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예능│② 여자가 예능에서 피해야 할 일곱 가지

2015.10.06

연예인은 누구나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여성 연예인은 아주 작은,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더 쉽게 ‘논란’의 대상이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논란’으로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것은 연예 매체들의 몫이다. “여자 연예인이 욕먹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패션 뷰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자칫하면 잘난 척한다고 욕을 먹는다.” 연예기획사 관계자 A씨는 말했다. 점점 더 촘촘해지고 어디서 던져질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논란의 그물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의 사례들을 통해, 여성 예능인이 살아남기 위해 일단 피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1. 찍히면 안 된다.
“요즘은 모든 것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논란’의 시작은 다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별것 아닌 일이 일파만파 번진다.” 방송 프로그램 홍보를 맡고 있는 B씨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장에서 있었던 이태임과 예원의 말다툼을 들었다. 제작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었지만, 기사가 난 뒤로는 젊은 여성 연예인 간의 욕설과 ‘기 싸움’이라는 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고 현장 동영상이 공개되며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각각의 인물에 감정이입하고, 다른 상황을 대입하며, 발언의 뉘앙스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태임은 자숙 기간을 가졌고, 예원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에서는 유행어처럼 신나게 두 사람의 사건을 소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누가 먼저, 혹은 누가 더 잘못했느냐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것은 정말 그렇게 큰 문제였을까?


2. 거절하면 안 된다.
2013년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카라가 출연했을 때, 멤버 강지영은 갑자기 “애교를 보여 달라”는 MC들의 성화에 난색을 표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걸 그룹 멤버에게 애교나 섹시 댄스를 요구하는 것은 예능의 흔한 관습이지만, 연상의 남성 MC들과 어린 여성 게스트 사이의 권력 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바람에 비난받은 것은 강지영이었다. ‘일본에서는 잘 하더니 왜 한국에선 못 한다는 거냐. 뜨고 나서 변했다. 프로 의식이 부족하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고, 일부 매체에서는 강지영이 과거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기꺼이 애교를 보여주었다며 ‘달라진’ 태도를 강조했다. 이후로도 ‘라디오스타’는 다른 여성 게스트들에게 애교를 요구할 때 ‘강지영 헌정’이라는 자막을 띄웠고, 매체들은 강지영이나 김구라에 관한 새로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재조명’해 기사화한다. 그리고 강지영은 다시 비난받는다. 


3. 하란다고 하면 안 된다.
지난 7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AOA의 지민과 몬스타엑스의 주헌은 MC들의 요청에 따라 ‘랩 배틀’을 선보였다. “솔직히 나는 아이돌로선 팬. 그러나 랩은 잘 못 해. 그 랩은 [언프리티 랩스타] 빨”이라는 주헌에게 지민 역시 랩으로 응수했고 “아이돌로서도 인정 못 하겠다”며 받아쳤다. 가벼운 갈등과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 역시 예능의 방식이고, 출연자는 일시적으로 그 콘셉트를 소화할 수밖에 없지만 어린 여성 연예인들은 사소한 언행이나 순간의 표정까지 엄격한 잣대로 재단당한다. 한 매체는 과거 Mnet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자신을 도발한 상대에게 ‘손가락 욕’을 했던 지민이 이번에는 쿨하지 못했다며 래퍼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고, 또 다른 매체는 ‘뒤끝 작렬’이라고 표현했다. 얌전히 있으면 병풍이 되고, 적극적으로 나서면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구조에서 ‘태도 논란’을 피해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4. 자신을 많이 드러내선 안 된다.
tvN [삼시세끼]는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프로그램이다. 매 끼 밥을 해 먹고 농사일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다. 그러나 지난 7월 출연한 김하늘은 괜한 논란에 휘말렸다. 서투른 요리 실력으로 옹심이라는 메뉴를 고집하다가 맛이 의심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이서진 등 ‘옥순봉 식구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요리에 능숙했던 다른 여성 게스트들과 달리 기초가 부족한데 자신감을 드러내고 엉뚱한 고집을 부렸다는 데서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출연자가 자신의 성격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으로 좌충우돌하는 것은 예능에서 재미를 획득하는 과정의 일부다. 어떻게 봐도 ‘논란’이라 할 수 없는 이 에피소드는, 그러나 김하늘의 열애 소식과 함께 다시 ‘과거 태도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5. 못 먹어도 안 되고, 너무 잘 먹어도 안 된다.
걸스데이의 혜리는 지난해 MBC [일밤] ‘진짜 사나이 – 여군 특집’ 1기에서 커다란 상추쌈을 바쁘게 입에 밀어 넣는 ‘먹방’으로 화제가 됐고, 이후 애교스런 모습을 보이며 연속타를 쳤다. 예쁘고 날씬한데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로 ‘대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군 특집’ 2기 멤버가 된 에이핑크의 보미는 원래 먹는 걸 좋아하고 잘 먹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붙인 ‘제2의 혜리’, ‘먹방 콘셉트’라는 수식어로 인해 “작위적이다”라거나 “뜨고 싶어서 오버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걸스데이의 소진은 지난 7월, 컴백을 앞두고 출연한 인터넷 방송 [최군 TV]에서 진행자 최군이 준비한 만두를 여러 차례 거절한 것으로 ‘태도 논란’에 휘말렸다. 언제나, 무엇이든 잘 먹어야 한다. 하지만 ‘가식적으로’ 먹거나 ‘잘 먹는 척’하면 안 된다. 물론 살이 쪄서도 안 된다.


6. 성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2014년, 이효리, 문소리, 홍진경 등 세 명의 여성 MC가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SBS [매직아이]는 야심차게 등장한 프로그램이었다. 이효리는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한 파일럿에서 피임기구 사용을 거부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는 대목에 이르러 ‘정상적이지 않은 피임법’에 대해 에둘러 말하는 이적을 향해 “질외사정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돼요. 과학용어예요”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이 발언은 ‘음란한’ 의미가 아니었지만, 남성 연예인들이 토크쇼에서 이러한 피임법에 대해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을 때와 달리 성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했다는 것만으로 논란이 됐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방송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냐”, “더럽다” 등의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했다. [매직아이]는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6개월 만에 폐지됐다. SBS 예능국의 한 PD는 “대중은 이효리가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했던 것처럼 뛰어놀고 웃겨주기를 바라지, 그가 똑똑하게 자기 생각 말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7. 돈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지난 5월 JTBC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돈이 없어 데이트할 때 갈등을 겪는다”는 한 관객의 사연에, 요조는 20대 때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가장 싼 식당을 찾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돈을 아껴야 했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리고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 낭만이지 계속되니 한숨이 나왔다”는 말로 상대의 고충에 공감했다. 그러나 방송 내용이 기사화되자 “네가 내지 왜 빌붙어놓고 그러냐”, “남자가 돈 없다고 욕하는 거냐”를 비롯한 악플이 상당수 쏟아졌다. 결국 요조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가 안 냈겠습니까. 그 친구랑 10년 동안 만날 이유도 없었겠죠. 그렇다고 힘들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해서 행복했지만 힘들었다”고 설명한 데 이어 자신이 순식간에 ‘남자한테 빌어먹고 사는 여자’로 취급당한 데 대한 불쾌함을 토로했다. 데이트 비용은 두 사람이 조정하고 합의하면 되는 지극히 사적인 사안일 뿐인데,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온갖 억측을 비롯해 전혀 상관없는 부분까지 모욕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여성 연예인은 도대체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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