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최고의 보컬리스트는 누구인가

2015.05.29
MBC [일밤] ‘복면가왕’은 아이돌의 노래 실력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키고 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른 노래를 들어보니,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이 참 많고도 많았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그 노래 좀 잘한다는 아이돌 중에서도 지금 가장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추천할만한 보컬리스트가 누구인지. ‘복면가왕’의 전문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프로듀서 김형석, 인디뮤지션 단편선, 음악평론가 김영대, 음악평론가 김윤하, [아이즈] 편집장 강명석이 각자의 관점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뽑았다.


태연, 얌전한 척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의 목소리
보컬리스트가 언제나 노래를 똑같이 부를 리는 없다. 상황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보컬리스트는 바로 지금 신곡을 듣고 싶은 사람이다. 지금은 태연이 솔로로 부르는 댄스곡을 듣고 싶다. ‘Shake That Brass’에서 태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후반부의 짧은 파트에서 그루브를 넣어 강하게 치고 나갔다가, 힘을 풀고 모든 상황을 가볍게 즐기며, 다시 질러버리면서 무대를 장악한다. 또한 자신의 여성성을 보여주는 감탄사를 슬쩍 넣으면서 곡 전체를 장악하기도 한다. 피처링임에도 분위기만 띄우고 물러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노는 여자로 묘사하지만 섹시함을 과하게 어필하지도 않는다. 대신 음색과 리듬으로 능수능란하게 파트를 장악하며 아름다운 동시에 만만하지 않은 여자의 캐릭터를 그려나간다. 태티서의 ‘Holler’ 도입부에서도 태연은 이런 여자의 캐릭터를 잡아내면서 힘 준 스타일링과 퍼포먼스를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조화시킨다. 소녀시대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소화하던 연기력이 좀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의 여자를 멋지게 표현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발톱을 숨기고 얌전한 척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니, 얼마나 좋아. 
글. 강명석([아이즈] 편집장)


온유, 천천히 퍼져 온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음색의 힘

돌고래도 놀라 울고 갈 고주파 고음도 메마른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는 촉촉한 감성도 훌륭한 보컬리스트로 평가 받을 수 있는 돋보이는 자질이지만, 그 보다 좀 더 어려운 길이 하나 있다. 바로 음색. 아무렇게나 짚은 음 하나만으로 주위의 공기를 바꿔버리는 타고난 음색은 연습이나 노력으로 취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희소가치를 인정받는다. 샤이니의 온유는 바로 그 저 위의 누군가가 점지한 천혜의 음색을 타고난 보컬리스트다. 청량하고 투명한 느낌이 온유의 목소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면, 가장 큰 장점은 꽤 높고 까다로운 음 사이를 누비면서도 특유의 섬세한 결을 잃지 않는 강단이다. 단번에 심장을 노려 찌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퍼져 어느새 온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힘. 온유의 목소리가 만드는 그 마법 같은 힘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 OST 수록곡 ‘Stand by Me’나 네 번째 미니앨범 [Sherlock]의 마지막 곡 ‘늘 그 자리에’를 추천한다. 곡의 시작과 함께 마음 속 곱고 맑게 퍼져나가는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당신도 이제 어엿한 온유의 노예다.
글.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양요섭, 가창력만으로 콘셉트를 무색하게 만드는 보컬리스트
MBC [일밤] ‘복면가왕’을 통해 가장 많이 놀란 건 아이돌 가수의 실력이다. 아이돌은 태생 자체가 눈에 보이는 콘셉트가 대부분이라 노래를 잘하는 가수의 장점이 춤이나 의상에 가려지거나 자극적인 것에 시선을 뺏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창력만으로 콘셉트를 무색하게 만드는 보컬리스트를 추천한다면 비스트의 양요섭이다. 몇 년 전 요섭 군은 MBC [마이 프린세스] OST에서 내 곡이었던 ‘그 사람을 아껴요’를 불렀다. 그저 예쁘장한 아이려니 했는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음색 자체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소리였고, 발성 및 호흡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 의도와는 조금 달라 다른 창법의 표현을 주문했더니 한 번에 창법을 바꾸기도 했다. 이건 뭐 보통 내공으로 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아이돌은 노래, 춤, 의상, 모든 것들이 종합선물세트마냥 필요하다. 하지만 특히 노래가 돋보이도록 곡 작업부터 치밀하고 섬세하게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장본인이 양요섭이다.
글. 김형석(작곡가, 프로듀서)


AOA 초아, 그룹의 정체성을 완성시키는 색채감
뛰어난 보컬리스트를 고르기에 앞서 해결해야하는 선결과제, 바로 ‘무엇을 기준으로 보컬로서의 탁월함을 판별할 것인가?’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곡 전반을 잘 이해하고, 본인에게 할당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때로는 좋은 해석을 통해 작곡자의 의도를 넘어서고 확장시키는 것’이 탁월함의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보컬리스트란 근본적으로 연기자(performer)와 유사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아이돌이라면 일단은 댄스팝을 잘 불러야한다. 아이돌 음악의 대부분이 댄스팝이기 때문이다. AOA의 초아는, 바로 앞서 말한 기준에서 좋은 보컬리스트다. 라디오방송에 나와 부른 다른 음악가들의 커버, 주로 FNC의 연합 콘서트 등에서 보여준 록 스타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 등을 통해 그녀가 기본기(예를 들어 호흡, 발성, 성량, 음정 등)를 잘 연마한 보컬임을 깨닫는 건 쉬운 일,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AOA 본인들의 레코딩에서 드러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의 목소리는 색채감을 부여한다. 살짝 조여진 성대와 코를 공명시켜 만들어내는 듯한,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애교 많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목소리를 통해 AOA의 음악을 최종적으로 데코레이션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몫인 것. 좋은 기술을 가진 이는 많지만 한 그룹의 정체성에 크게 기여하거나 혹은 그 자체를 규정하는 보컬리스트는 많지 않다. 초아는 그것을 자연스레 해낸다. 그래서 내게는 멋지게 느껴진다.
글. 단편선(뮤지션)


태양, 아이돌 음악에서 찾지 못한 사치스러운 스펙 
태양에 대한 흔한 평가 중 하나는 ‘목소리는 좋지만 절대적인 가창력은 뛰어나지 않은’ 보컬리스트라는 것이다. 물론 음역, 성량, 기교 등을 수치화해 따져볼 때 태양을 소위 보컬 기계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가령 시아준수와 같은 보컬리스트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음악에서 음색은 고유한 스펙트럼을 담은 음악적 ‘지문’으로서, 이는 단순한 테크닉이나 발성보다도 훨씬 근본적인 특질이다. 그리고 태양은 그 점에서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면모를 자랑한다. 특히 그가 추구하는 R&B는 특화된 발성의 위치나 성구의 변환을 요구하곤 하는데, 상대적으로 음역이나 성량이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비음과 두성을 순간적으로 옮겨가며 유려하게 훑어내는 태양의 ‘흑인스런’ 음색은 일찍이 아이돌 음악에선 찾지 못한 사치스러운 스펙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언뜻 김조한이나 박재범도 떠오르지만 그들이 교포로서 전혀 다른 환경, 특히 영어의 발성으로 단련된 목을 가진 것을 감안할 때 순수 국내파인 태양의 성취는 각별하다. ‘눈, 코, 입’에서 드러나듯, 그는 기계적으로 훈련되어 다소 차가운 느낌을 풍기는 다른 아이돌 보컬과는 달리 따뜻하면서 풍성한 감수성을 가진 보컬로, 이는 태양을 목소리를 평가하며 종종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글. 김영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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