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소년진화론

2015.10.06

영화 [사도]의 첫 장면은 강렬하다. 관 속에 죽은 듯 누워있던 사도세자(유아인)의 모습은 결국 뒤주 안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그의 결말을 자동 연상시키며 관객을 시작부터 폐쇄공포의 세계로 잡아끈다. 동시에 이는 유아인이 지금까지 연기해 온 청춘들의 실존적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렇게 어딘가에 갇히고 붙박인 모습은 유아인의 청춘들을 지배해 온 대표적 이미지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좁은 뒷골목과 자물쇠로 잠긴 방, [완득이]의 옥탑방, SBS [패션왕]의 봉제공장, JTBC [밀회]의 가파른 난간 같은 방 등 주요 작품 속 캐릭터들이 기거해 온 공간만 봐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는 그들의 태생적 빈곤을 설명하는 배경 이전에 이 시대 청춘들이 처한 제한적 조건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2000년대 이후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문학에 빈번하게 출몰하는 옥탑방, 고시원 모티브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단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내일이 없고’ 출구가 막힌 현실로 인해 방황하는 것이다. 지금 유아인이 ‘청춘의 아이콘’으로 불릴 수 있는 까닭은 그 전망 없는 삶의 불안이라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실존적 고민을 독자적인 필모그래피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어서다.

유아인의 연기 데뷔작이 2004년 KBS [반올림]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은 청춘성장드라마라는 장르가 멸종될 당시 흔적기관처럼 남은 거의 유일한 청소년드라마였다. 마지막 청춘시트콤 MBC [논스톱]에서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 때”라는 유행어가 낭만과 성장의 장르인 청춘물이 지속될 수 없는 시대의 징후를 보여주던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아인의 배우로서 성장은 이 청춘성장물이 사라진 시대, 정확히는 젊은이들의 성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아인의 인물들이 그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기어코 온몸으로 맞서는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유아인 자신이 ‘소년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특징의 원형은 영화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잘 나타난다. 주인공 종대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한’ 곳으로 정의한다. 의문을 품지 않으면 불가해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태도는 ‘소년성’의 핵심이다. 유아인의 소년들이 자주 넓은 바깥세상으로 길 떠나거나 질주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완득이], [깡철이]는 모두 인물들이 길 위에 선 모습에서 마무리되고, “소년성의 엑기스”였던 [밀회]의 선재는 질문의 힘으로 자신 뿐 아니라 밀실 속에 갇혀 있던 기득권 여성까지 탈출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에 몰입하게 만드는 유아인 연기의 가장 큰 힘은 자전적 고민을 투영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어릴 때부터 “유독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고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는 소년의 고민은 연기를 시작한 뒤 좋은 배우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고 그 고심은 곧 “배우란 동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하나의 답을 갖추게 됐다. 그의 캐릭터들이 마치 한 인물의 성장 기록이자 이 시대 청춘의 초상으로 느껴지는 것, 그럼에도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처럼 삶과 연기론과 세계관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올해 유아인의 전성기는 그 지속적인 고민이 진화한 결과다. 가령 자전적 경험과 거리가 먼 [베테랑]의 첫 악역 연기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를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선과 악의 개념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로서 시대의 그늘을 담아 해석한 것이 주효했다. 심지어는 [사도]의 광인 이선마저 기성세대에 억압당한 오늘의 청춘으로 표상된다. 유아인의 소년들을 가두었던 ‘잠긴 방’의 이미지는 이 세대갈등의 참혹한 비극에서 한 평 남짓한 뒤주로 정점을 찍는다.

최신작 SBS [육룡이 나르샤]가 기대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아인은 청년 이방원을 50부작에 걸친 대서사로 연기하면서 자신의 청년 성장사를 입체적으로 확장하고 변주할 최적의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가 어떠한 시대의 얼굴로 드러날지 궁금해진다.

글. 김선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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