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더 소다, 3도짜리 소주 따위! vs 3도니까 먹지!

2015.10.29
최근 소주 시장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세월을 거듭하며 알코올 도수를 점점 낮춰가고 있는 것은 물론, 앞다퉈 과즙소주를 개발하더니 이제는 아예 술보다 음료수에 더 가까운 초저도주 부라더 소다까지 출시된 상황이다. 강한 알코올 향과 쓴맛 때문에 마시기 힘든 것으로 인식되던 소주가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었다 할 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주 특유의 맛을 좋아하던 기존 소비자들에게도 반길 만한 상황인지는 의문이다. 과연 소주의 생존전략은 현명했던 것일까. [아이즈]의 두 기자가 지금의 저도수 붐이 왜 지겹게 느껴지는지, 혹은 어째서 반가운지에 대해 각자 이야기했다.


고도수 소주, 술자리의 맛
그만하자, 여기서 끝내자. 알코올 3도짜리 ‘부라더 소다’가 유행하는 세태를 지켜보며 지겨움과 침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고작 13도에서 15도밖에 되지 않는 자몽맛, 복숭아맛, 유자맛 소주도 모자라 이제는 밀키스에 알코올 몇 방울만 떨어뜨려 만든 것 같은 음료까지 ‘나도 술이요’라며 얼굴을 내미는 판국이다. 부산에서 보낸 대학생 시절, 전국 각지의 소주 중에서도 제법 독한 편으로 손꼽히던 C1이 21도의 벽을 무너뜨리고 19.5도로 재탄생했을 때, 꼭 그때와 같은 참담함이 다시 한 번 밀려들었다. 당시 C1의 변심 소식을 접한 친구와 나는 학교 앞 허름한 술집에서 5천 원짜리 두부김치를 시켜두고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것보다 덜 쓴 소주라니,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그것이 더 큰 비극의 전조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상하게 저도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소주 시장이 정말로 술에 몸을 사리는 소비자 탓인지, 허니버터칩 열풍을 벤치마킹한 주류회사 탓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소주 마니아들은 묘한 소외감을 느끼는 중이다. 술집들은 문 앞에 과일맛 소주나 알코올이 가미된 소다를 판다고 신나게 광고하지만, 20도 이상의 고도수 소주(진로 골드, 참이슬 클래식, 한라산 등)는 파는지 아닌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집이 아닌 곳에서 독한 소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무슨 전국팔도유랑이라도 떠나야 할 판이다. 주류회사들은 저도수 소주를 출시하며 음주를 즐기지 않던 고객층까지 사로잡았다고 홍보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회가 고도수 소주를 찾는 나 같은 이들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술은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야 한다는 야만적인 발상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하도록 방조한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더 이상 밥을 주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저도수 소주에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도저히 술자리의 ‘맛’이란 것에 어울리지 않는 술이기 때문이다. 달달한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고 혀가 찌릿하도록 소주 한 잔을 탁 털어 넣을 때, 혹은 그 쓴맛에 ‘크-’ 소리를 연발하며 간간한 오뎅탕 한 숟갈을 입에 넣을 때의 그 맛은 저도수 소주로는 구현할 수 없다. 달고 짠 맛을 함께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안주와 역시 다디단 과일향 소주가 어울릴 리 만무하다. 자극적인 중국음식을 먹으면서 식도가 타버릴 것 같은 고통에도 고량주나 이과두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특별히 술에 센 사람이 아니라면 한두 병만 나눠 마셔도 적당히 취기가 올라 사소한 이야기에도 발그레해진 얼굴로 깔깔 웃게 되는, 그래서 두고두고 ‘좋았다’고 기억하게 될 분위기란 건 또 어떤가. 저도수 소주라면 취할 정도로 마시기에는 배가 부르고, 한두 병만 마시기에는 어쩐지 머쓱한 기분으로 술자리를 파하게 된다. 치킨에 맥주, 파전에 막걸리가 아니라 소주를 선택할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만, 지금의 저도수 붐은 주류회사가 어떤 술도 대체하기 힘든 소주 특유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심지어 일반적인 소주와 비슷한 가격이나 실은 알코올이 적게 들어간 덕분에 원가는 더 낮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면, 이 아쉬움과 허탈함은 분노로 바뀐다. 어쨌든 소주 회사들은 나라는 단골을 잃었고 난, 소주라는 단골 술을 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이대로라면 회식 자리에서 모두가 맥주를 마실 때 홀로 소주를 고집했던 나의 의리도 곧 접어버리게 될지 모르겠다. 소주 말고도 술은 많으니까.
글. 황효진


