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혁명의 맛], 시대가 음식을 만든다

2015.06.05

“소개드립니다, 쑤저우가 자랑하는 천재 주방장입니다.” 요리사들이 박수를 치며 도열한 가운데 열 살을 갓 넘긴 소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 플래시 속에 악수를 마치자 의자에 뛰어오르더니 하얀 지휘봉을 꺼내 고래고래 명령하고 어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문화혁명이 끝나가는 1975년 11월의 일이었다.

가쓰미 요이치가 본토의 음식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말 베이징에서 미술품을 감정하면서였다. 문제는 그가 1949년생이라는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닌 문화혁명기에 일본인 고등학생이 중국 미술품을 감정했다고? 그냥 명분이었다. 할아버지네 미술품 가게에서 안면을 튼 중국 아저씨를 대뜸 따라간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문화혁명 4인방과도 연줄이 있는 거물이었다. 강력한 비호하에 정치사상도 뭣도 없는 도련님은 간부들의 호화 연회에 끼는 한편 서민 식당에서 ‘노농병 메뉴’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다 닉슨 대통령도 묵어간 조어대 국빈관에서 연회를 여는가 하면 중국 10대 요리 명인인 왕이준과 허물없이 놀러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중국 요리는 그 어떤 요리보다도 시대와 함께했다. 다른 외국인은 물론 중국인도 못 할 파란만장한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이다. 명나라의 국정을 독점한 환관들은 요리 역시 좌지우지했고, 청나라는 한족 관리의 손으로 한족 농민을 통치한 것처럼 한족 요리사의 손으로 만한화합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념이 우선인 사회다. 공사합영으로 인한 개인상공업의 몰락, 대약진 운동의 실패, 대기근. 이 모든 것이 본격 맛없는 맛의 시대를 열었는데, 특히 문화혁명기에는 그 장대한 역사에서 유례없이 맛없는 것을 먹었다. 마오쩌둥 석고상과 포스터로 도배된 거민식당에서 배추 철에는 배추만, 토마토 철에는 토마토만, 그것도 마오의 어록을 암송한 후에야 얻어먹은 것이다. 오락이 단지 오락이던 시절은 끝났다. 요리에서 반인민, 반역사사상, 반리얼리즘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대였다.

마오쩌둥의 죽음, 천안문 사건, 홍콩 반환. 그 후로도 가쓰미는 중국의 시대와 음식을 겪는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여느 역사가와 다른 참신한 관점 때문만이 아니다. 지독한 호사가이자 개인주의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시대가 음식을 만들고 음식이 다시 시대를 만든다는 결론에 이르는 여정 자체가 흥미진진한 것이다.

그러니 직접 읽으시라, 미슐랭 가이드북에 참여한 미식가이자 리스본과 파리에서 음악 미학을 가르친 탐미가가 특권층의 비호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활용해 탐험한 중국 요리의 세계를. 양 골수 기름만 사용해 초록 건포도, 살구와 볶은 차오판, 잉어 내장을 갈아 매콤한 소스로 맛을 내고 살과 같이 졸인 후이위두, 오리 가슴살에 가늘게 썬 중국 햄과 죽순을 곁들여 쪄서 완두 싹을 얹은 자셴야. 루쉰은 표고버섯, 죽순, 중국 햄, 피망을 버드나무 잎처럼 썰어 넣은 소스를 튀긴 초어에 끼얹은 우류위를 좋아했고, 저우언라이는 홍샤오러우에 적포도주를 넣는 등 자유롭게 요리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디가 어떤 요리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황홀하다. 뭘 더 어쩌겠는가.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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