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의 야구│② 김성근이 내 회사 상사라면

2015.05.12

자신이 속한 조직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길 바라지 않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승승장구하도록 조직을 이끄는 강한 리더를 모시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즉 사람들은 자기 회사가 애플이길 바랄지언정 자기 윗사람이 스티브 잡스인 것까지 바라진 않는다. 아마 김성근에 대한 야구팬들의 복잡한 심경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굉장히 많은 이들이 김성근의 훈련 방식과 야구에 대해 비판하지만 또한 자기 팀이 부진에 빠졌을 땐 김성근의 소환을 바란다. 그리고 성과를 만들어낸 김성근은 결국 구단과 불화하며 떠나길 반복한다. 과연 그는 어떤 리더이기에 그토록 뛰어난 성과를 내고 또 그 성과의 크기에 비례해 비판받는 걸까. 만약 그와 같은 리더가 우리 회사에 부임한다고 가정해본다면, 김성근 리더십의 호불호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임 첫날
김성근: 이번에 비룡 상사에 부임한 김성근입니다.
일동: 축!
김성근: 오늘부터 바로 개인 업무 평가 들어갑니다. 면담 준비하세요.
일동: 축무룩.


김성근 감독은 최근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에 부임했을 때도 “오늘부터 어떤 목적을 갖고 어느 목적 속에서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일성했다. 부임 직전 시즌 6위를 기록했던 SK 와이번스(이하 SK)에 부임할 때도 이 팀을 어떡해야 할지 걱정됐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스스로의 리더십을 ‘비관론자의 리더십’이라 부른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완벽하게 준비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결정하는 건 우리 팀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와 정확한 평가다. 포커 게임에서 항상 지는 사람은, 자기 패와 상관없이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만들려는 사람이다.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직원에게
김성근: 최 대리야.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최 대리: 어떻게 하면 될까요.
김성근: 힘을 빼야겠지.
최 대리: 어떻게 하면 힘을 뺄 수 있을까요.
김성근: 당연히 힘을 다 쓰면 빠지겠지. 오늘부터 힘 다 쓸 때까진 특근이다.
최 대리: 대단하신데요. 이미 빠지고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SK 시절 최정의 타고난 타격 능력을 보고 수비 능력만 키워주면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는 하루 1,000개씩의 펑고를 치며 그를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극한으로 몰았고,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공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에서 이를 “극한에 가야 몸에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공을 부드럽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말일까. 혹 혹사 논란에 대한 변명은 아닐까. 하지만 어쨌든 현재 최정은 매년 골든글러브 0순위인 국가대표 3루수가 됐다.

업무상 실수를 했을 때
김성근: 정 과장, 기획서에 오타 냈지? 지금은 한글 하나 오타 낸 거지만, 만약 숫자에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해봐. 기획서나 재무서류에서 0 하나 잘못 표시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몰라?
정 과장: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성근: 됐고, 오늘 썼던 기획서 오타 없이 필사로 100번 써서 가져와. 지우개로 고치지 못하게 보루펜으로.
정 과장: 네?
김성근: 보루펜.
정 과장: 네?


최근 김성근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당일 1회에 결정적 실책을 저지른 정근우와 강경학을 운동장에 남겨놓고 펑고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특히 정근우는 SK 시절 번트 작전을 실패했다가 그날 저녁 번트 500개 훈련을 벌로 받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선수를 쥐어짜는 타입이라는 비판도 종종 받지만, 김성근은 단순히 결과를 위해 선수들을 착복하는 타입의 리더라기보다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상벌 체계를 통해 고강도 업무환경을 유지하는 타입이다. 칭찬을 잘해주진 않지만 강도 높은 훈련은 기회로서 보상하고, 실수에 대해서는 감정적이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대신 훈련으로 엄하게 다스린다. 즉 상도 벌도 끝이 아닌, 더 나은 결과를 위한 피드백의 과정인 셈. 물론 여전히 논쟁적인 요소들은 있다.

