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② 4월의 TV 속 여성들은 어떻게 그려졌나

2015.04.21

요즘 TV는 여성들에게 지뢰밭과도 같다. 광고, 예능, 드라마를 막론하고 태연히 드러나는 여성 비하와 혐오, 외모에 대한 조롱, 코미디의 탈을 쓴 모욕을 피해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즈]는 4월 1일부터 15일까지 단 2주간 방송된 프로그램 가운데 눈에 띄는 지뢰 일부를 모니터링했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 할지 모르지만, 이 상시적 폭력을 직면하고 해체하는 과정이야말로 여성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문제다.

프리랜서 작가로 근근이 살아가는 백수지(서현진)는 인생의 탈출구로 결혼을 꿈꾼다. “내가 이 우울한 삶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냐? 조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 그거 말고 더 있겠냐? 김치녀, 된장녀라고 욕해도 상관없어. 그게 현실이니까.” 백수지의 바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가 자신을 가리켜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 표현을 부정하지조차 않는 것은, 그 욕망 자체가 대단히 불순하고 저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여성의 입을 통해 왜곡된 프레임을 내재화하게 만든다. ‘김치녀’, ‘된장녀’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젊은 여성의 욕망을 설명하는 것은 그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산E는 자신이 진행한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 AOA의 지민을 편애했다는 비판에 대해 부정하며 “남자들이면 또 상관이 없는데 여자분들은 그런 거에 또 되게 예민하잖아요”라고 웃어넘겼다. 물론 그가 정말로 지민을 편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예민하다’는 일반화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거나, ‘여자어’와 ‘남자어’로 누군가의 발언을 해석하는 것이 때로는 명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각각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문제 역시 여성 집단을 ‘캣 파이트’의 마르지 않는 샘쯤으로 여기며 여성들 간의 갈등 구도만을 강조했던 데 있었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되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돈 없고 인기 없고 가진 것 없는 복학생 병재(유병재)는 남성임에도 상대적 약자인 경우가 있다. 그런 병재에게 몰려와 밥 사달라 조르고, 월세 낼 돈도 없는 그로부터 잔뜩 얻어먹은 뒤 “오빠 같은 남자랑 사귀고 싶다”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멘트를 늘어놓으며 휑하니 가버리는 후배들은 전형적인 ‘무개념’ 캐릭터로 소비된다. 병재에게 상냥하게 대했던 연주(정연주) 역시 남자친구와 함께 그를 비웃으며 “병신은 컴퓨터 버그 잡을 때 말고는 쓸모가 없어”라고 말한다. ‘명품 백 사달라고 들볶는 여자친구 이야기’와 함께 일종의 도시괴담처럼 떠돌곤 하는 ‘남자를 호구로 알고 등쳐 먹는 어린 여자 이야기’는 이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손쉽게 재생산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혐오를 부추긴다. 결국 초능력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간 병재는 같은 상황에서 “다 처먹어, 이 씨 X년들아!”, “(컴퓨터) 껐다 켜, 이 썅X아!”라고 분노를 폭발시키는데, 애초에 그냥 거절하면 될 일이었다.

[마녀사냥]에서 장동민은 옆자리에 앉은 모델 한혜진에 대해 “제가 싫어하는 것들을 모두 갖췄고 혜진 씨가 싫어하는 것들도 제가 모두 갖췄다”고 말했고, “장동민 씨가 싫어하는 건 뭐냐”는 질문에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모든 걸 갖췄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장동민 특유의 과장되고 과격한 농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생각과 말이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는 그저 농담일 수만은 없다. 한 여성은 [마녀사냥]에 성관계 시 자신의 표정이나 소리에 대해 남자친구가 매번 놀리는 것이 불쾌해 화를 내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아 고민이라는 사연을 보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존중 없는 남성의 행동에 대해 남성 패널들은 “나쁜 게 아니라 유치한 것”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였고, 사연을 심각하게 여기는 한혜진에게 서장훈은 ‘자존심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조차 여성의 ‘기분’ 문제로 치부하며 입을 막는 일들이 계속되는 한, 여성들은 더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말해야만 한다.

