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기 좋은 서울 시내 만화방 5

2015.08.12
‘만화방’이라는 단어만큼 사람을 설레게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아직 보지 못한 만화책이 수천 권 꽂혀 있고 각종 간식거리가 준비되어 있다니 인간에게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무더위에 지친 여름, 원 없이 만화에 파묻혀 인생의 시름을 잊고 싶은 이들을 위해 쾌적하면서도 다양한 취향과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서울 시내 만화방 다섯 군데를 찾았다. 휴가 내고 온종일 만화방에서 살고 싶은 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얼마쯤 쓰게 될지 예산도 짜보고, 누구보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장님들로부터 작정하고 정주행할 만한 만화 리스트도 추천받았다. 이제, 몰디브 여행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사진 제공. 즐거운 작당

올모스트 파라다이스, 즐거운 작당
: 마포구 서교동 400-6 대동빌딩 지하
찾아가기: 합정역 6번 출구에서 상수역 방향으로 내려가다 노루 페인트와 홍익 동물병원 사이 골목에서 꺾어 들어가다 보면 이자카야 ‘이상’ 지하
영업시간: 11:00~24:00
기본요금: 1시간 3,000원. 추가 10분당 500원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벽면과 계단을 빼곡하게 메운 책, 복층 구조 아래 아늑한 방과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된 테이블,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 시스템 등 풍성한 장서와 체계적인 관리의 조화는 그야말로 만화에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지난해 4월 오픈 후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좌식 공간을 둔 만화방 붐을 일으킨 즐거운 작당의 인테리어나 스타일을 모방하는 만화방도 늘고 있지만, 원조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현재 3만 1천여 권에 달하는 보유 도서 중에는 그래픽 노블은 물론 만화 무크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구비되어 있는 반면, 성인만화 중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하는 작품은 들여놓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다. 오픈 전부터 기다려 일찌감치 자리를 잡으려는 손님들이 있을 만큼 방의 인기가 높은데, 김민정 당주의 귀띔에 따르면 진짜 ‘선수’들은 책 가지러 오가는 시간조차 아까워해 서가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경우도 많다고. 오래 앉아 있는 게 피로해질 때는 잠시 일어나 한 바퀴 돌며 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12시간 예산: 온종일 요금(월~금 15,000원)+[심야식당]에서 힌트를 얻은 스팸 버터 라이스(5,000원)+맥주(3,500~6,000원)+메론소다(2,500원)
사장님의 정주행 추천: 10~15분에 1권씩 빠르게 독파할 수 있는 이라면 최근 완간된 [나루토](전 72권), 30~40분에 1권씩 끝내는 준수한 독파력의 소유자라면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 주석이나 내레이션까지 아주 꼼꼼히 읽는 독자라면 다니구치 지로의 [도련님의 시대](전 5권)를 권한다.

사진 제공. 연남동 만화왕

맥주 안주로는 만화, 연남동 만화왕
: 마포구 연남동 227-22번지 대원빌딩 2층
찾아가기: 연남동(ID: 14-226)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수협은행 연남동 지점 건너편 GS25 골목으로 내려가다 보면 화이트 리퍼블릭 옆 건물 2층
영업시간: 평일 14:00~24:00, 주말 11:00~02:00 (탄력 운영)
기본요금: 65분 2,500원. 추가 10분당 400원 (맥주 1병당 1시간 무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칠 수 있다. 열 살 양팔이와 아홉 살 해팔이가 제 집처럼 느긋하게 돌아다니거나 뒹굴고 있는 이 만화방의 진짜 주인은 온세미 사장, 지난 6월 오픈했다. 맥주 마시며 만화 보는 즐거움을 빠뜨릴 수 없다는 남편 김동환 씨의 취향에 따라 연남동 만화왕에는 11종가량의 맥주가 구비되어 있는데, 종류를 차차 늘리는 것은 물론 언젠가 생맥주까지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마침 불과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품만두를 비롯, 다양한 중국 음식점이 인근에 있어 가지튀김이나 탕수육을 사다 먹거나 주문해 먹을 수도 있으니 맥주와 맛있는 안주, 만화라는 완벽한 조합을 즐길 수 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유한 도서는 아직 1만 6천 권가량이지만, 손님들이 찾는 책은 구매 목록 1순위로 올리며 좋은 책들로 채워가는 중이다. 궁극적으로 연남동 만화왕은 친구 집에 놀러 간 것처럼 편하게 만화도 보고 맥주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1인석 없이 2인석만 만들었지만 혼자 온 손님도 눈치 보지 말고 놀다 가라는 당부다. 단, 주전부리로 오징어를 사 먹을 때 양팔이가 다가와 큰 관심을 보이더라도 애교에 넘어가 건네주지 않도록 주의할 것.

