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④ 맥스에게 배우는 문명인의 자세

2015.05.26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석양이 비추는 사막을 배경으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와 맥스(톰 하디)가 키스하며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우연히 퓨리오사와 브리더들의 험난한 여정에 함께하게 된 맥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히 퓨리오사의 조력자이자 이방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둘도 없는 남자의 가치는 영화를 곱씹어볼수록 빛난다. 희망 없는 시대를 떠돌고 있는 우리가, 매력적인 남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너무나 소중한 맥스 로카탄스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1.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막에서 퓨리오사 일행을 따라간 맥스는 거두절미하고 말한다. “워터.” 꼼짝 말라거나 나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로드 워리어였다거나 너희들은 이제 끝이라거나, 아무튼 불필요한 말 대신 가장 절박한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다. 톰 하디의 인터뷰에 따르면 조지 밀러 감독은 맥스가 늑대 혹은 야생 개처럼 말을 잊고 살아왔으며, 자신의 목소리조차 모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맥스는 영화 세 편에 담아도 모자란 인생 역정을 펼쳐놓지도, 오랫동안 방랑하며 얻은 지식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퓨리오사 일행과 동행한 뒤 조금씩 말을 되찾아가면서도 목적지인 ‘녹색의 땅’에 대한 그의 질문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막연한 답변에도 꼬치꼬치 캐묻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맥스가 말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하는 것은 시타델로 돌아갈 것을 제안할 때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이 과묵하던 남자는 설명 아닌 설득이라는 고도의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데 성공한다. 

2. 듣기는 잘 듣는다. 
“하나, 하나, 둘, 하나, 빨간색, 검은색. 그리고 출발해.” 협곡에 도착한 퓨리오사가 맥스에게 트럭 도난 방지 시스템 해제 방법을 알려주고 다 외웠는지 물어봤을 때 맥스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면 착각일까. 틀리면 다 같이 죽지만 다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놀랍게도 맥스는 단번에 트럭을 출발시킨다. 이처럼 바쁠 때일수록 업무 지시를 칼같이 알아듣고 해내는 동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또한 총알이 세 발밖에 남지 않았을 때 목표물을 맞히는 데 두 번 실패하자 마지막 한 발을 굳이 자신이 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대신 퓨리오사에게 총을 건네고 어깨로 받침대가 되어주는 상황 파악 능력이라니, tvN [미생]의 김 대리 못지않게 믿음직스런 파트너가 나타났다. 


3.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가사노동을 둘러싼 상당수의 갈등은 ‘내 일은 아니지만 좀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한쪽이 밥을 하면 다른 한쪽은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하고, 쌓인 빨랫감을 먼저 본 사람이 알아서 세탁기를 돌린다면 살림의 무게는 비교적 균형 있게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다 보니 퓨리오사 일행과 함께하게 되었을 뿐인데 운전대를 잡은 동시에 빛의 속도로 적들을 무찌르고 퓨리오사가 필요로 하는 무기도 척척 건네주는 맥스의 센스는 파트너로서 가히 귀감이 될 만하다. 특히 체력이 약한 눅스와 고령의 부발리니 전사들, 부상당한 퓨리오사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몸 사리지 않고 달려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의 몫을 대신하고 가장 위험한 상황을 해결하는 맥스는 이 야만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신사다. 심지어 생색조차 내지 않는다. 

4. 알뜰한 살림꾼이다.
물과 기름은 물론 모든 것이 부족한 세계에서 절약과 근면은 최고의 장점이다. 머리 두 개 달린 도마뱀도 철근같이 씹어 먹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자동차를 가져간 워보이에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맥스는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않는다. 까마귀가 반짝이는 것을 주워 모으듯 무기를 잔뜩 모아놓기도 하는 그는 퓨리오사의 트럭 곳곳에 숨겨져 있던 무기를 챙기고, 무기 농장 주인의 탱크를 날려버린 뒤에도 무기를 잔뜩 짊어지고 오는 와중에 핸들까지 뽑아오며 눅스를 위해 신발 한 짝도 챙겨오는 섬세함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그의 알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눅스의 ‘피주머니’로 연결되어 있을 때 사용한 튜브를 챙겨 어깨띠에 감아두었다가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험해진 퓨리오사에게 자신의 고성능 RH- O형 혈액을 수혈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위생상의 문제는 아쿠아콜라가 해결해준 것으로 하자.


5. 살아남고, 살린다.
왜 굳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세계에서도, 맥스는 살아간다. 손발을 쇠사슬로 묶인 채로도, 좀비 떼 같은 워보이들과 싸우면서도, 간신히 도망쳐 나온 곳이 막다른 절벽이어도 크레인을 향해 뛰어내릴 만큼 그는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불과 금속이 정신없이 부딪히는 자동차 앞에 매달려 피를 뽑히면서도, 모래 폭풍 속으로 끌려들어 가더라도, 임모탄 광신도인 눅스가 불을 질러 자폭 테러를 벌이려 해도 처절하게 이를 막으며 맥스는 살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맥스로 인해 퓨리오사는 목숨을 건지고, 브리더들은 새로운 삶을 찾고, 시타델의 주민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가능성을 얻는다.

6. 상대를 존중한다.
붙임성은 없지만 자신을 해치지 않는 상대와는 괜한 감정소모전을 벌이지 않는다. 맥스는 처음 만났을 때 퓨리오사와 몸싸움을 벌이고 스플렌디드(로지 헌팅턴 휘틀리)에게 총상을 입혔지만, 이내 그들이 위험한 길을 떠난 이유를 이해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유대감을 갖게 된다. 추격해오는 임모탄(휴 키스번)과 용감하게 맞서던 스플렌디드가 트럭에서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 맥스가 슬쩍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순간이 유독 인상적인 것은 브리더들이 그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생사를 함께하는 동지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타델로 돌아가 임모탄의 시체를 군중 앞에 내던진 뒤에도 맥스는 퓨리오사를 부축해 세워 함성을 이끌어내고, 자신은 다시 군중 속에 섞여 사라진다. 퓨리오사와 눈이 마주친 맥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이 관계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7. 잊지 않는다.
맥스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는 악당들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었고,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잊지 못해 망령에 시달린다. 누구의 죽음도 그의 탓이 아니지만 맥스는 자신이 구해낸 사람들보다 자신이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퓨리오사의 말대로 바깥세상은 모두 아프고, 맥스는 그 모든 아픔에 책임을 느끼며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비극에 함께 아파하는 것으로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하며 살아간다. 뒤돌아보지 않고 눈 감아 외면하면 세상의 많은 아픔과 슬픔은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잊지 않는 이들에 의해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은 피어난다. 맥스가 그랬던 것처럼.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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