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예능│③ 장도연부터 서유리까지, 예능이 주목해야 할 여자들

2015.10.06

여성 방송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형적인 캐릭터로 소비되곤 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예쁜 여자 아니면 그렇지 못한 여자로 나뉘고, 토크쇼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젊고 예쁜 여자이거나 아이를 가진 기혼 여성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여성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여성 연예인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장점을 보여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났을 때, 시청자들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여성이 쉽게 살아남기 어려운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조금은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도연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174cm. 성인 남자와 비슷한 신장을 가진 장도연은 KBS [개그콘서트] ‘패션 NO.5’에서 큰 키를 활용해 모델 같은 포즈를 보여주고, ‘키 컸으면’에서 키가 작아 고민인 이수근의 머리 위에 종이를 대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거나, 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서는 작은 여성이나 남성을 놀리기 위한 하나의 대립항으로 활용되곤 했다. 혹은 tvN [코미디 빅리그] ‘이개인 걸 그룹의 비밀’, ‘썸&쌈’에서처럼 키 크고, 예쁘고, 마른 여자인 장도연과 그렇지 못한 다른 여자를 비교하기 위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오직 ‘키 큰 여자’라는 장도연의 외모에만 집중한 코미디들이었다. 

의외의 모습: “너무 큰 것 아니냐.” 성시경은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한 장도연에게 물었다. 174cm의 키에 힐을 신었던 그는 이 질문에 “여기서 제일 커 보이고 싶다”, “2m로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답하며 난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재치 있게 넘어갔다. 기존의 여성 게스트들이 누군가 자신의 외모를 놀리는 발언을 하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며 놀림감이 되곤 하는 것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장도연은 신동엽이 “말을 너무 잘해서 개그맨을 하라고 권했”을만큼 잠재력을 갖고 있었지만, “9년 동안 아무도 자신에게 토크를 시켜주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9년 만에야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여러 토크쇼에 출연 중이다.




김민경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너도 다른 연예인들처럼 예뻐져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 아냐?” [개그콘서트] ‘뿜 엔터테인먼트’에서 김민경이 듣던 얘기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그는 코미디 속에서 늘 날씬하게 바뀌어야 할 변화의 대상이었고, “한 입만 먹는 게 뭐야” “보통이 뭐야?” “목매는 게 뭐야?”라고 말하는 김민경의 식탐은 늘 비난의 대상이었다. [개그콘서트] ‘그냥 내비둬’에서 커플의 애정 행각을 보여줄 때 역시 늘 놀림의 대상은 김민경의 몸매였다. 한국에서 김민경 같은 여자 희극인을 가장 안일하게 활용하는 방법.

의외의 모습: 유민상은 코미디 TV [맛있는 녀석들]을 시작할 때 김민경에게 물었다. “너 여기 있는 거 안 창피해? 여기 돼지 집합소잖아.” 하지만 김민경은 ‘김맹수’가 되어 맛있는 음식을 탐닉했고, 많이 먹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먹방’ 프로그램들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이 날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지만, 무엇보다 김민경은 몸매에 상관없이 누구나 먹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송은이&김숙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두 사람 모두 중년이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물어본다. 심지어 [무한도전] ‘로맨스가 필요해’에서는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던 상대와 단체 소개팅까지 시켜줬다. tvN [택시]에서 송은이는 “숙이와 나는 종종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농담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의 말처럼 중년 여성 예능인들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처럼 엄마의 역할을 대변하거나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처럼 시어머니나 며느리로서의 역할, 혹은 시끄러운 여자의 캐릭터로만 활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의외의 모습: 송은이와 김숙은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통해 연애나 결혼 계획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는데 흡연 사실을 남편에게 알려야 할지부터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생각, 급격한 다이어트 후 노화된 얼굴에 대한 고민 등을 유쾌한 방식으로 상담하는 그들의 모습은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특히 갖가지 사연마다 각종 인맥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통화를 하며 재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20년 이상 활동한 예능인으로서의 힘이 드러나는 부분. 두 사람이 직접 만든 방송이 아니었다면, 대중은 이들의 이런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서인영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MBC [우리 결혼 했어요]에서 ‘싫은 것은 싫다,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는 솔직한 모습 때문에 인기를 얻었고, Mnet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는 이른바 ‘신상' 패션 아이템을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신상녀”나 “센 언니”로 불리던 그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거나, 결혼 생활을 하며 가상 남편의 부모와 지인 앞에서 성격을 누르는 모습이 재미의 포인트였다. 그러나 그는 [서인영의 카이스트]에 대해 “스케줄이 너무 많은데 내가 싫어하는 공부를 시키니까 힘들었다. 리얼리티를 너무 많이 해서 자다가도 목을 졸리는 꿈을 꿨다”고 회상했다.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홀로 미국으로 떠났을 정도. 하지만 다시 돌아온 뒤에도 JTBC [대단한 시집]에서 잔소리와 농사일을 인내하며 시댁에 순응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패셔니스타의 수난기’를 보여줘야 했다. 이른바 기가 세고, 화려하게 꾸미는 여자가 겪는 고생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 것.

