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① 이것이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2015.04.21


옹달샘 이야기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옹달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개그맨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는 지난해 자신들이 진행한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개보년’, ‘창녀’ 등의 여성 비하적 표현과 함께 “성 경험을 숨기지 않는 여자”, “처녀가 아닌 여자”를 조롱하는 대화와 상황극을 통해 혐오 발언을 한 것으로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는 이후 방송분에서 장동민이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는 내용으로 물의를 빚은 뒤 모두 삭제된 바 있지만, 그가 MBC [무한도전]의 새 멤버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장동민은 [무한도전] 후보에서 하차했으며, 지난 1, 2주 동안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말하지만, 이건 옹달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대중문화 영역에서 여성 비하나 혐오의 정서는 진부할 만큼 관습적으로 사용돼 왔다. 유상무와 장동민은 과거에도 tvN [코미디 빅리그]의 ‘절대남자’에서 “명품관 앞에 여자들이 줄을 쫙 서 있어. 다 남자 때문이야. 남자들이 명품 백을 안 사주면 되잖아”라는 내용의 콩트를 연기한 적이 있지만 당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웃자고 한 얘기’에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은 유난스럽다며 오히려 비난받았다.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폭력적 징후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비평적 기능을 수행해야 했을 언론 매체들 역시 안일한 태도로 이를 소비했을 뿐이다. 상시적으로 만연한 폭력을 방치한 결과, 여성을 둘러싼 인식은 점점 악화됐다. MBC every1 [결혼 터는 남자들]에서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한 아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다는 남편의 사연은 가정폭력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남자’의 코믹한 에피소드로 소비되고, MC 김성주는 아내와 싸웠을 때 돌도 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를 허리에 낀 채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너 얘 다신 못 만나!”라며 협박해 눈물 섞인 사과를 받아냈던 경험을 즐거운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이것을 단지 일부 방송인의 경솔함 정도로 넘길 수 없는 것은, 최근 들어 엔터테인먼트 속 여성 차별과 혐오의 발언이 더욱 교묘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라는 금호 타이어 광고 문구를 비롯해 많은 광고에서도 여성은 자신의 몫을 다하지 않을/못할 만큼 이기적이거나 의존적인 대상으로 그려진다. 여성들도 군에 의무 복무하게 된 가상현실을 그린 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군필 여성을 추앙하는 동시에 군 관련 지식이 부족하거나 복무 태도가 미숙한 여성을 ‘무개념’으로 묘사해 효과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MBC [일밤]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 편이 결과적으로 그랬듯, 이러한 콘텐츠들은 자의적 기준에 따른 ‘개념녀’를 걸러낸 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여성을 죄책감 없이 비난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즉 이들 콘텐츠는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 혐오 자체를 마치 정당한 단죄인 양 주장하고 카타르시스를 유도한다. 그리고 “모든 여성을 욕하는 게 아니라 욕먹어 마땅한 여성을 욕할 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일간 베스트 저장소’를 비롯해 온라인에서 주로 여성을 비하하는 데 쓰이는 ‘김치녀’와 ‘된장녀’ 프레임이다. 

금호 타이어 CF의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라는 문구 속에서 여성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존재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옹달샘의 팟캐스트 논란은 그동안 누적되어 온 여성 혐오와 비하가 임계치를 넘어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들의 방송 출연에 대한 항의와 하차 요구는 해당 발언에 대해 분노와 모욕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 표시다. 이를 단지 연예인 개인에 대한 대중의 ‘갑질’로 치부하는 것은 정작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상시적인 약자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였고,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에 따르면 국가별 성 평등 순위 역시 142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117위를 기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된 여성의 숫자는 보도된 것만 114명에 이른다. 2011년부터 3년간의 경찰청 집계 결과, 연평균 6,800명의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검거되었고 이들 중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피해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요소인 것이다. 이토록 비대칭적인 사회에서 명백히 사회적 약자인 대상에 대해, 공개된 영역에서 혐오 발언을 했을 때 그에 따른 불이익은 당연히 발화의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래서 이번 옹달샘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정치적 행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이 책을 쓰면서 스스로도 놀란 점은, 처음에는 재미난 일화로 시작한 글이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을 이야기하면서 끝났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과 농담들이 ‘남성으로부터 명품 백을 뜯어내려 하는 여성’을 소재 삼아 여성 혐오를 부추겨왔는가를 떠올려보자. 그저 재미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번 옹달샘의 혐오 발언 건처럼 윤리적 고민을 외면한 채 이어져 온 재미의 끝이란 참담할 뿐이다. 이 참담함 속에서 일말의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다면, 그동안 재미로 치부하고 묵과해온 여성 혐오가 비로소 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제를 통해 제대로 된 대항의 담론을 구성하는 과정은 지난하다.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그러하듯, 해결이나 개선된 것은 없어도 ‘그만 좀 하라’는 말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짐짓, 더 의미 있고 정치적인 일에 그 에너지를 쏟으라는 조언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옹달샘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또한 엔터테인먼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인권과 존엄성의 문제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이제라도 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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