노조와 대화할 때
노조: 휴가를 더 주세요! 임금을 올려주세요! 성과급을 올려주세요!
김성근: 좋습니다. 그런데 현행 재계약제도가 몇몇 고액 연봉 사원에게만 유리하게 맞춰져 있는데 왜 여기에 대해선 침묵하는 겁니까?
노조: 침무룩.


결과적 성취를 위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관리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조합은 반목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김성근 감독은 선수협이 온갖 음해와 방해 속에서 힘겹게 창설될 때 선수들을 옹호한 몇 안 되는 야구계 원로였다. 그에게 있어 선수들의 권익과 정당한 보상체제는 자신이 원하는 야구를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선수협에 쓴소리를 할 때는 그들이 선수 전체의 공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다. 그는 현행 FA 제도가 소수 스타플레이어의 잭팟에만 유리하게 짜여 있다고 지적했으며, 전체적인 선수 권익에 더 도움이 될 9, 10구단 창단 문제에 침묵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뒤 비훈련기간 훈련 금지는 자살행위라고 한 말은 분명 너무 수위가 높았지만, 그는 이미 예전부터 비훈련기간의 훈련은 연봉이 낮아서 개인훈련을 하기 어려운 선수들을 위한 것이며 이에 대해 선수협이 좀 더 세밀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파서 회사에 빠질 때
이 대리: 제가 이렇게 오래 회사를 비워도 괜찮을까요.
김성근: 너는 걱정하지 말고 낫기만 해. 내가 책임질게.
이 대리: 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렵다는데요.
김성근: 일본 병원 알아봐 줄게. 넌 낫기만 해. 내가 책임질게.
이 대리: 회사에서 보험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데요.
김성근: 그것도 내가 책임진다.
이 대리: 결혼은요?
김성근: 그것도 내가 책임진다.
이 대리: 자식은요?
김성근: 그것도 내가 책임진다.
이 대리: 보증은요?
김성근: 그건 안 된다.


2008년 여름, SK 투수 이한진은 손가락 끝에 피가 통하지 않는 손가락혈행장애라는 희귀성 난치병에 걸린다. 손가락 그립이 중요한 투수에겐 치명적인 병이었다. 또 혈관 쪽 보험이 안 들어 있는 상황이라 구단에서 병원비를 내주냐 내주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이때 김성근 감독은 혈행장애를 고친 경험이 있는 일본 오사카 병원을 직접 알아봐 주는 한편, 병원비 역시 문제가 되면 본인이 내주겠다고 이한진을 안심시켰다. 아시안시리즈에서는 치료를 위해 이한진을 SK 엔트리에 넣어 일본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는 리더란 자기 사람을 끝까지 지켜내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2013년 나온 그의 자서전 제목은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이다.

회사를 떠날 때
김성근: 비룡상사 여러분, 나는 오늘부로 자진 사퇴합니다. 여러분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 미안합니다.
일동: 오, 캡틴, 마이 캡틴! (일동 울음)


선수협에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김성근은 말하자면 이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는 CEO다. 그에게 중요한 건 구단이 아닌 선수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몸담았던 구단마다 결국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헤어지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김성근 감독은 SK 감독 사퇴 이후 구단이 자신과 선수들을 지켜주지 않은 것이 가장 큰 갈등요소였다고 고백했다. SK의 치밀하고 악착같은 야구 스타일이 비판받자 구단은 팀을 옹호하기보다는 깨끗한 야구를 해달라고 주문했으며, 팀이 우승 횟수를 늘려나갈 때마다 오히려 보상을 줄여나갔다. 그는 최선을 다한 최상의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 조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지옥훈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그를 존경하는 건 단순히 그들이 승리지상주의자여서는 아니다.

그리고 다시, 부임 회식에서
김성근: 독수리 물산에 새로 부임한 김성근입니다.
정 차장: 사…사장님?
김성근: 이렇게 다시 만나네. 차장도 달고? 반가움을 담은 노래 일발 장전!
정 차장: 나~는 흥…브큽느드…


한화에서 김성근과 재회하게 된 애제자 정근우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화의 응원가를 빌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노래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어딘가 울음이 묻어나오는 듯했지만, 아마 김성근이라는 리더를 맞이한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 행복하긴 한데 왠지 슬퍼.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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