12시간 예산: 온종일 요금(15,000원)+시원한 큐브수박(5,000원)+맥주(4,500~10,000원)+식어도 맛있는 군만두(테이크아웃 5,000원)
사장님의 정주행 추: 엔도 히로키의 [에덴](전 18권),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류가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에서 인간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B급 개그를 좋아한다면 [초학교법인스타학원](전 21권)이나 [폭두고딩 타나카](전 10권), [폭두방랑 타나카](전 10권) 시리즈!

사진 제공. 피망과 토마토

소리 없이 강한, 피망과 토마토
: 서대문구 창천동 46-3 2층
찾아: 독수리 다방과 창천교회 사이로 직진하다 ‘소도적’ 골목으로 들어가 ‘대작’을 끼고 왼쪽으로 꺾으면 우리이동갈비 2층
영업시간: 12:00~24:00
기본요금: 1시간 2,000원, 추가 3분당 100원

‘피망과 토마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의 기원은 영영 미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전 주인이 ‘민들레 영토’를 본떠 지은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라는 황순욱 사장은 2012년 다니던 오디오 회사를 그만두고 할 일을 찾다가 들른 만화방 주인이 가게를 내놓는다는 말에 일사천리로 모든 절차를 해치웠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만화를 전공한 마니아답게 ‘하다가 안 되면 이 책 다 가져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과 유럽 만화는 수요를 떠나 꾸준히 구입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만화카페에 비해 소파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전통적인 만화방에 가까운 공간이지만 검색 시스템 없이도 손님들이 찾는 만화가 어디 있는지 다 꿰고 있는 주인의 내공은 물론,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안내문의 심드렁한 유머 감각까지 단골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특히 만화방에는 무엇보다 만화가 많은 게 중요하다는 황순욱 사장의 믿음에 따라 두 달 전 이전하며 좌석 수를 줄이면서까지 서가를 늘려 3만 권에 달하는 장서와, 커피 및 몇 가지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호방한 인심도 인상적이다. 참고로 주민등록상 이름이 ‘피망’ 혹은 ‘토마토’, ‘피콜로’, ‘베지타’인 내국인은 상시 100% 할인, 휴가 중인 군인의 경우 휴가증을 가져오면 그냥 보여준다고 하니 꼭 방문해보길.

12시간 예산: 온종일 요금(월~금 9,900원)+만화방에선 역시 쥐포구이(2,000원)+추억의 맛 피크닉(500원)+짬짜면(배달 6,000원)
사장님의 정주행 추천: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전 5권), 중년 이후에 만화가로 데뷔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짜임새가 좋고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나오는 책은 믿고 다 산다.

사진. 이진혁(KoiWorks)

인파를 벗어나고 싶을 때, 섬
: 강남구 신사동 517-10 2층
찾아가기: 가로수길 초입 잇츠스킨 매장을 끼고 내려가다 호미빙과 에잇 세컨즈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직진하다 보면 이끼 롤까스 옆 외벽이 검은색 유리로 둘러진 건물 2층
영업시: 11:00~24:00
기본요: 1시간 2,400원. 추가 10분당 400원 

