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② ‘Bubble Pop!’부터 ‘잘나가서 그래’까지, 현아의 무대들

2015.08.25

현아는 오로지 무대 위에서 이슈를 만든다.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Irony’부터 ‘Change’와 ‘Bubble Pop!’, ‘빨개요’로 이어지는 솔로 활동, 장현승과 결성한 유닛 트러블 메이커까지 섹시함이라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일관된 전략은 매번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그 사이, 현아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그의 활동 중 중요한 기점이었던 여섯 곡을 골라 현아가 어떻게 지금의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이르렀는지, 어떤 시선들을 받아왔는지 살폈다.
 


Change
원더걸스가 ‘Irony’로 데뷔했을 때도 현아는 비중과 상관없이 팀의 인상을 결정짓는 멤버였다. 짧게 뻗친 단발머리에 핫팬츠 차림을 하고 온 힘을 다해 춤추는 그의 모습은 달콤한 사랑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여자아이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Hot Issue’, ‘Musik’ 등 포미닛의 데뷔 초기 콘셉트 또한 남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소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자기중심적인 가사와 힘이 실린 퍼포먼스는 현아의 첫 솔로곡 ‘Change’로도 이어졌다. 그래서 ‘Change’는 현아의 섹시함을 굳이 부각시켰다기보다, 기존의 걸 그룹 멤버들과 차별화되는 퍼포머로서의 무대 장악력을 증명하려는 자리와도 같았다. 배를 드러낸 톱과 한쪽 밑단을 살짝 걷은 헐렁한 팬츠, 굽 높은 운동화 등 걸스힙합의 정석적인 스타일링에 힘차게 골반을 튕기거나 펌핑을 소화하는 안무, “boy boy boy 생각대로 change / girls girls girls 나를 따라 change” 등의 가사까지 그의 카리스마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에서 현아가 ‘Change’의 골반 댄스를 선보이자 민망하다는 의견이 쏟아졌으며, KBS는 뮤직비디오에 ‘19세 이상 시청 가능’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Bubble Pop!
지금도 종종 현아의 이름 앞에 붙는 ‘포스트 이효리’라는 수식어는 이때 생겨난 게 아닐까. 창백해 보일 정도로 새하얗던 피부를 까무잡잡하게 태우고 나온 스타일링뿐 아니라, 단순하게 말해 귀여움과 섹시함을 적절하게 배합한 곡의 분위기마저 이효리의 솔로 활동 초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Bubble Pop!’은 그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섹스어필하는 곡이었다. 뮤직비디오는 현아의 늘씬한 몸매와 새빨간 입술을 중점적으로 비췄고, 안무는 허리와 엉덩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음악에는 ‘아’, ‘우’, ‘음’ 등 애교스러우면서도 유혹적인 현아의 목소리가 효과음처럼 중간중간 삽입되었다. 전체적으로는 걸 그룹의 일반적인 섹시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서도 순정을 고백하거나 딱히 유혹하지 않는 ‘Bubble Pop!’의 가사는 예측불가능하면서 도발적이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여성의 얼굴을 현아에게 덧씌웠다. 이 곡은 미국 음악 전문 매거진 [SPIN]에서 뽑은 2011년 베스트송 9위에 오르는 등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핫팬츠와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국에 제재를 권고했다. 결국 현아와 큐브엔터테인먼트(이하 큐브) 측은 안무를 수정하지 않고 아예 ‘Bubble Pop!’ 활동을 마무리해버렸지만 말이다. 


Trouble Maker
현아는 늘 남성 댄서와 호흡을 맞춰왔으며, 이것은 그의 무대가 선정적이라고 지적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비스트의 장현승이 결성한 트러블메이커는 아예 현아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조성되는 성적 긴장감 자체를 콘셉트로 삼은 유닛이었다. 둘은 유닛의 데뷔 무대였던 ‘2011 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뱀파이어와의 키스’라는 주제로 실제 키스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단숨에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상 ‘Trouble Maker’는 은근한 분위기로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과 거기에 매혹되는 남성의 이야기고, 때문에 현아가 무대에서 보여준 것은 가사 그대로 고양이처럼 도도한 여성의 캐릭터였다. 중요한 건 가슴골을 살짝 드러내는 현아의 의상이나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터치하는 포인트 안무가 아니라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무드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현아는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안무, 노출이 심한 의상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무대 한 켠에 가만히 서 있거나 카메라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얼마든지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스킨십을 하는 듯한 동작은 현아를 둘러싼 또 한 번의 선정성 논란을 불러왔고, 공중파 무대에서는 약간의 안무 수정을 거쳐야 했다. 


