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혁오, 크게 되고 있습니다

2015.07.13

혁오의 음악은 어느 날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발매된 첫 EP 앨범 [20]은 SNS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소란스럽지 않고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덤덤하게 노래했다.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거라 믿는 나는 좀처럼 두근두근 거릴 일이 전혀 없죠”, “집에서 뒹굴뒹굴 할 일 없어 빈둥대는 내 모습 초라해서 정말 죄송하죠”(‘위잉위잉’) 사람마다 꽂히는 순간은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뚜욱 뚜욱 떨어지는 눈물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덮을 거야”라는 외침을 간직했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프로모션은 없었다. 한 번에 수만 명이 접하게 되는 음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들은 사람들은 잊지 않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낯선 이름의 밴드에 대해 전했다.

리더이자 보컬, 기타를 맡은 오혁의 이름을 거꾸로 한 4인조 밴드 혁오는 지난해 봄 결성됐다. 오혁과 임동건(베이스), 임현제(기타), 이인우(드럼)는 모두 93년생 동갑내기로, 혁오의 첫 TV 출연이었던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은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를 듣고 황당한 듯 “왜요?”라고 물었다. 그러게, 왜? 아이유와 동갑이고 EXO의 평균 나이와 같은, 관객이 다섯 명뿐인 무대에서 출발했던 이들은 왜 데뷔 몇 달 만에 ‘가장 핫한 밴드’이자 ‘크게 될 팀’으로 떠올랐을까. 그러나 혁오는 거의 모든 ‘왜’에 대해 그럴듯한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냥’이라고 말한다.

오혁이 열아홉, 스물, 스물한 살 때 썼던 곡들 중 두 곡씩을 추려 만든 [20]에 이은 싱글 [Panda Bear], 네 사람이 만난 스물두 살 때의 감정을 담은 [22]까지 혁오의 음악은 대부분 허무함과 외로움, 무기력, 인간관계에서의 고민을 담고 있다. 돌도 지나지 않아 중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대학에 입학하며 처음 한국에 돌아온 오혁은 한글보다 영어로 가사를 쓰는 데 훨씬 익숙했고, 고향을 갖지 못한 사람의 쓸쓸함으로부터 ‘I Have No Hometown’과 같은 곡이 나왔다. 그는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주려고 쓴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이랬고, 그래서 짜증 난다, 싫다, 그렇게 음악을 만들었다”([민트페이퍼])고 말했지만 갓 성인이 된, 그리고 낯선 세상에 떨어져 방황하는 목소리는 많은 이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혁오의 인터뷰 기사나 방송 출연에 “나만 알고 싶은 밴드였는데 너무 유명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이어진 것은, 희소한 음악을 먼저 알았다는 자부심보다 누군가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공유한다고 느꼈던 친구에 대한 독점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것은 언제까지나 나만의 것으로 감춰둘 수 없는 법이다. 7월 4일 MBC [무한도전] ‘2015 무한도전 가요제’에 초대된 혁오는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늘 그래 왔듯 극도로 적은 말수 때문에 제작진이 ‘마음의 소리’를 만들어 멤버들을 소개해야 할 만큼 방송에 서툰 모습을 보였지만 “요새 제일 즐겨 듣는 목소리”(아이유), “가로수길이나 홍대, 이태원, 성수동 쪽에서 트렌디함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밴드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유희열) 등의 상찬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방송 후 혁오의 몇몇 곡들은 음원 차트를 ‘역주행’해서 상위권에 올랐다. 인디 신의 스타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하나까지 기사화되어 포털 사이트 ‘많이 본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지난 3월 인터넷으로 방송된 TheIconTV [코코 티비]에서 오혁이 장난스럽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민 행동조차 “손가락 욕설 논란”으로 재조명되는 상황은 일종의 메이저 신고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나일론]과의 인터뷰에서 오혁은 “유명해지고 싶은 건 아닌데 유명해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감이었을까, 일종의 예감이었을까. 어쨌든 혁오는 이제 정말로 유명해졌고, 길은 새로운 비탈로 접어들었다. 자신들이 왜 인기 있는지도, 어떤 장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멋있는 걸 하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뚜렷했던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디라도, 아직 스물셋이니.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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