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조금 ‘덜’ 외로운 삶

2015.04.24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 [부호들의 나무]를 본 것은 호주 브리즈번의 대형 서점에서였다. 문장에서 몇 개의 단어들을 어떤 기준에 따라 삭제해놓은 책은 내 눈에 몇십 년 전 검열을 당해 많은 문장을 삭제당한 채 세상에 나와야 했던 한국의 어떤 책들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하여 데이비드 실즈는 다른 경험의 기억을 남겼다. 그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나는 여태껏 텍스트, 하이퍼링크, 이미지, 사이드바 광고가 뒤섞인 어떤 웹사이트에서도 이 책만큼 혼란스럽고 다차원적인 읽기 경험은 해본 적이 없다”고 포어의 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한참을 포어의 책이 선사하는 독서의 경험, 작가의 의도와 성취에 대해 쓰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놓는다. 그러고는 단 두 문장 만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앞의 것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자신의 동료, 학생,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곧 또 다른 책으로 훌쩍 넘어간다.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는 이런 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가 좋아하는 책들이 수많은 인용문과 함께 특별한 순서 없이 등장하고, 그의 삶 역시 두서도 경중도 없이 문학과 얽힌 어떤 순간들, 작은 에피소드들로 쓰여 있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와 같은 류의 좀 더 간절한 작가의 고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실즈는 전통적인 플롯을 가진 이야기나, 문학을 업으로 삼은 자로서의 고충, 문학의 숭고함을 찬미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읽는 동안 자기 존재를 잊어버리기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언젠가 반드시 죽을 존재로 살아 있음을 생생히 실감하게 하는 문학을 원하며, 그런 문학들의 다양한 단면을 잇고 또 붙이며 거기에 제 삶을 겹쳐두는 것으로 이 장르를 알 수 없는 한 권의 책을 깁는다.

“콜라주”라는 단어로 지칭된 이 기법은 작가의 세계로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갈등하게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작가를 보고,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을 생각하고, 작가의 끊임없는 혼잣말과 질문을 독자인 자신에게 대입시키게 된다. 실즈는 “자기 자신에게 대꾸”하는 샐린저의 책들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들고, 삶을 더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든다”고 고백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의식 있는 존재”로서의 작가를 발견하고, 자신의 말더듬 증세를 자신만의 문학론으로 승화시킨 작가와 마주할 수 있다. 그와 마주 보고 있으니 조금 덜 외롭고,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이 남아서라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가 칭찬한 포어의 책만큼이나 다차원적인 경험이 된다.

흥미롭게도 이 독특한 독서의 경험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직전까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문학은 데이비드 실즈의 삶을 구했는가? 그가 이 책을 쓰고 또 읽히고자 한 방식대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실즈는 책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이 책 역시 문학론인 동시에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작가의 삶은 문학과 완벽히 분리되지 않으므로 그가 살아 있는 한, 문학은 그를, 그는 문학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문학은 “실제로는” 누구의 삶도 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토록 시시한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으로 인해 완전히 외로움에서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의 삶은, “가까스로” 구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문학이 삶을 구하지 못했고, 구하지 못할 것이라 하더라도 괜찮은 이들의 삶까지도.

* 윤이나 칼럼니스트의 ‘그와 그녀의 책장’은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새로운 필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윤이나
보험과 연금의 혜택을 호주 공장에서 일할 때만 받아본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책도 읽고, 영화와 공연도 보고, 축구도 보고, 춤도 추고, 원고 청탁 전화도 받는다. 보통 노는 것같이 보이지만 쓰고 있거나 쓸 예정이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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