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왕이 짜파게티를 넘어설 수 있을까

2015.05.29

인상적인 데뷔다. 농심의 신제품 짜장라면 짜왕 이야기다. ‘맛도 면발도 짜왕’이라는 포장지의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제품명부터 ‘짜장의 왕’을 표방하는 이 프리미엄 제품은 소비자가격 1,500원으로 책정될 정도의 야심작인 동시에 얼마 전 MBC [무한도전]에 효과적인 PPL을 하면서 대중의 눈에도 강하게 인식됐다. 덕분에 출시 한 달 만에 600만 봉 이상이 판매되었고, 가격으로 환산했을 땐 라면 시장 내 매출 5위 안에 들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짜왕이 정말로 짜장라면 시장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같은 회사에 이미 짜파게티라는 절대강자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짜왕이 발매되었을 때 가장 큰 이슈는 자사의 짜파게티라는 효자상품의 유사상품을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크기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라면 시장의 절대강자로 꼽히는 신라면이 국물 라면 시장에서 25% 정도를 점유하고, 짜파게티가 전체 짜장라면 시장에서 80% 정도를 점유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짜파게티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선행 브랜드로서의 시장 선점 때문이라고만은 보긴 어렵다. 더 중요한 건 짜파게티가 짜장라면 맛의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짜파게티는 전통 짜장면의 그것과는 맛이 상당히 다르다. 중화풍 짜장면이 불맛과 단맛, 고소함의 조화로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낸다면, 짜파게티는 좀 더 짭짤하고 직접적인 맛이다. 짜파게티의 진정한 성과는 짜장라면을 짜장면의 맛을 불완전하게 재현하는 대용품이 아닌 짜장라면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한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후 등장한 짜장라면의 역사는 짜파게티가 만든 패러다임과 대결하는 역사였다.

가령 짜파게티 다음으로 유명한 짜장라면인 삼양의 짜짜로니는 중화풍 짜장면 본연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분말스프가 아닌 액상스프를 쓰고, 비빈 뒤 1분 이상 볶는 조리법을 선택했다. 과거 [딴지일보]에 올라왔던 ‘저주받은 걸작 짜짜로니’라는 연작 기사는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문구처럼 짜파게티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도 대충 맛있는 양산형 제품이라면 짜짜로니는 조리에 공이 들어갈수록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급형 제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짜파게티에 대한 상대적 폄하가 온당한 것이냐는 것과는 별개로 이 기사는 짜파게티와의 대결은 단순한 맛 대결이 아닌 담론의 대결이라는 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리고 이 대결은 거의 언제나 짜파게티의 승리였다. 아무리 짜짜로니를 비롯한 다른 제품들이 전통 짜장면의 맛에 근접하고 실제로 짜파게티보다 맛있어진다 해도 이들 제품은 결국 짜파게티보다 맛있는 라면이 아닌 짜장면보다 조금 못한 라면이 된다. 근래 가장 평가가 좋은 짜장라면이었던 팔도 일품짜장면 역시 이 고리를 끊어내진 못했다.

문제는 짜파게티의 개발사인 농심 역시 이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짜왕 이전까지 농심에서 짜파게티 다음으로 성공한 짜장라면이 사천 짜파게티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확히 말해 이 제품은 사천식 짜장면의 재현이 아닌, 매운 짜파게티다. MBC [일밤] ‘아빠! 어디 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짜파구리나, 최근 외식 사업가 백종원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시도한 고추장 짜파게티 역시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짜파게티라는 안정적 터전 위에서 변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2010년 히트 상품으로 뽑힌 후루룩 소고기 쌀 짜장면이 있지만 새로운 짜장라면을 만든다기보다는 쌀 뚝배기의 히트를 이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으로는 짜파게티가 거의 모든 점유율을 차지한 짜장라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로 농심의 짜장라면 매출액은 2012년 이후 1,500억 원대에서 정체되어 있다. 이 파이를 늘리는 전략은 짜파게티와 대결하는 동시에 어떻게 그 성과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으로 소급한다. 짜왕은 그 고민에 대한 나름의 대답으로 보인다.

현재 농심은 짜왕이 짜장의 맛과 면의 식감, 건더기에 있어 얼마나 중국집 간짜장과 비슷한 수준인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맛은 과거의 짜짜로니나 일품짜장면보다는 짜파게티와 중국집 짜장의 중간에 가깝다. 중국집 생면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 면에 다시마를 넣었다고 하지만 두껍고 조금 미끌미끌한 면과 짜장의 조화는 오히려 짜장면과는 다른 짜왕만의 식감을 만들어낸다. 즉 짜왕은 중국집 간짜장에 가장 근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동시에 짜파게티가 그러했듯 짜장면과는 차별화된 맛을 지닌 짜장라면으로서의 포지션 역시 가져간다. 둘 중 무엇이 더 맛있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짜왕이 짜파게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지점이다. 물론 여전히 짜왕이 짜장라면의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왕좌에 도전하는 제대로 된 자세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일한 대물림 대신 제대로 된 대결을 선택한다. 성과는 잇되 아류는 되지 않는다. 짜장의 왕을 가리는 싸움조차 이렇게 치열하다.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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