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클론즈], 또봇을 떠난 아이들이 만난 잔인한 세상

2015.06.05

“낮에는 퀵, 밤에는 야식, 사건 터지면 출동. 24시간을 그러면 인생에 남는 게 뭐가 있어. 계속 일하는 거밖에 더 있어?” 
“누군가 야식배달을 시켰다는 건 밤중까지 일하고 있다는 거야.” 

웹툰 [미생]의 대사가 아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바이클론즈] 주인공의 대사다. [또봇]을 제작한 완구회사 영실업과 제작사 레트로봇에서 공동 제작한 [바이클론즈]는 모두 ‘대도시’를 배경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러나 대도시를 지켜 영웅이 되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었던 [또봇]과 달리 [바이클론즈]의 주인공 오남매는 영웅과 생계(돈) 사이에서 고민한다. 우연히 지구를 지키게 된 오남매는 실종된 부모님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애초에 지구를 지키게 된 것도 지구 정복을 위해 온 흠마제국에 맞설 전사를 찾는 이순희 할머니의 “지구방위군이 되면 월급을 준다”는 말에 속아서다. 오남매는 지구를 지키며 부업을 하고, ‘중고나라’에 물건을 팔아 돈을 번다.

사랑과 우정 등 이상적인 가치가 승리했던 [또봇]의 세계는 끝났고, [바이클론즈]의 오남매는 세상에 그대로 던져졌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 피오뿐이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거나 잔인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찬희 영실업 대표는 [또봇]을 만든 배경에 대해 “스토리 소재, 주 연령대, 시청시간 채널 등 모든 부문에서 [파워레인저]를 피해 가는 전략을 폈다”([동아일보])고 말했다. [파워레인저]의 주 소비층은 6~7세 이상이고, [또봇]의 주 공략층은 3~6세다. [바이클론즈]는 9세다. 시청자는 주인공이 다치거나, 심지어 죽기도 하며, 폭탄이 터지는 스펙터클한 [파워레인저]의 세계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불어 한찬희 대표의 말처럼 “집에서 완구를 가지고 놀기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시간이 더 많다”([머니투데이])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바이클론즈]는 로봇에 대한 환상 대신 [파워레인저]를 만났을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을 보여준다. [또봇]이 아이들의 정신적인 갈등과 화합을 그린 것과 달리 [바이클론즈]는 오남매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부여한다. 바이클론즈가 변신한 클론 로봇의 에너지 공급을 위해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끊임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첫째 태오는 “쉬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는 지킬 사람이 많잖아. 형은 그럴 때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아무 생각도 안 해. 그게 버티는 비결이야”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지만 이미 만만치 않은 세상을 겪으며 버텨내야 하고, 그것은 어린 몸이 견뎌내기 힘든 육체적 고난을 통해 강조된다. 아주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소년도 아닌 아이가 겪는 세상의 괴로움. [바이클론즈]의 화자가 초등학교 고학년 지오인 이유다.


이것은 실제의 9세 아이가 겪게 될 세상과 비슷하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바이클론즈]의 주인공들처럼 부모의 품을 벗어나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던져지고, 작품 속 외계인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서로의 선악은 불분명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람을 쉽게 배척해서도 안 된다. [바이클론즈]에서도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은 알고 보면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공무원이고, 지구인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측은한 존재다. 반면 지구방위군으로 마냥 우리 편일 줄만 알았던 이순희 할머니도 “사실은 나도 원래 지구를 정복하려고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남매는 외계에서 온 할머니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부모님의 경제적 여건이 자전거 혹은 캐릭터 지우개 등으로 대변되는 [바이클론즈]처럼 현실의 학교에서도 암묵적인 위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조금 더 자라면 영웅이 될 생각마저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중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바이클론즈가 싸우는 것을 창문을 통해 구경하자 교사가 “영웅이 싸우는 거 보는 순간 너희는 엑스트라가 되는 거야. 빨리 책 펴”라고 말한 것처럼.

그래서 [바이클론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깰 만큼 현실적이고 잔인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이가 바라보는 눈높이의 세상을 보여준다. 9세의 아이들은 이미 세상에 던져진 것이고,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때로는 힘들더라도 버텨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바이클론즈]는 이 아이들에게 한 가지를 묻는 듯하다. 지오는 “지구를 지키기 전에 자기 집부터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누나 미오는 “지구를 지켜야 집도 지키지”라고 반박한다. 돈을 벌면 가족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영웅이 되면 모두의 집을 지킬 수 있다. 선택은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바이클론즈]는 또 다른 캐릭터의 입을 빌려 “우리가 하는 좋은 행동들은 처음에는 위선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다 조금씩은 그렇게 하면서 우리 안의 영웅들을 발견해나가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현실을 알게 하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지만 꼭 사명감을 갖고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태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되 상상이 넘치고, 교육적으로도 뛰어난 로봇 애니메이션의 탄생이다.

글. 이지혜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한국, 광고, 혐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