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와 [룸메이트]가 가르쳐주지 않는 [혼자 사는 법]

2015.05.01
[혼자 사는 법] 중 ‘소목장 세미의 방’

영등포 커먼센터에서 진행 중인 전시 [혼자 사는 법]의 풍경은 어딘가 낯익다. 작가 열여섯 팀은 ‘1인 가구’라는 주제의 맥락에서 나름의 작업물을 내놓았고, 각각의 공간은 갤러리이자 방이기도 하다. 원룸용 모델하우스나 가구 쇼룸이라 해도 어색하진 않겠다. 소목장세미는 벽에 걸면 선반이 되는 조명, 해체하면 테이블과 의자로 이용할 수 있는 뜀틀 등 좁은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에 도움이 될 나무 가구들을 가져다 놓았다. 판과 봉으로 방을 구획하고, 그 자체로 가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텍스처 온 텍스처의 ‘정글-집’도 있다. 좁은 방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전시의 의미를 음미하기 전에 이 ‘가구’들의 실질적인 쓸모를 먼저 가늠해보게 된다. 방을 조금이라도 넓게 쓸 수 있을까? 불편하진 않을까? 얼마 정도면 구매할 수 있을까? 부모가 대단한 유산을 남겨줄 수 없다면, 홀로 조그만 방을 2년 단위로 떠돌며 지내는 현재의 삶은 끝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기도 어렵고, 굳이 결혼할 마음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집이 투자 대상이라느니,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느니 하는 말은 지금의 젊은 세대와 거리가 멀다.

가난하다. 또한 가난할 것이다. 하지만 비탄과 자조에 빠져 있거나 부자가 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일은 젊은 세대의 몫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전시 안내문에 붙인 커먼센터의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근미래의 삶은 거의 정해졌습니다. (중략) [혼자 사는 법]은 이러한 비극적 연착륙 속에서 무언가 끄집어내서 바라보기 위한 적극적인 발버둥입니다.” 긍정이 아니라 인정이다. [즐거운 나의 집] 전시 중 ‘확률가족’을 진행했던 옵티컬레이스의 ‘홍대러가 되자’는 좋은 예다. 이들이 준비한 도표에는 빈곤층으로 분류되지 않는 수준(주거비가 소득의 25% 이하)에서 비교적 홍대에 접근하기 쉬운 거주지들이 각자의 소득에 맞게 제시되어 있다. 홍대 앞은 많은 젊은이들이 꿈꾸는 거주지지만, 무리하면서 살 필요도, 그곳에 살 수 없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근거 없는 존재’”이고 “우리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세계([잉여사회]) 앞에서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십 대 중반에 이르면 결혼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차를 사고, 돈을 모아 내 집을 장만하고, 그 집을 적절한 시기에 팔아 더 큰 집을 사는 인생은 언제까지나 모두에게 정해져 있는 루트라고 믿으며 자라왔다. 경험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닥친 전혀 다른 삶의 방식 앞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하다. 1인 가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던 것처럼 폼 나는 독립도, 낭만적인 일상도 아니다. 먹고, 입고, 사는 모든 영역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전혀 새로운 방법을 개척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4인 가족과 중형차 한 대, 32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삶의 표준이던 시대는 사라졌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미디어 역시 1인 가구의 등장에 주목했지만,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에만 매달렸다.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러니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대안가족이 필요하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시작한 SBS [룸메이트]와 올리브 [셰어하우스]는 아예 연예인들을 한집에 모았고, MBC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무지개’라는 느슨한 울타리 안에서 교류하며 덜 외로울 수 있음을 역설했다. 타인과 함께하는 식탁을 지향하는 수많은 ‘집밥’ 커뮤니티도 이러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누군가와 비용 혹은 집안일을 분담하며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드는 일도 아니다. 최대한 건강을 해치지 않고 많이 번거롭지 않은 선에서 어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수납할 수 있을까?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거의 분리되지 않는 방에서 어떻게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것인가? 말하자면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에게 가장 편안한, 집다운 집을 갖기 위한 방법이야말로 1인 가구들에게 절실하다.

[혼자 사는 법] 중 ‘우주만물의 떳다방’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이전과 비교하면 지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당장 죽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벌이에 무심한 집주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피터팬’ 카페와 ‘직방’을 방황하는 나날은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법]은 할 수 있는 한 발버둥 치며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각자 고민하고 모색해보자고 말한다. 전시가 끝난 후엔 전시되었던 가구들이 판매된다. 5월에는 혼자서 잘 해 먹기 위한 부엌 사용법을 제시하는 워크숍, 새로운 가족 패러다임에 맞춰 변화되어야 할 법체계를 중심으로 한 대담 등이 예정되어 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나 결론이 아니라 ‘혼자 어떻게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자 ‘이렇게 살아보자’는 제안, ‘1인 가구로서의 삶에 실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서론이다. 그리고 당장은, 지금껏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겨져 왔던 것들에서 벗어나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 ‘내 집’을 재조립하는 일에서부터 진짜 혼자 사는 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사는 법]에 참여한 ‘우주만물’의 이 말처럼.

“우리는 도미노를 쌓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2년 이상 살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도미노를 쌓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물건을 진열하는 게 아니라 쌓아두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압니다. 우리는 도미노를 쌓습니다. 다만 우리는 대여섯 평의 공간에 가구를 두느니, ‘나’와 친밀한 책과 음반, 그리고 도라에몽을 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도미노의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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