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혜의 침묵과 ‘차이나 머니’의 상관관계

2015.09.16

윤은혜와 디자이너 윤춘호가 중국발(發) 프릴 대전을 벌이고 있다. 디자이너 윤춘호는 윤은혜가 지난달 29일 중국 상하이동방위성TV [여신의 패션 시즌2](이하 [여신의 패션])에서 발표한 화이트 오버사이즈 프릴 숄더 코트에 대해 지난 4일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의 브랜드 아르케의 2015 가을·겨울(F/W) 컬렉션을 베낀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이에 윤은혜 소속사 제이아미엔터테인먼트는 이틀 뒤 “아르케를 홍보하려 윤은혜 이름을 도용 말라”고 반박했지만 윤은혜를 향한 비난 여론에 기름만 부은 격이었다. 여론전에서 압승한 윤춘호가 지난 8일 “베끼지 않았느냐”며 거듭 조목조목 따졌지만 묵묵부답이던 윤은혜는 지난 13일 자신의 웨이보에 “한 번 1등 했을 뿐인데 마치 늘 1등한 것처럼 얘기한다”며 맥락에서 벗어난 엉뚱한 글을 남겼다.

윤춘호는 프릴 장식이 이미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공개된 레시피이며, 자신도 그 중 한 명일 뿐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윤춘호는 프릴 장식 뿐 아니라 그 장식의 형태·길이·부피·위치, 전체적인 실루엣·색상까지 비슷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애초에 윤은혜가 ‘프릴 플레이’로 유명한 드리스 반 노튼·랑방·빅터&롤프·이자벨 마랑을 이 진흙탕에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다. “표절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며 유사성을 일부 인정한 뒤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모양새만 취했어도 국내에서의 곱지 않은 시각은 다소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은혜는 표절 여부를 떠나, 들끓는 한국 여론을 식힐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선택의 이면에는 ‘차이나 머니’가 깔려 있다.

한국 배우들에게 방송사만 300여 곳이고 한 해 500여 편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한 때 잘 나갔던 스타든 한 번도 제대로 뜬 적 없던 이들이든 인생 역전을 꿈꿀 수 있다. 이다해·이광수·지드래곤의 웨이보 팔로워가 각각 660만~670만 명으로 엇비슷하고, 박해진·이태란·장나라·장서희·추자현·채연·홍수아의 인기는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 지창욱은 한류 배우 인기투표에서 김수현·김우빈·이민호·이종석을 제치기도 했다. 윤은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006~2007년 단 2년 동안 MBC [궁], KBS [포도밭 그 사나이], MBC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3연타를 쳤지만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고만고만한 패셔니스타에 머물렀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윤은혜는 한류 1세대 걸 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았고, [궁]은 2006년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에서 최고의 드라마, 최고의 여배우, 최고의 커플상을 휩쓸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의 중성적인 매력은 윤은혜를 중국의 패셔니스타로 만들었고, 지난해 11월 한중합작영화 [사랑후애]에도 캐스팅됐다. 지난 7월에는 문제의 [여신의 패션] 고정 멤버로 발탁됐다.

그러나 중국 한류 시장도 이미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영애처럼 MBC [대장금] 한 편으로 10년 넘게 군림하던 시절은 끝났다. 송혜교처럼 현지에서 부지런히 영화를 찍어야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 2013년 KBS [미래의 선택]이 마지막 작품인 윤은혜도 후속 콘텐츠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여신의 패션]은 윤은혜가 현지에 진출해 스타로서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가늠할 시험대였다. 게다가 [여신의 패션]은 말만 잘하면 디자인한 의상 가격이 10억 원대에서 40억 원대로 치솟는 현란한 돈 잔치다. 그러니 디자이너 겸 런웨이 모델 겸 온라인쇼핑몰 피팅 모델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 겸 헤어 아티스트란 1인5역도 거뜬히 소화해야 한다. 지난 12일 방영분에서처럼 무대에서 봉춤도 불사해야 한다. 윤은혜가 1~5화에서 선보였던 의상의 낙찰 가격을 합치면 110억 원이 넘는다. 중국 온라인쇼핑몰 밍싱추이는 이 중 윤춘호가 의혹을 제기했던 화이트 코트의 판권을 무려 49억 원에 낙찰 받았다. 


윤은혜는 [여신의 패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2화까지 함께 했던 이석태 디자이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광원으로 교체됐어도 쇼는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노광원은 핸드백 디자이너 겸 스타일리스트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출연자들과 짝을 이룬 리웨이 등처럼 매년 컬렉션을 발표하는 의류 디자이너가 아니지만 [여신의 패션] 3화부터 의류 디자이너로 등장했다. 제작진이 출연진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방송 중 친절하게 삽입한 그래픽 화면인 ‘designer's work’란에는 노광원이 스타일링에만 관여했던 이연희의 돌체앤가바나 화보, SBS [유혹] 중 최지우의 제이멘델 드레스 및 디올 재킷이 마치 그의 작품인양 소개돼 있다. 문제될 것은 없다. 보도자료에서 스스로 인정했듯 빅터&롤프·랑방의 흘러간 컬렉션에 기대서라도, 윤은혜를 내세워 중국 시장에서 잘 팔릴 제품만 내놓으면 된다.

윤은혜가 표절 논란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광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채 뒤로 빠질 수도 없다. 베꼈든 안 베꼈든 한국 여론을 잠재우려고 전향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순간 중국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의류 매출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중국 소비자들은 ‘made by Yoon Eun-hye’에 열광하는 것이지 노광원에게 지갑을 여는 게 아니다. 중국 여론도 심상치 않다. 윤춘호에게 표절 의혹을 귀띔했던 이도 중국 바이어였고, 윤은혜의 추가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도 중국 블로거였다. 적어도 윤은혜에게, 지금 사력을 다해 잡아야 할 것은 중국 여론이지 한국 여론이 아니다. 그러니 이 마당에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아닌 웨이보에 근황 사진과 짤막한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윤은혜의 침묵은, 그 자체로 한국의 팬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김선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입고, 바르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특히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소비재들이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헤치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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