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내려앉으면은 그건 아이유의 가사

2015.06.01

아이유의 신곡 ‘마음’은 소박한 노래다. 피아노가 조근조근 짚어주는 음을 따라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채워진 노래에는 힘주어 몰아치거나 내지르는 순간이 없다. 그럴수록 빛나는 것은 아이유가 직접 쓴 노랫말이다. 가볍게 “너”를 날려 보내는 첫 소절에서는 “툭” 하고 시작하고, “너”를 늘여 부를 때는 “둥”하고 울림을 주는 도입부에서부터 ‘마음’의 가사는 비교적 단순한 곡의 흐름을 보완할 정도로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다. 패스추리처럼 목소리들이 쌓이는 구성과 “더운 숨을 쉬어요”라는 가사가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시너지뿐 아니라 “않으셔도” 된다는 존댓말이 주는 조심스러움과 시옷 발음의 연약한 느낌이 어울려 연상시키는 화자의 이미지 역시 예사롭지 않다. 철저한 계산이든 본능적인 감각이든 ‘마음’은 작사가로서 아이유의 성장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드는 결과물이다. 음표와 숨소리에 섞여 이질감 없이 흘러가야 하는 노랫말로서 ‘마음’의 단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굳이 노래로 부르지 않아도 ‘마음’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 “아픈 기분”을 유발시키는 ‘마음’의 징후에 대한 꼼꼼한 설명이나 “눈을 떼지 못해” 눈이 시리다는 귀여운 엄살은 지나치게 꾸민 기색 없이 추상적인 느낌을 적절히 전달해낸다. 작지만 꾸준한 마음을 “불빛”에 비유하며 “반짝”이라는 의태어를 사용하는 재치 역시 일관된 정서를 함축하며 깨끗한 앳된 목소리와 좋은 조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아이유의 작사 능력은 이미 앨범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을의 연애’나 ‘보이스 메일’, ‘금요일에 만나요’를 통해 그려내는 아이유의 연애에는 마냥 로맨스를 꿈꾸거나 처절할 정도로 사랑에 목메는 여자 대신 적당히 시니컬하고 어딘가 능청스럽기도 한 현실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심지어 ‘싫은 날’에서 막연한 서러움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내며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이나 공기를 관찰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래의 여성 작사가들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이십 대 초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비춰내는 아이유의 가사는 목소리가 가진 무게와 나이를 적확하게 짚어주는 좋은 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의 가사에서 아이유는 자신의 나이와 성별을 지워내 버린다. 기분이 아닌 마음을 노래하는 그녀는 겸손하고 한결같은 감정의 상태를 보편적인 눈으로 살핀다. 애정인지 동경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덕분에 노래는 짝사랑에 한정 지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큰 의미의 지지와 응원으로도 해석의 여지를 얻는다. 다만 분명한 것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라고 에둘러 표현한 ‘영원’에 대한 다짐이다. 반응을 바라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상태에서 마음은 “감히” 재할 뿐 아니라 “주름도 없이” 지속된다.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지만 노래는 ‘반짝’이라는 단어로 짐짓 어렵지 은 척하며 고백을 마무리한다. 차분하가녀린 목소리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묵직한 인상이 남는 것 결국 노래가 환기시키는 것이 마음의 대단함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기 때문인 것이다.

아이유는 이미 ‘봄 사랑 벚꽃 말고’의 가사에서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버릴” 것이 아닌 “다른 얘기”에 대한 갈증을 드러낸 뒤 곧이어 리메이크 앨범인 [꽃갈피]를 발표한 바 있다. 아이유가 직접 골랐다는 수록곡들은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안타까움과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쓸쓸한 감정을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노래들이었다. ‘나의 옛날이야기’와 ‘너의 의미’는 여전한 기억과 그대로 ‘수수께끼’인 채로 남아 있는 부분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랑이 지나가면’은 심지어 추억의 무상함에 대한 노래다. 성기를 맞이한 후 아이유가 내내 소화했던 캐릭터가 시간에 갇힌 소녀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선곡은 새삼 의미심장하다. ‘좋은날’에서 사랑에 빠진 순간의 감정을 그려낸 아이유는 ‘너랑나’에서는 그때를 재연하기 위해 미래의 소년을 소환하고, ‘분홍신’에서는 시간을 멈춰서라도 그 장면을 붙잡으려 애썼다. 무대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찰나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고, 반짝임은 환상을 덧씌우는 마법의 가루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판타지의 너울 아래에서도 아이유는 문득 불편하게 따끔거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소녀였고, 직접 쓴 가사는 결국 진짜 아이유를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지도였다. 그 지도를 따라가자면, 아무리 애써도 영원할 수 없는 ‘예쁘고 영특한 소녀’의 시절이 끝난 무렵 아이유는 자신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마음’은 마침내 그녀가 얻은 깨달음의 첫 번째 장이다. 시간을 돌이키는 대신 먼 미래를 바라보는 그녀는 반짝임에 소망과 다짐을 담았다. 그런 점에서 ‘마음’은 어쩌면 다정이나 위로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구겨지거나 부러지기는커녕 처음 같은 모양새로 불멸의 마음을 남기겠다는 결의. 아티스트의 ‘마음’이다.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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