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미지의 세계], 희망도 절망도 역겨운 시대의 대결적 초상

2015.05.08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를 것이고 아는 사람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기에, [미지의 세계]를 소개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전자를 위해 설명하면 이는 10대 때부터 겸디갹이란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어두운 필치의 단편만화를 발표해 온 젊은 작가 이자혜가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만화로, 못생겼고 가난하며 구김살이 무척 많은 예-술 대학생 조미지가 겪는 저열한 일상을 다룬다.

후자라면 작품의 내용은 물론 맥락도 빠삭히 알고 있을 텐데, 이것은 당신이 인터넷을 좀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인터넷이야 누구나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미지처럼 인터넷 공간에 자기 정체성을 갈아 넣고 SNS를 통해 또래 인간들과 교류하는, 서울 중심으로 보편화된 20~30대의 특수한 삶의 양식을 가리킨다. 이렇게 삶을 어느 정도 인터넷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터넷 바깥이 물적으로 빈곤한 현실과 표리를 이루어,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가난한데 풍족한 정보를 접하고 자라서 욕구는 높아진” 지금 청춘의 상을 완성한다.

이렇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빈약하기 때문인지, [미지의 세계]의 인물들은 물질적 기반으로 형성되었던 과거의 ‘인간관’으로 보자면 인격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이들은 만화 표현의 일부로 등장하는 SNS 아이디나 맞춤법이 파괴된 말풍선 대사가 말해주듯 거의 쓰레기에 가까워 보인다. 자학, 질투, 자아도취, 불행의 전시, 예술병으로 나타나는 이 세계는 물건은 없고 충전재로만 가득 찬 택배 상자를 연상시킨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이렇게 쓰레기 같은 처지를 비하하는 자전적인 서사 덩어리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발했고 ‘잉여’ ‘병맛’ 등의 이름으로 인류학적 시선 속에 놓이기도 했다. 거기서 나타나는 정서는 주어진 조건처럼 다 같이 쓰레기가 됨으로써 편해지는, 하향평준화의 즐거움이었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이 박탈된 시대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인종이요, 이것이 우리의 스타일이라고. 잘나지고자 혹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노력들은 자기계발 산업에 오염된 환경 속에 이미 포섭되어 있다고. 자학은 속 편한 해방구요,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미지의 세계]도 이 시대정신을 다룬다. 그러나 작품의 야심은 그것을 정확히 묘사하는 데 멈춰져 있지 않다. 이 악조건의 청춘을 겪고 있는 동시에 잘 알고 있을 ‘생활인 이자혜’가 ‘작가 이자혜’라는 장치를 중간에 끼고 미지라는 미숙한 시선을 가진 주인공을 시뮬레이션하는 동안, 그 경험은 디테일하게 재현되는 동시에 상당히 엄격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아진다. 미지는 분명 누군가 속으로 한 번 하지 않았다면 구성될 수 없는 독백을 중얼거리지만 ‘나(작가)도 미지니까 괜찮아’로 등장하거나 ‘(유일하게 채색된 인간인) 미지 정도만 되어도 된다’라는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는다.

즉 [미지의 세계]는 완전히 이입할 수도 없고 완전히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주인공을 디자인하고 그녀에게 최소한의 것(미숙한 시선)만 남겨주는 방식으로 ‘미지 같은 너희들’이 인간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한다. 작가는 그 가능성을 유기하지 않지만 기대는 매우 얕다. 아마도 만화는 독자가 안심하거나 대리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의 정서는 산산조각 나고,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도 존재 가치나 귀여움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추방당한다. (그것은 ‘고두러’의 역할이지 인간의 역할이 아니다.) 기존의 형식들을 모조리 피해가고 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약한 계몽의 냄새를 맡는다. 긍정도 자포자기도 역겨운 시대, 동세대의 일원이 동세대에게 보내는 대결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를 감상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의식이 된다. 나는 만화로 ‘나-독자’를 파견한다. ‘나-독자’는 미지의 세계가 내 주변의 바보스러움과 닮았다고 속삭여 온다. 미지의 눈을 빌려 되풀이된 자조적 일상을 구경한 뒤 나는 현실 어딘가에서 ‘나-독자’가 속삭여 준 그 세계와 닮은 세계를 만난다. 그때 나-독자는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미지에게 일러줄 것이다. 미지는 내가 태그된 사진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묘한 방식으로 내가 놓여 있는 장을 비추면서, [미지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와 그 바깥의 왕복을 유도한다. 그리고 끝내 시선의 미지(未知)에서 벗어나길 촉구한다. 그 출구가 과연 세계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 안은별 기자의 ‘그와 그녀의 책장’은 [미지의 세계]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새로운 필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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