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2]│① 히어로라는 직업

2015.04.28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어벤져스 2])의 오프닝은 거두절미하다. 왜 그리고 어떻게 모였는가에 대한 과정은 생략된 채, 어벤져스 멤버들은 로키의 창을 찾기 위해 스트러커가 이끄는 하이드라 잔당과 전투를 벌인다. 나머지 멤버들이 지상전을 벌이는 동안 아이언맨이 공중에서 요새를 공략하거나, 캡틴 아메리카의 비브라늄 방패에 토르의 망치를 내리쳐 충격파로 적을 공격하는 등, 전술적인 팀워크도 훨씬 능수능란해졌다. 이처럼 [어벤져스 2]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기대하는 액션의 거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제공한다. 이들 슈퍼히어로들은 어벤져스의 이름으로 공공의 적을 공격하는 것에 더는 주저함이 없다. 전편에서 멤버들의 소집과 갈등을 거쳐 중후반부터나 어벤져스 대 치타우리 종족의 전투를 볼 수 있었다는 걸 떠올리면 분명 그들은, 그리고 영화는 변화했다.

실제로 전편 개봉 후 지난 3년 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언제나 유쾌하던 토니 스타크는 뉴욕 사태의 악몽에 시달리며 병적으로 슈트를 만드는 것에 집착하며([아이언맨 3]), 스티븐 로저스는 세계를 통제하려는 하이드라의 사상에 오염된 쉴드를 해체해버렸다([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실재하는 위협 앞에서 영웅은 전쟁을 준비하고, 대테러 국가 기관은 사라졌다. 어벤져스와 하이드라의 거두절미한 전투는 그래서 필연적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누가 하이드라를 상대할 것인가. 전작에서 닉 퓨리의 말대로 “우리는 그들을 필요”로 한다, 여전히.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과 원한다는 것, 그리고 정당화된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 전작이 슬쩍 넘어갔던 슈퍼히어로의 딜레마가 있다. 근대 이후의 국가에선 정부가 폭력을 독점하지만, 슈퍼히어로는 미처 국가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정의로운 폭력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절차적 윤리를 어겼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쫄쫄이 코스튬 혹은 금속 슈트를 입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자신들의 전쟁을 벌이는 게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나마 전작은 초국가적인 적인 외계 종족을 끌어들이고, 국가 기관인 쉴드의 허가 아래서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이 딜레마를 잠시나마 해결했다. 하지만 쉴드는 해체됐고, 적은 어디에서 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슈퍼히어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아니, 슈퍼히어로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것인가.


그래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어야 했다. 코믹스에서 행크 핌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개발했던 이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번 영화에선 지구 방위 시스템을 위해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가 로키의 창을 이용해 만들어낸다. 비록 토니가 스칼렛 위치의 부추김을 받긴 했지만, 지금까지 마블 영화의 흐름에서 울트론의 등장은 필연적일 정도다. 9.11 테러의 은유에 가까웠던 뉴욕 사태 이후 [아이언맨 3]와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는 테러에 대한 두려움과 선제적 방어라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언제 올지 모를 강한 적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어 시스템은 분명 유혹적이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전쟁을 미리 치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사실 단독으로 전투를 벌이는 어벤져스야말로 현재를 일종의 전시 상황으로 가정해야만 정당화될 수 있는 집단이다. 둘 사이에는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울트론 시스템은 지구를 지키는 슈퍼히어로가 결과적 평화라는 목적에만 집착할 때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선택지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인류를 말살하겠다는 미치광이 로봇이 된 울트론과 어벤져스의 싸움은, 그래서 윤리적 딜레마를 짊어진 슈퍼히어로가 고삐 풀린 자신의 모습을 대면한 것에 가깝다. 울트론의 폭주 앞에서 비로소 어벤져스는 자신들이 휘두르는 정의로운 폭력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오프닝의 통쾌한 전투 신과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에게서 어느 때보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이 느껴진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쉴드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울트론의 음모를 막기 위해 비행기 한 대에 몸을 의지한 채 낭인처럼 뉴욕, 와칸다, 서울, 소코비아 등 세계 곳곳을 떠돈다. 어느 곳도 그들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환대해주진 않으며, 어벤져스 역시 그런 대우를 기대하지 않는다. 슈퍼히어로란 어떤 허울로도 공인될 수 없는 직업이다. 머무른 도시를 빠짐없이 쑥대밭으로 만드는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건 본인들의 확신뿐이다. 하지만 울트론을 대면한 그들은 이제 더더욱 확신을 갖기 어렵다. 노동 강도와 위험도는 극도로 높지만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스스로도 자신을 갖기 어렵다. 이것이 슈퍼히어로라는 직업의 고단함이다. 가능한 것은 세 가지다. 지쳐 떨어지거나, 고민을 그만두고 또 다른 울트론이 되거나, 딜레마를 짊어진 채 그럼에도 히어로의 존재 가치를 실천적으로 증명하거나.

이번 [어벤져스 2]의 서사는 그래서 슈퍼히어로라는 존재를 좀 더 근본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정반합에 가깝다. 오프닝에서의 전투가 하이드라라는 초국가적 악당을 통해 어벤져스의 정의로운 폭력을 정당화해주었다면, 울트론의 폭주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주었고, 마지막 울트론 군단과의 전투에 이르러 어벤져스는 영웅과 해악적인 존재를 가르는 가느다란 줄 위에 서서 싸우는 것을 선택한다.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안고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의 과정과 최선의 결과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슈퍼히어로의 길이다. 가끔 영광스럽고 거의 항상 고단하며, 조금만 엇나가면 세상의 비난을 받는 길. [어벤져스 2]가 전작보다 진일보한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이토록 위태위태한 곡예를 긴장감 넘치게 하지만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과 각 사건의 의미는 마블 전작들의 흐름 안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덕후’가 아닌 관객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분석들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세상엔 진입장벽이 높아서 포기하는 작품과, 진입장벽이 높아서 전작과 세계관을 공부하게 되는 작품이 있다. [어벤져스 2]는, 명백히 후자다.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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