짙은 파란 바닥 위 화이트 톤의 소파와 침대들이 놓여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인파로 붐비는 가로수길 한쪽 골목에 위치한 섬은 말 그대로 도심 속의 휴식처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오승민 사장은 이 거리에 쉬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년 9월, 바다와 백사장을 인테리어 테마로 한 만화방을 열었다. 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안쪽 방은 잠깐 눈을 붙이기도 좋아 점심시간이면 잠을 보충하기 위해 들르는 직장인들도 종종 있다고. 중앙 책장 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상어 모양의 에어 스위머는 원래 조종에 따라 꼬리를 움직이며 섬 안을 날아다니는 장난감이지만 지금은 잠깐 헬륨가스가 빠져 멈춰 있다. 대신 8개월 된 고양이 ‘주인님’이 폭신한 털이 잔뜩 난 배를 보여주며 귀여움을 책임진다. 장르에 크게 치우치지 않고 2만 권 정도의 만화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게를 닫은 뒤 혼자 한잔하며 만화 보기를 즐기는 오승민 사장의 취향에 따라 맥주도 다섯 종가량 준비되어 있다. 햇살 좋은 날 방문하게 된다면 창가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그네 의자에 앉아 동화 속 주인공처럼 기념사진을 한 장 찍는 것도 좋겠다.

12시간 예산: 온종일 요금(18,000원)+국과 함께 나오는 만두밥(5,000원)+욕망의 항아리 아이스티 1리터(4,500원)+심슨 시리얼(4,000원)
사장님의 정주행 추천: [꼭두각시 서커스](전 43권), SF 액션 요괴물이라고 해야 할까. 초반 그림체나 내용이 다소 애매한데 그 고비만 넘기면 흥미진진하고 작가의 실력이 팍팍 늘어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아직 발간된 권수는 많지 않지만 요즘 핫한 작품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원펀맨].

사진 제공. 연극보다 만화

공연 보러 온 김에, 연극보다 만화
주소: 종로구 동숭길 64 지하 1층
찾아가기: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아르코 예술극장과 아르코 미술관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뽕신’ 간판이 보일 때까지 직진하면 왼쪽 건물 지하 1층
업시간: 11:00~23:00
기본요: 1시간 2,400원 (+만화 고르는 시간 10분 서비스) 추가 10분당 400원

대학로의 한복판에서 ‘연극보다 만화’라니, 과감한 선전포고 같지만 실은 ‘연극 보다가 만화도 보자’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이름이라고 한다. 만화와 카페, 연극을 좋아하던 황수영 사장은 직장을 그만둔 뒤 지난 3월, 자신이 연극을 보러 가장 자주 오가던 골목에 카페 같은 만화방을 차렸다. 그래서 ‘연극보다 만화’의 운영에는 자신이 만화방 손님이던 시절 느꼈던 아쉬움이나 바람 등이 적극 반영되기도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만든 검색 시스템은 물론 만화 고르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손님들을 위해 처음 10분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육각형 모양의 칸막이 방에는 비스듬히 기대거나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고 좌식 테이블, 바 좌석 등도 준비되어 있으며 짧은 하의 때문에 앉거나 눕기 불편한 손님에게 긴 치마를 빌려주기도 한다. 현재 장서는 2만 권 정도, 성인극화 외에는 여러 장르를 고르게 들여놓는 편이며 다만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입장에서 서가 한 칸을 [오늘의 네코무라씨], [고양이 화가 주베의 기묘한 이야기] 등 고양이 만화로 조금씩 채워가는 것이 황수영 사장의 낙이라고. 주말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는 대개 만석이라고 하니 붐비는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12시간 예산: 온종일 요금(월~금 18,000원)+복숭아 과육과 더치커피, 우유거품의 조화가 달콤하면서도 산뜻한 피치봉봉(3,500원)+낙지 컵밥(4,000원)+수제 요거볼(3,500원)
사장님의 추천: 최근 완간된 [물에 빠진 나이프](전 17권). 초등학교 때 만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짐 때문에 엇갈리기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절절한 러브스토리다. 좀 더 귀여운 이야기가 좋다면 23권까지 나온 [너에게 닿기를].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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