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러버스 키스], 섬세하게 포착한 어긋남

2015.04.17

한국에서 평범하게 자란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나의 고교 시절엔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 드물었다.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건 일상의 내용이 아니라 특정한 생각과 감정들인 바, 결국 옛날을 떠올릴 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마음을 움직인 뛰어난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 청춘의 기념비 중 하나인 [러버스 키스]는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일 때조차 아득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읽었다고 기억한다. 아마도 그런 종류의 가슴 뛰는 시간을 가져본 적 없기에 발생하는 미지에의 동경이었을 것이다.

이 만화는 각자 트라우마를 지닌 후지이 토모아키와 카와나 리카코가 서로를 상처 입힌 끝에 연인이 되고, 거의 즉시 물리적 이별을 맞고, 이 사건이 그들 주변에 조용한 파도를 일으키는 초여름의 짧은 시간대를 그린다.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서로를 마주보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누군가를 잃는 경험이다. 이야기는 후지이를 중학교 때부터 동경해 온 사기사와와 그런 사기사와에 반해 먼 곳으로 이사를 온 오가타의 이야기로, 또 리카코를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친구 미키와 그런 미키를 바라보는 리카코의 여동생 에리코의 이야기로 두 번 변주된다. 동성을, 서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실연의 키스는 마주 본 연인의 그것보다 더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등학생의 사랑 얘기는 그 소재만으로도 실패하기 힘들겠지만, [러버스 키스]가 발하는 특별한 빛은 하나의 시간대를 다면체로 깎아놓은 노련한 연출력과 교차하는 사랑의 시선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에서 기인한다. 서로가 서로의 번외편이 되는 세 가지 이야기는 각자가 놓친 부분을 같은 템포로 보완하며 나아가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미스터리인 후지이의 비밀을 조금씩 멀리에서 비춰준다. 그 속에서 ‘그렇게 보였던’ ‘그렇다고 들었던’ 쉬운 감상과 소문들은 다른 방향에서 온 사실들로 이해의 국면을 맞고, ‘내’가 겪은 장면이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으로 되풀이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지 않는 시선의 어긋남만큼, [러버스 키스]는 누군가를 동경하는 시선 속에 정작 그는 포착되어 있지 않은 어긋남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애정과 욕망이 있는 만큼, 착각과 질투와 경멸이 있다. 그래도 이야기가 타인을 바라보는 가장 성의 없는 습관인 ‘소문’에서 시작되어 오랫동안 서로를 미워했던 자매의 화해로 끝났다는 건 이 여름의 초입에 누군가의 감정을 목격한 경험이 그들을 조금 더 성장시켰다는 뜻이 아닐까. 표지 그림에 가려져 있는 주인공들의 눈은 만화 속에서 그렇게 시선의 다발로 만개한다. 각각의 시선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지만, 그 어긋남과 교차를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러버스 키스]는 이야기의 규모를 뛰어넘는 커다란 울림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소녀만화란 인물의 내면이나 시선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는 표현 분야다. 칸과 대사, 그림의 실험을 거듭하며 그것을 물리적 풍경만큼 풍부하게 그리는 기술을 닦아왔지만 그 성취는 어쩐지 저평가되어 왔다. 요시다 아키미에게는 종종(그녀가 [바나나 피시]를 그렸기에) “소녀만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따위의 표현이 따라 붙는데, 조금 애석하게 들린다. 소녀만화라는 정체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요시다 아키미는 소녀만화를 충실히 그려왔고, [러버스 키스]는 그 위대한 성과다.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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