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③ 루이스 C.K.부터 [VEEP]까지, 여성을 위한 코미디는 있다

2015.04.21

수위가 높거나,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건드리는 코미디는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똑같이 뭉뚱그려 ‘코미디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여성에 관한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단지 성적인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해서 용인해야 할 것, 그냥 웃고 넘길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과 화자의 위치다. 다음은 루이스 C.K.와 크리스 록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부터 드라마 [VEEP]까지, 여성을 중심에 놓되 비하하고 혐오하지 않으며 웃음을 만들어낸 케이스들이다. 옹달샘의 발언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다 보면, 이러한 결과물이 파격적인 코미디에 관대한 미국의 분위기 덕분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거다.
 


루이스 C.K., 여성을 놀리고 싶다면 존중부터
스탠드업 코미디는 토크쇼가 아니라 일종의 캐릭터 쇼다.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루이스 C.K.가 무대를 비롯해 드라마 [럭키 루이], [루이] 등에서 연기하는 것은 철들지 않고 찌질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다. 그는 백인이자 남성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직시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만연한 혐오를 풍자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것은 물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이 드러난다. 신에 관한 루이스 C.K.의 농담은 여성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른다”며 어머니는 어디 있냐, 원래는 신이 여성이었는데 남성들에게 짓궂게 대했던 것 아니냐, 그래서 두려움 때문에 남성들이 지금 여성들을 못되게 대하는 것 아니냐고 한 이야기는, 당연한 듯 통용되는 말에도 뿌리 깊은 성차별이 숨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었다. 또한 웨이트리스와 보낸 하룻밤에 대해 “(성관계를 하려는 도중) 그녀가 멈추라고 할 때 멈췄더니, 다음 날 왜 그랬냐고 물어보더라. 자신은 그럴 때 남자가 강하게 나오면 더 흥분된다고. 그렇다고 나한테 강간에 가까운 행동을 하라는 이야기야?”라는 말로 여성의 거절을 그저 부끄러움의 제스처로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잘못된 성의식을 비꼬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건, 그가 여성성을 무시당하기 쉬운 나이 든 기혼 여성들 역시 ‘여성’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일이 평가받고, 차별당하고, 비뚤어진 성적판타지의 대상이 되는 일은 루이스 C.K.의 코미디와 이렇게나 거리가 멀다.


크리스 록, 여성을 까는 스스로를 까기
별생각 없이 들으면 여성을 비하하는 코미디로 오해할 수도 있다. 경찰에게 맞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여성이 당신에게 화가 난 상태라면 집에 두고 오라, 화가 난 여성이라면 당신이 대마를 갖고 있다고 경찰에게 이를 것이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자신의 잘못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하는 남성들에게 보내는 지독한 농담 같은 것이다. 크리스 록은 성에 관한 코미디에서도 이 방식을 고수하는데, “남성은 돈 관리를 잘 해야 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식이다. 그는 “세상에 어느 남자가 여자한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섹스를 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성기는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비자카드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섹스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일부러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색골에 가까운 캐릭터를 완성한다. 이런 이야기는 국내에서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소위 ‘김치년’, ‘보슬아치’ 등의 저열한 단어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으나, 실은 남성인 크리스 록 스스로 여성을 쉽게 섹스 상대로 생각하는 남성들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무대 밖 현실 세계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유리한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 점을 알고 있는 남성이 무대에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위험한 일도, 불편한 일도 아닌 그야말로 ‘풍자’다. 그래서 크리스 록이 남긴 이 말은 ‘웃자고 하는 코미디에서 그 정도로 여성을 까는 것도 불가능하냐’고 묻는 일부 남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가진 게 제일 많은 놈들은 깔 수 있는 게 제일 적어야 돼. 가진 게 제일 없는 애들은 깔 수 있는 게 많아야 돼. 네가 까고 싶은 게 많잖아? 그럼 네가 가진 거 다 날려버리면 돼. 그게 세상의 이치라고.”