빨개요
‘빨개요’는 일종의 선언이자 장난 같은 곡이었다. 현아가 도발적이도록 빨갛다는 사실 외에는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 노래는 그가 스스로 하는 섹슈얼한 농담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현아가 귀여운 원숭이탈을 쓴 남자들과 팔짱을 낀 채 뒤돌아보고 있는 앨범 재킷 이미지, 동요를 차용한 구절 등은 그런 이미지를 뒷받침했다. 말하자면 현아가 무대에서 자신의 섹시함을 부각시키는 데서 나아가 아예 가지고 놀아보겠다는 시도였지만, ‘빨개요’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치지 않았다. “밤마다 내가 생각나 Like 매콤한 라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What / 빨간 건 현아 현아는 Yeah” 등의 가사와 트월킹에 기반을 둔 안무, 뮤직비디오 속 커다란 바나나, 립스틱 등의 오브제는 저열하고 문란한 성적 표현으로만 치부되었다. 여성, 그것도 걸 그룹의 멤버가 타인에 의해 성적 대상화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의식을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 현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 어느 때보다 거셌던 것이다. 다만, 논란이 커지는 과정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솔로 가수로서 현아의 독보적인 위치와 캐릭터만큼은 점점 더 명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미쳐
뮤직비디오는 흑백으로 연출되었고, 눈을 가린 버킷햇과 크롭탑, 와이드 팬츠를 중심으로 한 멤버들의 의상 역시 무채색으로 구성되었다. 선명한 원색과 파스텔톤으로 빛나는 걸 그룹들 사이에서 포미닛의 ‘미쳐’는 매력 발산의 수단을 무모할 정도로 차단해버린 콘셉트였다. 그리고 이들은 시종일관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뜨고, 새빨갛게 칠한 입술 사이로 거칠게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이기까지 한 이미지를 그려냈다. 노래가 시작될 때부터 양팔을 들어 올리며 “Yeah I'm the female monster”라고 소리친 것은 현아였으며, 팀에서 가장 굵고 낮은 랩을 하는 전지윤이 무게중심을 잡는 동안 뽀글뽀글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정말로 “미친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또한 현아의 몫이었다. 섹시함을 화두로 삼았던 그의 솔로 활동과는 다소 상반되는 콘셉트였으나, 변함없이 통제 불가능할 것 같은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미닛이 각종 인터뷰와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미쳐’로 일부 남성팬들을 붙잡아두는 데는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중국 QQ뮤직 한국음악 실시간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보노라면, 사람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여성의 전형에 갇히지 않고도 무대 위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잘나가서 그래
미리 공개된 앨범 트레일러부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애초에 19세 판정을 감안하고 만들었다”는 큐브 측의 설명처럼, 이 영상에서 현아는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시며 낯선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까지 연출한다. 트레일러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들은 역시나 이 콘셉트의 수위가 너무 세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런 반응이야말로 타이틀곡 ‘잘나가서 그래’가 노린 것과 연결된다. “매일같이 난 도마 위 I know / 씹어놔 웃어줄 때”, “이게 다 내가 잘나가서 그렇지 뭐 / 내가 예뻐서 그렇지 뭐” 같은 가사는 그동안 현아에게 향했던 논란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아예 무대 위의 소재로 가져와 버린 셈이다. ‘스웩’을 뽐내는 노래답게 뮤직비디오 또한 채찍질을 하는 현아나 얼굴을 가린 채 춤을 추는 댄서들 등 위험해 보일 정도로 광기 어린 이미지들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편견 섞인 비난을 해왔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애써 설명하거나 다른 길을 모색하는 대신, 한층 더 센 것을 보여주며 “I don’t care 전혀 상관 안 해”(‘잘나가서 그래’)라고 말하는 태도. 현아는 언제나 현아다.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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