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손에 잡히는 박근혜 대통령 화법 빙고

2015.06.30
인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유행인 것은 분명하다. 달변은 아니지만 명대사도 여럿 남겼다. 모든 대화의 목적은 의사소통이지만, 상대의 이해 여부를 개의치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특한 화법은 본의 아니게 국민을 귀 기울이게 한다. [아이즈]는 보다 나은 소통을 위해 박 대통령 화법의 패턴을 담은 빙고를 만들고, 이 중 화용론적 특징 몇 가지를 분석했다.



1. 만연체
“제가 말씀을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그 각오와 그다음에 여러분들의 그 깊은 마음의 상처는 정말 세월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깊은 거지만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습니다.”
(2014. 5. 16.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과의 대화)

공백을 제외해도 200자 원고지 1매가 한 문장이다. 큰 줄기만으로 나누어도 세 문장은 필요한 내용을 끊지 않고 이어가다 보니 주어가 몇 개인지 셀 수 없고, 누가 무엇을 확실하게 책임지겠다는 것인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원고가 있는 연설이 아니라 즉석에서 발언을 해야 하는 경우 “~이다, 라는”이나 “~든가”를 여러 차례 사용해 길고 복잡한 복문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대개 전자는 자신의 생각을, 후자는 이런저런 집단이나 정책을 예로 들어 언급할 때 사용되는데,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무엇을 먼저 이야기할지 순서를 정한다. 둘째, 지시하는 대상을 분명히 한다. 셋째, 각각의 내용을 독립된 문장으로 만든다.

2. 중언부언
“정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선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심각한 것은 빨리 국민들께 알려 나갔으면 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선도적으로 공개를 많이 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지만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팩트다’ 이렇게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2015. 6. 16. 메르스 대응 관련 교육현장 방문)

세 줄 요약이 아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해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로 충분한 내용이 박 대통령을 거치면 세 줄로 증식한다.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그대로 반복하고, 특히 마음에 드는 부사는 여러 차례 사용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특징이다. 그러나 중요하고 지당한 주장일수록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메시지를 약화시킨다. [지루하게 말해 짜증나는 사람 간결하게 말해 끌리는 사람]의 저자 히구치 유이치는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최소한 표현 방식이라도 바꿔 말해줘야 듣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지겨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아직 오염상태가 확실하게 제거됐는가 하는 그런 것도 의구심이 있는데 그 외에도 모든 누구라도 노출이 됐다고 하면 투명하게 공개가 되고 확실하게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확실하게 돼가고 있는 거죠?”(2015. 6. 17.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 방문)의 경우 ‘확실하게’를 세 번 반복하는 대신 ‘완벽하게’나 ‘명확하게’로 변주만 하더라도 다소 나아질 것이다.

3. 갈팡질팡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된다는 그런 말이 있듯이 우리의 집중을 자꾸 이렇게 분산시키려는 일들이 항상 있을 거다, 으레.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핵심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5. 5. 12. 제19회 국무회의)


이것은 지금 박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는 최근의 박 대통령 발언이다. 집중력을 분산시키려는 일들을 떨치고 나아가려다가 에너지가 편중되지 않도록 분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발목 잡혀 고민하게 되는 이 발언은 실로 마법과도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화자의 진의를 해석하기 위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번역기로 해독한 외국어처럼, 단어 하나하나는 멀쩡히 존재하지만 앞머리와 마무리가 갑작스레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바람에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시작과 끝이 너무 일치해도 문제다. “군 생활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계속 군 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2013. 12. 24. 12사단 신병교육대대 방문)과 같은 경우 ‘군 생활이 군 생활의 자산’이 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다. 여기서도 답은 단순하다. 되도록 단문으로 말하는 것이 낭패를 막는 길이다.

4. 대용어 남용
“끊임없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뿌리 뽑으려는 그런 의지, 노력, 또 국민의 어떤 동참,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기초가 튼튼한 경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돼야만 민간의 활력이 살아나 경제가 발전하고 신뢰가 쌓이는 사회가 되는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 11. 6. 중국 양란 양광미디어투자그룹 회장과의 인터뷰. [한겨레])

‘이것, 그것, 그런, 저런, 이와 같은’ 등의 대용어는 선행 단어나 문장, 담화가 있을 때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해 대신 사용하는 단어들(박영순 [한국어 화용론])이다. 그런데 부패와 적폐를 뿌리 뽑는 데 대한 위의 발언에는 불필요한 대용어가 잇따라 등장해 내용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대용어와 함께 박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집어넣는 단어는 관형사 ‘어떤’이다. 주로 의문문에 쓰이지만 박 대통령은 답변에 자주 사용하는데, 이때 ‘어떤’의 용법은 ‘대상을 뚜렷이 밝히지 아니하고 이를 쓰는 말’이다. 그런데 명료함이 필요한 공적 발언에서 ‘어떤’의 남용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그런’을 65회, ‘어떤’을 31회 사용했다. 물론 이 중에는 적절한 용도로 쓰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어서 고통을 많이 겪고 있지 않습니까?” 같은 그런 문장은 어떤 의문, 이런 것을 갖게 하는데 그런 것은 차차 줄여나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생각된다.

글. 최지은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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