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의 중립

2015.05.27

요즘 유재석의 도전은 MBC [무한도전]이 아니라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서 진행 중이다. [무한도전]이 새 멤버 광희의 합류를 기념해 옛 도전 과제를 반복하는 사이, [동상이몽]은 유재석에게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만들었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머니는 현대무용을 하는 딸에게 부상을 참고 뛰라 하고, 딸은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때 유재석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지금까지의 답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에 가깝다. 허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딸에게 어머니가 “근력을 길러 극복”하며 무용을 계속할 것을 요구한다. 이 상황에 대해 패널로 출연한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인 서장훈은 선수 시절의 경험을 빌어 출연자의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구라는 한국의 골프 선수 부모들은 선수가 경기 중 부진하면 뺨을 때리기도 했다며 어머니를 옹호한다. 그러나 유재석은 양 쪽의 의견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어느 발언에 더 비중을 둬서 논의를 진전시키지도 않는다. 대신 부모와 자식에게 “(이런 말에 대해) 어떠세요?”라고 물을 뿐이다. 문자 그대로, 기계적인 중립이다.

이것은 온전히 유재석만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무용을 하는 학생이 대회에서 계속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 유재석은 최고의 MC가 가진 부담감을 말하며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말이 이어지려는 순간, 패널들은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그의 발언을 막았다. [동상이몽]에서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끌고 갈 것을 요구 받는다. 김구라는 [동상이몽]에 대해 “막장요소”도 있고, “하지만 해피엔딩”이라 평했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강할수록, 화해가 감동적일수록 좋은 예능 프로그램. 방청객 투표는 그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예능적인 설정이다. 그래서 유재석은 부모와 자식이 감동적인 화해를 할 때까지 웃음, 긴장, 감동이 적절히 섞인 분위기로 끌고 가야만 한다. 욕을 많이 하는 학생의 이야기에 대해 그룹 AOA의 지민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할 때, 유재석은 자신도 욕을 잘 한다며 웃음을 일으키며 화제를 전환했다.

[동상이몽]에서 유재석은 불편해도 짚고 넘어가야할 논점을 제기하는 토론 진행자가 아니라 유연한 진행으로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토크쇼 MC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유재석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욕을 심하게 하는 딸의 배경에는 누구 하나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집안 환경과 눈이 작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기억이 있었다. 또 다른 딸이 어머니에게 괴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외로움이 큰 이유였다. 문제는 심각하고, 그 속에는 찬반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요소들이 얽혀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것을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끌고 가려 한다. 그리고, 진행자는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기계적인 중립을 통해 애써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공존할 수 없는 내용과 형식의 동상이몽을 유지한다.


그러나 현실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프로그램의 입장과 가치관은 중요해진다. [썰전]은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가 팟캐스트에서 했던 혐오 발언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타사 프로그램들을 비판하던 [썰전]이 JTBC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 사람의 사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다. 유세윤이 진행하는 JTBC [비정상회담]은 혐오 발언을 하는 인물과 관련된 제품의 불매운동에 대해 토론하면서도 실제로 불매운동이 일어난 유세윤의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토론 자체가 유세윤의 혐오 발언에 대한 [비정상회담]의 입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비판 역시 이 프로그램이 져야할 몫이다. 제작진이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이런 토크쇼는 이미 사회적 공론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고, 제작진의 판단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토크쇼가 현실의 이슈를 다룰수록, 시청자는 쇼가 이슈에 대해 다루는 입장을 평가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식, 가치관, 정치적 공정성 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동상이몽] 역시 실제 부모와 자식의 문제를 다루는 순간 시청자가 프로그램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유재석은 [동상이몽]을 통해 예능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흐름에 한 발을 디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기계적인 중립을 통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안정적인 재미를 내는 선택을 했다. 프로그램이 그에게 원하는 부분이기는 할 것이다. 과연 정상인가 싶을 정도의 비정상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신중한 것이 훨씬 낫기도 하다. 그러나 중립은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입장이고, 그것 역시 평가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는 [동상이몽]을 보고 편하게 웃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누군가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이야기에 대해 무난하게만 넘어가는 것이 불만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유재석이라는 사람의 일면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그가 새로 간 곳은 언제나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므로. 찬성과 반대와 중립사이에서, 그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다.

글. 강명석
사진 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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