[사우스파크], 여성이거나 말거나
온갖 욕과 혐오스러운 장면이 난무한다. 주인공 카트맨은 ‘Fuck’이라거나 ‘호모 자식’ 같은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며, 친구 카일의 어린 동생을 ‘딜도’라고 부르기도 하는 막장 캐릭터다. 그리고 그 주변의 선생과 부모, 코미디언과 의사, 셰프 등 어른들 중에서도 미쳐 있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다. 때문에 [사우스파크]는 등장인물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한 채 진행되는 위악적인 코미디쇼다. 그러나 이런 막장극인 [사우스파크]조차 여성 비하나 혐오에 동조하지 않는다. 극장판 애니에서 카트맨은 카일의 엄마를 ‘화냥년’이라 칭하며 아예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지만, 그것은 그녀가 단순히 여성이거나 성적으로 방탕하기 때문이 아니다. 캐나다 출신 코미디언 듀오가 아이들이 보기에 폭력적인 코미디를 한다는 이유로 아예 반 캐나다 움직임을 선동하거나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전쟁을 부추기는 등, 한 명의 어른이자 인간으로서 충분히 욕먹을 만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카트맨이 아빠를 찾는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엄마가 마을의 많은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카트맨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러한 이유로 그녀를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진짜 아빠를 알아맞히는 데 열중할 뿐이다. 심지어 [사우스파크]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등장시켜 여성 연예인이기에 죽을 때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관리당하고 사생활까지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비꼬기도 한다. 이런데도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단순한 여성 혐오 코미디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걸까?


[심슨 가족],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들
[심슨 가족]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고 깨우치는 것은 대부분 여성 캐릭터의 몫이다. 가장으로서 무능한 심슨은 매번 양육의 책임을 마지에게 떠넘기기 일쑤이며, 그럼에도 심슨의 아내 마지는 바보 같은 그를 늘 다독이고 용서하거나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자 제작사에 직접 편지를 쓰고 토론회에 출연하며 다른 부모들의 연대를 이끌어냈다. 그와 동시에 개인이 쉽게 바꿀 수 없는 세상에 좌절하고, 어디까지가 외설이며 어디까지가 예술인지에 대한 딜레마까지 고민한다. 마지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캐릭터는 리사다. 온갖 집회란 집회는 모두 참여하는 그는 엄마 마지로부터도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를 듣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리사야말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인 것이다. 예쁜 인형들로 여성들끼리의 정상회담을 가정한 상황극을 하고, 그 와중에 한 인형에서 “우리 남자들을 위해 쿠키를 굽자”, “학교에서 쇼핑을 가르치면 좋겠어”, “나한테 묻지 마. 난 여자인걸” 등 성차별적인 녹음 멘트가 나오자 분노하며 제조공장까지 찾아간다. 마침내 녹음된 멘트는 바뀌지만, 풍성한 금발의 백인밖에 없는 인형의 겉모습은 시정되지 않자 리사는 작은 승리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다. 결국 [심슨 가족]의 여성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고민하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만화가 그들의 실수나 한계를 그려내더라도 의미는 있다.


[VEEP], 비웃을 이유는 많다. 여자라는 이유만 빼고
부통령 셀리나(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은 있지만 제대로 진행시킬 줄은 모르고, 함께 다니는 직원들조차 언제나 실수투성이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간이 아니다. 직원들이 잘못했을 땐 폭언을 일삼으며, 아시아계 주지사에 대해선 “반 중국인이라서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거”라는 둥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싫어하는 비만 관련 업무가 주어지자 ‘뚱뚱한 사람들은 그만 처먹어야 한다, 자제력이 없어서 그렇다’ 등등의 편견을 그대로 노출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자상한 엄마는 결코 아니고, 도리어 대외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할 때만 다정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 [VEEP]의 미덕은 셀리나를 비웃기 좋은 인물로 만들지언정, 그 이유를 여성성에서 끌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에 작품은 그가 부통령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직면하는 딜레마와 불이익에 대해서도 그려낸다. 핀란드의 재정장관에게 성추행을 당하지만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의 면전에서 욕을 할 뿐이다. “그걸 공개하면 정치생명은 끝”이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남자들의 세상” 혹은 “빌어먹을 X의 축”이기 때문이다. 낙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전 셀리나가 직원들에게 한 말은 여성 정치인의 어려움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여자라고 언급하면 안 되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해선 안 돼. 남자들은 그것에 분노할 거야. 그리고 여자들은 여자임을 부정하는 여자에 분노한다고.”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셀리나는 대통령이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일 없이. 그리고 계속해서 사고를 일으킨다. [VEEP]이 지금 가장 흥미롭고 급진적인 코미디인 이유다.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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