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바닷마을 다이어리], 인생이라는 씨줄과 날줄

2015.05.29

만화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소설과 영화 아래 어딘가, 수작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 몇몇만 겨우 경계선에 걸쳐질 영광을 얻고, 결국은 ‘서브’ 컬처라는 딱지 아래 출세 길이 막힌 신라시대 육두품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살짝 심통이 난다. ‘이거 봤어? 보고 그런 말 할 수 있어?’ 하고 삿대질도 하고 싶지만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다. 그럴 때 마음속에 꼿꼿이 솟은 손가락을 감춘 채 웃으며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이것,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요시다 아키미는 연식이 좀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나나 피쉬]라는 작품으로 유명할 것이다. 애쉬(ash)라는 이름부터 허망한 주인공이 탱크탑에 청바지를 입고 총 쏘는 내용, 이라고 설명하면 팬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겠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뭐. 요는 하드보일드 하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나에게는 소장해놓고 보고 또 보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첫 권을 읽자마자 흠뻑 빠져들었다. 양팔을 들고 항복, 이런 작품을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다음 권을 기다리기를 몇 년째이다.

작품은 주인공 세 자매의 집 나간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래도 핏줄이니 저마다의 복잡한 마음을 안고 세 자매는 장례식장에 간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은 있는지도 몰랐던 배다른 여동생 스즈.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 마음에 쓰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에 스즈를 데리고 세 자매는 고향 가마쿠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 쓰면 평범한 힐링물, 온 세상 사람 착한물, 그냥 문 열려있는 집 들어가서 밥 달라면 줄 것 같은 물 같지만(예를 들어 [요츠바랑!]) 그렇지 않다.

가마쿠라는 수도권이지만 도쿄에서 꽤 떨어져있다. [슬램덩크]의 배경이기도 하다. 하루에 기차가 몇 대나 다닐까 싶은 그런 곳, 바다가 가까이에 있고 여름은 엄청 무덥다. 그런 곳에서 세 자매와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엮인다. 서늘한 푸른색의 실, 가끔은 붉은 색의 실, 눈에 띄지 않는 미색의 실, 가끔은 검정 색이 할퀴고 지나가기도 한다. 작가는 세계를 그대로 관찰한다. 인간의 한계, 어리석음, 운명의 얄궂음, 그걸 버텨내는 인간의 강인함, 서투름과 배려, 모든 걸을 그저 잔잔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너무 아름답다. 대가가 된 요시다 아키미는 이 작품으로 아름다운 인생의 천을 짜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그 천을 만지고 바라보고 있다.

호들갑스런 추천의 글은 여기까지. 아직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권위의 힘에 기대는 오류를 스스로 범하자면,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얼마전 이 작품을 영화화했고,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다. 몹시 기대된다.

그나저나 다음에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정도 돼야 진정한 만화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꼿꼿이 세운 손가락을 숨기며 웃는 낯으로 ‘웃긴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좋은 그런 만화’를 소개해 보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든다. 그래 [엄마는 텐파리스트]가 좋겠군!

오지은
음악하고 글 쓰는 한국의 30대. 만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처음 산 단행본은 이은혜의 [점프트리 A+].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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