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 삶은 음식

2015.05.15


여기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남자가 있다. 동트기 전 아침을 먹고 11시부터 안절부절 점심을 기다린다. 음식이 11시 반에서 1분만 늦게 나와도 헛기침을 하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친구 공연에 가느라 저녁이 늦어지자 다른 친구에게 편지를 써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양 호들갑을 떨었고, 손님이 늦자 먼저 식사를 하려 들기도 했다. 그에게 음식만큼 중요한 것은 딱 하나인데, 그것은 예술이고 그의 이름은 클로드 모네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하다못해 달력에서라도 못 본 사람이 있을까? 그의 그림에 대한 책은 많고, 수련 연작의 배경인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책도 적잖다. 그러나 삶은 정원이 아닌 레몬빛 식당과 연보랏빛 거실에 있었다. 그것은 물론 클로드의 삶이었지만, 그 유명한 연못을 직접 돌보기보다는 차를 홀짝이며 바라보기를 더 즐긴 알리스의 삶이기도 했다.

지베르니의 하루 일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갔다. 시간표를 정한 것은 클로드지만 집 안을 실제 관리한 것은 알리스였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클로드는 작업실로 돌아갔고 알리스와 딸들은 거실에 틀어박혔다. 그들은 푸케 사탕, 베르가모트 오렌지 꿀과자, 마르키즈 비올레트 과자를 먹으며 카탈로그를 꼼꼼히 읽거나 뜨개질을 했고,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고 보트놀이를 했으며, 장미풍뎅이를 관찰하거나 라틴어 수업을 받기도 했다. 지베르니에 산다는 것은 발레리의 작품을 정독하는 것이었고, 시든 붓꽃의 꼭지를 따는 것이었으며, 입센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둥 졸라는 싫다는 둥 품평하는 것이었고, 온 세상의 방문을 받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다음 식사 메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이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았다. 그랬다간 당장 야만인 딱지가 붙고 불쌍한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모네는 친구인 휘슬러나 뒤마와 달리 자기 손으로 요리하기는커녕 부엌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남의 집이건 식당이건 맛있는 걸 먹으면 어떻게든 요리법을 알아내 수첩에 적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고는 요리사에게 주문하는 것이다.

요리사뿐 아니라 운전사, 집사, 텃밭 담당, 거기에 여섯 명에 달하는 정원사가 없었다면 모네 일가의 삶은 성립할 수 없었다. 철저히 남의 손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지베르니는 구시대의 쾌락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지극히 쓸데없고 사소한 것에 몰두하는 그들의 사치는 반감보다는 향수를 자아낸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순수하게 낭만적인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 조엘 로뷔숑의 도움으로 재현된 모네 가의 식탁은 모네의 그림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단순히 그림 속 요리나 접시를 따라 한 게 아니라 세팅이나 톤을 거기에 맞춰서 무심히 넘기면 어느 게 그림이고 어느 게 사진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삶은 그림이 아닌 음식이라는 것을 그림 같은 음식으로 보여주는 책이라니, 얼마나 웃기고 멋진가.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44년간 살았다. 알리스와 클로드가 차례로 죽은 후에도 딸 블랑슈가 어찌어찌 전통을 유지했지만 모네의 시대는 결국 끝났다. 하지만 지베르니의 정원은 여전히 온 세상을 불러 모으며 모네의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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