의외의 모습: 그러나 서인영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4가지쇼 2]에서 “예전에는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지 않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죠. 요즘은 잘 안 하고 다니고. 너무 편해요”라고 말했고, KBS [해피투게더3]에서 다른 게스트들이 “내 딸이 (서인영처럼) 이럴까 봐”라는 반응에도 타투를 했을 때 들었던 아버지의 성화에 “왜 아빠 스타일로 날 맞추려 해. 난 아빠의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일화를 말한다. 대중의 시선과 별개로 자신의 현재 모습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 그래서 [마녀사냥]에서는 ‘된장녀’ 아니냐는 말에 “난 된장녀가 아니라 신상녀”라며 “남에게 뜯어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성인 여자가 인기 토크쇼에서 ‘신상’ 구두를 사랑하고, 스스로 야동을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당연한 것이지만, 몇몇 여성 연예인을 제외하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김정민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상식이 다소 부족하거나, 엉뚱한 대답으로 남성 패널이나 MC에게 충고나 설명을 듣는다. 프로그램을 위한 설명을 듣는 여성 캐릭터로서의 역할. 그것이 많은 프로그램에서 김정민의 역할었다. E채널 [용감한 기자들]에서 김태현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백치미 있다”는 말을 듣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는 김구라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이야기 주제와 별개로 명품 브랜드에 관심 있어 하는 모습이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예쁘고 재치 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맞추는 딱 그만큼의 위치. 

의외의 모습: 김정민은 온스타일 [겟잇뷰티]를 통해 부각되기 시작했다. [겟잇뷰티]는 일반인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이크업을 받는 뷰티 프로그램이기에 방청객과의 소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 그곳에서 김정민은 전반적인 진행을 하는 메인 MC 곁에서 메이크업 현장과 방청객 사이를 유연하게 연결했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끌어가는 진행자의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또한 과거 ‘김정민 동영상’이란 루머가 퍼졌을 때는 스스로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음란 동영상. 원룸에서 김정민 셀카”라는 제목으로 해명 동영상을 올려, 해당 동영상을 검색하는 사람이 이 영상을 불 수 있게 하는 등 빠른 대처를 하기도 했다. 기회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스스로 “백치미가 있다”는 말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모든 분야를 다 잘 알 수는 없다. 김정민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친화력이나 관심 분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아닐까.


서유리
예능에서의 흔한 모습: 게임 [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 잔나와 아리 코스튬 플레이를 한 사진으로 남성들에게 유명세를 얻었다. 그 이후 tvN [SNL 코리아](이하 [SNL])의 크루로, XTM [남자공감 랭크쇼 M16](이하 [M16]) 등에서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면 “글래머러스” 같은 수식어가 달린 제목들이 많았고, 특히 [SNL] 크루였을 때는 ‘브라 앤 더 시티’에서 지나, 클라라와 같이 가슴이 무거워 어깨가 결리는 역할, 레드카펫의 노출사고를 패러디하는 모습 등을 연기했다.

의외의 모습: 사실 [SNL] ‘GTA’와 [M16]에서 성우나 MC로도 활약하고 있었지만, 섹시한 이미지에 가려져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텔]에서는 방송 전체의 흐름을 잡아주는 동시에 각각의 출연자들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도와주기도 하고, 인터넷 용어를 설명하며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스 마리테’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비서가 아니라 웃기지 않는 농담은 무시하는 캐릭터로, 현재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목소리 연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코스튬 플레이까지 가능한 능력이 [마리텔]에서 집대성됐다.

글. 이지혜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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