약자로서의 배고픔을 강조하는 그로선 당연히 더 배부른 환경을 찾아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의 인터넷 방송 시절 팬인 김희철은 김구라가 예전 같지 않아 실망스럽다고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김구라가 강조한 것은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방송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방송에서 케이블로, 케이블에서 지상파 라디오 DJ로, 다시 지상파 TV로 진출하는 과정은 정석적일 정도인데, 그때마다 그는 절대 민망해하지 않고 기회를 붙잡았다. 물론 본인의 기존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 KBS 라디오 [가요광장] DJ 데뷔는 조금 민망했는지 빚을 까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변명처럼 했지만, 만약 그가 재야의 4번 타자 이미지나 수위 높은 코미디를 고수하느라 그 기회를 차버렸다면 지금의 김구라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투명한 상승 욕구는 그의 방송 시장 내 위치를 실제로 높여주었고, 또한 그가 속물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과거의 잘못은 악의가 아닌 먹고살기 위한 속물의 못난 짓 정도로 희석됐다.


4. 과거의 적과 손잡는 걸 마다하지 마라
지상파에 안착한 김구라가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사과를 통한 과거사 청산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가 항상 취했던 태도는 그 당사자에게 잘못된 생각과 악의를 품었지만 이제 바로 잡았다는 게 아니라,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런 심한 말을 했지만 악의는 없었으니 이해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즉 달라진 건 대상에 대한 판단이 아닌 본인의 포지션이다. 진정성이 없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의 사과는 명백히 전략적이었다. 물론 그 역시 자신이 가장 심하게 욕했던 사람 중 하나인 문희준에게 방송에서 공개적인 대면 사과를 하고 그것이 아예 SBS [절친노트]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민망해하지 않고 돌파해 문희준에게 또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공인된 용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얼마든지 패널과 MC로 부딪힐 수 있는 방송가에서 누군가를 피하는 건 본인의 활동 범위를 좁힐 뿐이다. 현재 방송인 김구라의 진짜 능력은 누구든 씹을 수 있는 무자비함이 아니라, 오히려 어색한 사이에도 필요하면 엉기고 함께 방송할 수 있는 태연함이다. [집밥 백선생] 초반 백종원에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확보하려 했던 그가 백종원이 대세가 되고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생기자 성실하게 배우는 학생의 포지션으로 전환하는 모습은 다시 한 번 그의 동물적인 생존 감각을 보여준다.


5. 자기 사람들로 영향력을 확대하라
KBS [스타 골든벨]로 지상파 예능 첫 출연을 했던 당시에 대해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고 기억할 정도로 지상파 진출 초기의 김구라는 자기편은커녕 적대적 분위기에 둘러싸인 ‘독고다이’ 상태였다. 과거사에 대한 빠른 사과와 화해가 이러한 핸디캡을 벗어나기 위한 일차적 노력이었다면, 이후 다른 방송인들과 친분과 신뢰를 쌓으며 소위 ‘라인’을 확보한 건 동아줄을 붙잡고 간신히 올라온 방송계에 안착하기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라 볼 수 있다. 흔히 이경규 라인으로 분류되는 그는 이러한 라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끼리 뭉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한 바 있으며, 자신의 출세작이자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만난 윤종신, 신정환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소속감을 드러낸다. 또한 부활의 김태원을 예능으로 이끌고, 아직 잠재력을 온전히 터뜨리지 못한 조세호를 끊임없이 언급하는 등 직접 자기가 누군가를 끌어주는 라인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JTBC [썰전]에서 만난 강용석은 김구라를 자신의 방송 멘토라고까지 부를 정도다. 세상 모두를 물어뜯고 미움받던 ‘독고다이’는 그렇게 깨알 같은 인맥 자랑을 하는 명사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하하호호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송을 하는 건 아니지만.


6. 현재의 영향력으로 미래의 유망 사업에 투자하라
[썰전] 같은 시사 예능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김구라는 상당히 날카로운 논평가다. 그의 명석함은 암기력이나 시사 상식이 아닌, 현재를 가감 없이 읽어내는 판단력에 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에 따르면 “더 이상 국민 예능의 시대도 없”는 상황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스타라기보다는 아는 사람”에 가까우며, 그들이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분야에서 감동이나 새로운 신선함을 줘야 한다.” 즉 본인의 스타 파워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항상 트렌드를 읽고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 스스로는 예능에서 더는 새로운 포맷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뭔가 새롭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포맷이 등장할 때마다 정말 빠르게 올라탄다. 한국의 첫 시사 예능인 [썰전]으로 본인만이 가능한 영역을 확실히 증명했으며, 인터넷 방송 포맷을 도입하며 화제가 됐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파일럿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출연하는 유일한 참가자이기도 하다. ‘쿡방’의 조짐이 심상치 않자 [집밥 백선생]에도 합류했다. 자신은 PD와 AD가 물에 빠지면 AD를 구할 거라며 그 이유를 “AD는 미래의 PD”라 할 정도로 그는 미래지향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안정적인 현재라는 걸 믿지 않는다. 아수라장을 헤쳐온 이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7. 마지막 한 입은 남겨두라
비록 17억 빚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지금의 김구라가 과거처럼 헝그리 정신을 내세우긴 좀 민망하다. 그는 변방의 참견꾼이 실제 발언의 영향력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좀 더 배부르게 먹고살기 위해 아득바득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른 이가 맞이한 딜레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먹어치울 듯 굴면서도 마지막 한 입은 남겨놓는다. 최근 MBC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는 유력한 연예대상 후보라는 말에 자신은 PD 투표 1위를 하고 유재석은 시청자 투표 1위를 해서 유재석이 대상을 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다면, 정말 모든 것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면 어느 정도는 토해내야 한다. 일인자로서의 책임감으로서든, 대중의 사랑에 대한 환원으로서든.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껏 허기를 모티베이션 삼아 혹은 변명 삼아 달려왔던 예능의 하이에나가 사자의 책무를 받아들이는 건 자칫 그동안의 생존 공식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그의 첫 번째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히딩크가 여전히 배고팠다면, 김구라는 여전히 배가 고파야 한다.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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