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는 여자가 카카오택시를 타게 된 이유

2015.06.17

택시를 꽤 자주 타는 편이다.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월간지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한 달의 대략 절반은 야근 후 새벽에 택시로 귀가하고, 기동력을 위해 거의 모든 취재를 택시를 타고 다니며 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내 사회생활 경력은 콜택시의 역사와 어울렁더울렁 함께 흘러왔다. 훗, 이런 걸 가리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하는 건가.

신입 기자로 첫 야근을 하던 날, 사수 선배가 가장 먼저 가르쳐준 건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린콜택시 전화번호였다. “이 번호로 전화해서 회사 주소랑 목적지를 말하면 택시가 와.” 콜택시? 왜 굳이 전화해서 부르는 거지?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읽은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밤늦게 택시를 타잖아. 콜택시가 안전해.”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야근 닷새째 알게 됐다. 전화로 택시를 부르는 게 좀 번거로워서 그냥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그 무렵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새벽 2~3시에 다니는 젊은 여자는 십중팔구 ‘술집 아가씨(나 다름없는 헤픈 여자)’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남자가 적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는 걸 그날 알았다. 택시 기사는 자꾸 으슥한 길로 가며 ‘나랑 한번 사귀자’고 추근거렸고, 나는 내릴 때까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날 이후 야근할 땐 반드시 콜택시를 탄다. 그린콜, 친절콜, 나비콜, 해피콜, 한강콜, 모범콜 등을 두루 이용하고 우버와 이지택시를 거쳐 마침내 카카오택시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택시를 타고 무서웠던 경험을 말할 때마다 “친절한 기사님들도 많은데 너무 극단적인 경우만 말하는 거 아냐?” 같은 말을 듣는다. 아마 그 말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프로정신 투철한 기사님들도 무척 많이 만났다. 하지만 택시기사의 99%가 선량하다 해도 그렇지 않은 1%의 파괴력이 나머지를 압도해버릴 만큼 큰 것을 어떡하겠나. 달리는 차 안에서 나보다 완력이 센 남자에게 느끼는 위협과 공포! 새벽 1시에 택시에서 “지금 집에 가봐야 뭐해. 나랑 춘천으로 드라이브나 가자”라는 말을 들으면, 대낮이라 한들 “젊은 여자가 택시기사한테 개기다가 야산에 끌려가서 발가벗겨지고 뒤지게 맞은 얘기 알아요?” 같은 소리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는가?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택시의 서비스는 사소하게나마 혁명적이다.


내 위치와 목적지를 지도에 표시하고 내게 배정된 택시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내비게이션에 나의 현재 위치가 자동으로 표시되니 예전처럼 전화로 몇 번이고 위치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확 줄었다는 것까진 다른 콜택시 앱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카카오택시의 가장 큰 장점은 택시를 타는 즉시 나의 출발지와 목적지, 출발 시각, 차종과 넘버 등 구체적인 차량 정보를 담은 ‘안심 메시지’를 카톡으로 지인에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택시가 배정된 상태에서 기사가 일방적으로 콜을 취소할 경우 곧바로 회사 측에 항의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택시기사의 서비스를 별점으로 평가한다는 것도 좋다. 택시를 자주 타는 여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당부는 “기사와 절대 싸우지 마라”다. 택시에 타고 있을 땐 불만이 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후환이 두려워 입을 다문다. 택시를 이용했다는 건 운전자에게 내가 자주 다니는 곳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카카오택시에서 승객이 하차 후 다음 이용 전까지 익명으로 기사의 서비스를 평가하도록 돼 있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승객뿐 아니라 기사도 탑승했던 승객을 평가하는데, 그중 택시를 습관적으로 취소하는 승객은 신뢰를 잃고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래저래 악용하는 사례가 없진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사와 승객이 서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어야 서비스 품질에 대해 제대로 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침소봉대 기능보유자처럼 보인다는 거, 나도 안다. 지난 두 달 남짓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면서 그 동안 수없이 택시를 타며 누적된 피로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조차 새삼 실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얼마 전 서울시가 발표한 ‘택시 해피존’ 정책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택시 합승이 성폭행과 강도 등 흉악범죄의 온상으로 9시 뉴스에 등장하던 게 고작 10년 전의 일이다. “금요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강남역 일대에서 택시 합승을 허용한다”라고 쓰고 “택시를 타고 혹시 내가 강간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덜덜 떤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헛된 꿈을 꾸었구나”라고 읽으면 되겠다.

글. 신윤영([싱글즈] 피처디렉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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