부라더 소다, 한 병을 다 마셔도 괜찮다!
대학에 들어와 첫 O.T 때 하필이면 말주변 없는 선배 옆에 앉게 되었다. 그 선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맥을 섞어 파도타기를 하는 것이었고, 나는 앉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소맥 종이컵 3잔에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술 취해 인사불성이 된 애들을 모아놓는 소위 ‘시체실’이라는 곳이었고, 그 이후 나는 시체실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술을 지지리도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친가의 유전자를 닮아 술 한 모금에도 얼굴이 검붉게 타올랐고,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맛도 없고 기분도 썩 좋지도 않은데, 대학의 술 문화는 어찌나 과한지. 술을 잘 마시는 게 마치 능력처럼 여겨지거나 대취하여 사고 치는 것이 무용담처럼 회자되는 술자리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취했을 때 괜히 목소리가 커지고 호탕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술은 확실히 해방감을 줬다. 문제는 맥주 300cc 정도인 나의 적정 주량이었다. 이토록 경제적인 주량이라니! 남들은 취하고 싶어서 몇 병을 마시는 걸 몇 모금이면 성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을 절약해주는 얄팍한 주량은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술자리에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일찍 취해서 먼저 가버릴 수도 없고,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술자리에서 오래 버티는 전략은 둘 중 하나다. 맥주 한 잔을 시켜두고 새 모이처럼 홀짝홀짝 마시거나, 안주로 배를 채우거나. 이러다 보니 술을 점점 음미하는 쪽에 가까워졌고, 달달하며 도수가 낮은 편인 버니니, KGB, 스미노프가 나의 취향이 되어 있었다. 올해 3월 ‘순하리 처음처럼’이 나오기 전까지. 

순하리의 첫인상은 획기적이었다. 첫모금은 달큼하고 유자향의 여운이 여리게 남았다. 소주를 기피하는 원인이었던 쓴맛이 사라지자 소주에 대한 부담감은 확 내려갔다. 지난 7월 한국소비자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저도주에 만족하는 이유의 38.9%는 ‘술이지만 맛있어서’였고, 20.4%는 ‘마시기 편하면서 술처럼 취해서’였다. 순하리 열풍은 달달하고 맛있는 술에 대한 보편적인 욕망을 몰고 왔다. 술을 못 마시는 나뿐만 아니라 말술로 불리는 애주가도 호기심에 순하리를 시켰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술을 잘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갈수록 께름칙했으나, 나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도 못 마시는 사람도 다 함께 천천히 취하는 대화합의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저도주를 시도했지만 실패를 맛봤던 주류 업계에서는 순하리 열풍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순하리 이후 저도주 출시 제품은 10여 개를 넘어섰고, 순하리 14도, 자몽에 이슬 13도, 드디어 3도짜리 탄산 소주 ‘부라더 소다’가 나오면서 도수는 끝을 모르고 떨어졌다. 

3도도 술이냐고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안다. 3도도 마시면 취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정도로 도수가 떨어지면 술 못하는 사람에게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거다. 고백하자면, 부라더 소다를 마시고 태어나 처음으로 술 먹고 배가 불렀다. 부라더 소다 한 병(750ml)을 거의 다 마셔야 취한다 싶으니 확실히 도수가 낮긴 낮다. 맥주가 배불러 싫다던 남들의 이야기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각 중 하나였다. 어떻게 술을 먹고 배부를 수 있는 거지? 이런 내게 부라더 소다는 주당처럼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기쁨과 술을 배부르게 마시는 기쁨을 알렸다. 다만, 이 술은 너무 달다. 한 병을 다 마실 정도가 되면 너무 달아서 물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 술을 싫어할 것 같진 않다. 웃돈을 주고 밀키스를 사 마시는 것 같아도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취하는 기쁨에 비할 수 없으니. 
글. 심하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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