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가 f(x)에 있어야 할 이유

2015.07.06

노력하는 아이돌을 보는 것도 훈훈하지만, f(x)가 제시하는 아이돌 상은 달랐다. MBC [일밤] ‘복면가왕’에서 빛을 발한 루나의 가창력도 f(x)에선 ‘고음 셔틀’이란 음악적 장치일 뿐이었다. 안무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귀여운 율동 같았다. 크리스탈은 예능에서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도 했고, 설리는 무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루나와 빅토리아, 엠버가 ‘아무튼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전체적 구도를 중화시키고 있었지만, f(x)의 주요 키워드는 ‘애쓰지 않음’이었다. 그 대신, 예쁨과 완성도라는 아이돌의 미덕을 밀어붙여 ‘다른 아이돌’이 되는 것, 그것이 f(x)의 정체였다. 이 그룹이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는 참신하고 뛰어난 곡들을 내놓은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 여기서 설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저 예쁠 것이었다.

물론 설리가 탁월한 보컬리스트는 아니었다. 그처럼 중음역에서 부드러운 미성을 낼 수 있는 여성은 어디에든 있다. 하지만 그의 포지션이 ‘예쁨’이었던 것은 목소리에 장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f(x)는 그런 설리를 점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피노키오’의 “꼼짝 마라 너”와 ‘Electric Shock’의 “의사 선생님, 이거 뭔가요”는 그의 음색과 캐릭터만이 가능한 아이러니였다. ‘첫 사랑니’에선 “Attention, boys”를 말하는 그의 밋밋한 목소리가 첫사랑과 사랑니를 병치하는 이 곡의 양면성을 강화했다. 개성 강한 목소리의 멤버들 사이에서 설리는, 가장 평범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할 곳에서 가장 귀에 박히는 가사들을 노래했다.


[Pink Tape], [Red Light] 앨범의 수록곡들은 설리를 f(x)의 음악적 무기로 가꿔나갔다. 그는 ‘Summer Lover’, ‘바캉스’에서는 화자와 청자를 잇는 대변인으로 등장했고, ‘Step’, ‘Kick’에서는 ‘일반인’보다도 더 ‘일반인’ 같은 연출을 통해 번쩍이는 곡 속에서 역설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설리의 목소리는 이 별나고 엉뚱한 색채의 음악세계가 듣는 이의 마음에 직접 와 닿게 하는 출입문이었다. 그래서 감상적인 노래에서 더 큰 울림을 가졌다. ‘Airplane’, ‘종이 심장’에서 그가 아련한 꿈과 부서질 듯한 불안을 담당한 것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잘 기획된 것이었다. 설리가 아니었다면, 또한 f(x)라는 특별한 ‘플랫폼’이 아니었으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설리는 f(x)의 정체성의 출발점이자 마스코트였다. ‘난해한’ 가사에 그의 개인적 발언들이 종종 직접인용되곤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f(x)라는 종잡을 수 없는 낯선 세계를 더없이 잘 대변한 것도 바로, 속을 알 수 없이 웃고만 있는 설리였다. 또한 f(x)는 부단한 설계를 통해 보컬리스트로서의 그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성장시키고 있었다. 설리 없는 f(x)를 상상하기 힘든 것은 그만큼 이 두 주체가 긴밀한 연을 맺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설리의 연애가 화제가 된 것도 2년이 되어간다. 그간 팀 일원으로서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도 무리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는 비평가도 팬도 제3자일 뿐, 당사자들끼리 결착을 낼 것이다. f(x)는 설리가 없다 해도 어떻게든 해나갈 것이고, 설리는 설리대로 성인으로서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말을 보태자면 f(x)와 설리의 지난 여정은 없던 일로 하기엔 역시 조금 아깝다. 이만큼 평범한 소녀 목소리가 이만큼 날카롭게 기능하는 음악은 결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글.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사진 제공. SM 엔터테인먼트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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