이른바 ‘떼 토크’ 프로그램에서 나이 든 여성과 어리고 예쁜 여성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경우는 흔하다. 박나래, 장영란 등의 시구 시범에 이어 달샤벳 수빈이 ‘섹시 웨이브’ 시구를 하자 제작진은 “이게 시구지. 그 전엔 다 황사였어”라는 지상렬의 대사와 함께 열광하는 남성 출연자들과 아우성치는 여성 출연자들을 비추며 “언니들 집단 재폭발”이라는 자막을 넣는다. 교양 프로그램 출연이 좋았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해 웃음을 준 정가은에게 “예쁘면 돼요~”라고 격려한 육중완은, 그게 무슨 논리냐며 발끈하는 김효진과 박경림에게 “둘이는 열심히 살면 돼요~”라고 받아쳤다. 그리고 정가은에 이어 김효진이 ‘위아래’ 댄스를 추자 김구라는 “엉덩이 흔들 때, 율동할 때 민망해”라고 면박을 주었다. 김효진은 지지 않고 “당신은 뭐 대중들이 다 좋아해요? 호불호가 있어요!”라고 반박했지만 이처럼 남성과 맞서면서도 비난을 피할 수 있는 포지션은 오직 여성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아줌마’에게만 주어질 뿐이다.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린 여성과 결혼한 남자는 ‘승자’로 대우받고 연상의 여성과 결혼한 남자는 덫에 걸린 양 놀림받듯, ‘사망토론’의 이상준은 아홉 살 연상의 아내를 둔 김기욱에게 “니 와이프는 사십 대고 니 어머니는 오십 대니까 친구잖아”라고 놀리거나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성 방청객을 향해 “장모님이랑 왔나?”라고 물어 폭소를 유도한다. 나이가 아니면 외모다. ‘못생긴’ 외모를 소재로 하는 코미디가 꼭 여자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대개 여성이 눈치 없이 남성에게 매달리고 무시당하는 코드가 사용된다. ‘작업의 정석’ 양세형은 정주리에게 “오징어는 횟집에나 가라”는 말을 반복하고, 주된 내용은 정주리와 부킹한 남성이 계속 도망치는 것이다. ‘썸 앤 쌈’에서 박나래의 카메라에 대한 이진호의 멘트는 “렌즈는 더러운 꼴 다 봤네”다.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희극지왕’에서 무술고수 문규박을 공격하던 이한별은 문규박이 양손을 붙들고 억지로 입을 맞추자 부끄러워하며 도망친다. 성추행이라 할 수 있는 상황 후 문규박의 대사는 “여자는 이렇게 다루는 거야”였고, ‘희극지왕’은 방송 첫 주 1위에 올랐으며, 다음 주에도 똑같은 상황이 등장했다. 여자는 이렇게 다루는 거라고, 코미디는 말한다.

‘성호야~’에서 퉁명스런 남편을 연기하는 김형인은 홍윤화가 뭔가를 타거나 앉으려 하는 순간 홍윤화의 몸을 가리키며 “너 자전거가 아무리 말 못 허는 거시기라 혀도 너 자전거한테 그러는 거 아니여. 너 자동차가 아무리 말 못 허는 거시기라 혀도 너 자동차한테 그러는 거 아니여” 식으로 놀려댄다. 뱃살을 쥐어흔들며 “무식한 게 힘만 세 갖고, 힘이 어디서 나오냐. 여기서 나오냐?”고 구박하기도 한다. 이 대목의 포인트는 그래도 기죽지 않는 홍윤화의 태도지만 뚱뚱한 사람, 특히 뚱뚱한 여성에 대한 조롱과 비하는 가장 진부한 개그 코드가 된 지 오래다. 못생긴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뿌리 없는 나무’의 왕 남호연은 중전 장다운의 등장마다 “오다가 누구한테 맞았나?”라거나 “썩 기분 좋은 인사는 아니다”라며 떨떠름해하는데, 이토록 관성적인 외모 비하 멘트는 심지어 재미조차 없다. 

‘도찐개찐’에서 박성호는 여자 연예인들의 한복 사진 세 장을 차례로 넘기며 “신민아는 아름답고 윤아는 단아한데 이영자는 빽도!”라는 ‘반전’의 효과를 얻어낸다. 그리고 “이영자 선배님 전통적인 한복보단 전통적인 씨름을 추천합니다”라며 그의 체격을 다시 놀린다. 여성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희화화하기도 한다. ‘나미와 붐붐’에서 오나미는 결혼을 앞둔 방청객 커플에게 “축가 불러주길 원하세요?”라고 물은 뒤 긍정적 대답을 듣자마자 “저 닮은 딸 낳길 원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유도한다. 예쁘지 않은 여성 캐릭터는 예쁜 여성 캐릭터와 적대한다. ‘크레이지 러브’의 박지선은 김나희에게 “CO2, 코만 오백에 두 번 한 자”, “GAG, 강남, 압구정에서 만든 가짜 얼굴”이라며 비난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지만, 정작 남성인 서태훈으로부터는 ‘지지’라 불리며 웃음거리가 됐다. 미녀 아니면 추녀의 이분법 사이에서 코미디는 점점 낡아가고 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남자가 피임에 너무 철저해 서운하다는 여성의 사연에 이어, 피임에 철저한 이성을 만났을 때 드는 생각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1위는 ‘에티켓을 갖춘 배려 깊은 사람’이었으나, ‘바람직하지만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다’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보여서 거부감 든다’는 2, 3위 답변이 이어졌고 장동민은 후자에 공감하며 “상대방(여자)이 콘돔을 찾는다거나 그러면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조금 정떨어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덧붙였고, 장동민과 비슷한 입장을 보인 김성주 역시 피임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오창석에게 “사랑을 의심하는 거냐”고 반박했지만 결혼과 임신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중절은 모두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진다. ‘콘돔을 찾는’ 여성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 전에, 피임이 잘못될 경우 상대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생각할 수 없다면 기초적인 성교육부터 다시 받을 필요가 있다.

글. 최지은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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