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페디ㆍ룸펜스ㆍGDW, 뮤직비디오 뉴 제너레이션

2015.04.17
뮤직비디오에서 드라마가 가장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해 해외 로케이션을 가고 화려한 세트를 짓는 등 커다란 스케일 자체가 부각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뮤직비디오는 스토리나 규모보다 어떤 아이디어로 어떤 이미지와 캐릭터를 그려낼 것인지에 더욱 집중한다. 덕분에 처음부터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꾸거나 기존 스튜디오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지 않은, 도리어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듬어온 감독들이 출현하고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를 만든 디지페디, MFBTY의 ‘방뛰기방방’을 만든 룸펜스,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를 만든 GDW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아티스트의 이미지, 음악의 정서를 적절하게 배합해 가장 매력적인 모양새로 빚어낼 줄 아는 팀들이다. 뮤직비디오 산업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 디지페디와 룸펜스, GDW의 각각 다른 스타일을 소개한다. 기획사에도 팬들에게도 일단 믿고 보는 이름이 될 세 팀이다.


디지페디, 무조건 무난하지 않아야 한다면
요 몇 년간 주목받은 힙합 뮤지션과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크레딧에는 어김없이 이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Mnet에서 채널 디자인 관련 작업을 했던 원모어타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오로시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한 디지페디는 지금 가장 분주한 팀이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인물을 부각하기보다 전체적인 미장센을 꼼꼼하게 세팅한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소품과 꽉 짜인 한정된 공간, 고정된 카메라 앵글 안에서 인물들은 하나의 소품처럼 활용된다. 디지페디가 만든 첫 번째 뮤직비디오인 다이나믹 듀오의 ‘복잡해’는 펜으로 거칠게 그린 그림 안에서 두 래퍼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W & Whale의 ‘High School Sensation’이나 레이디스코드의 ‘예뻐 예뻐’는 사람들을 픽셀로 만든 게임 속 캐릭터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현실의 흔적이라곤 좀처럼 묻어나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작인 러블리즈의 ‘Candy Jelly Love’ 뮤직비디오에 관해선 그들 스스로 “다른 뮤직비디오와 달리 세트를 최대한 리얼하게 만들었다”([노트폴리오 매거진])고 밝혔지만, 학교처럼 지어진 세트 안에서도 멤버들의 움직임은 인형처럼 절제되어 있으며, 때문에 뮤직비디오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화사한 파스텔빛 색감과 달리 디지페디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처럼 엄청나게 공들인 농담, 혹은 재미있지만 오싹한 악몽 같은 분위기는 이들의 특기다. 컨버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이었던 ‘Peep Show’는 배달부와 그를 방해하는 악당들, 엘리베이터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긴장감을 조성했고, EXID의 ‘위아래’는 호랑이탈을 쓴 마술사가 죽어 있는 모습으로 끝났으며, 샤이니의 ‘Dream Girl’은 나선형 그래픽을 이용해 꿈과 현실의 공간을 멀미 날 만큼 뒤섞어 버렸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봄 사진처럼 뽀얀 화면이 인상적인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조차 소녀와 소년의 로맨스라는 예상된 엔딩을 장난스럽게 피해 간다. 말하자면, 디지페디의 뮤직비디오는 달콤한 동시에 심술궂다. 빤하지 않은 것은 예쁜 화면과 착하지 않은 이야기 사이의 모순뿐만이 아니다. 리듬에 따라 화면 비율을 자유롭게 전환시켰던 진보의 ‘Fantasy’, 스윙스의 ‘줄래’를 거쳐 아예 세로로 연출한 에픽하이의 ‘Born Hater’처럼, 이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해서 시도 중이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끌고 싶다면, 디지페디는 제법 든든한 선택지다.


룸펜스, 퍼포먼스에 힘을 주고 싶다면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코리아 3]를 열심히 본 시청자라면, 룸펜스를 기억해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이 가득 든 수조를 설치한 후, 길어야 몇 초에 불과한 모델들의 움직임을 느리게 재생한 다음 음악을 입혀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낸 비디오아티스트가 바로 그다. 하지만 룸펜스의 작업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국회의사당을 이용한 태권V 프로젝션 맵핑이다. 깜깜한 밤, 국회의사당 외벽과 돔에 거대한 영상을 쏘아 태권V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재현한 이 작품은 누구라도 어린아이처럼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영상으로 현실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그의 작업은 다른 시도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무용수 제이슨 안과 비보이 세계챔피언 더키, 피아니스트 이진욱의 퍼포먼스에 영상을 곁들여 주제와 무드를 한층 더 선명하게 전달하거나, 아우디나 크라이슬러의 신차 쇼케이스에서는 공간을 확장시키는 듯한 프로젝션 맵핑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영상만으로 충분한 스케일과 무게감을 부여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미래의 ‘Get It In’은 시시각각 변하는 그래픽 벽 앞에서 달리거나 칼을 휘두르는 윤미래를 조명하며 영화 [킬 빌]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으며, 비의 ‘30 Sexy’와 인피니트의 ‘Last Romeo’는 어두운 세트에서 최소한의 빛을 이용해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실루엣을 돋보이게 했다. 룸펜스가 강한 퍼포먼스에 특화된 감독이라는 사실은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상남자’와 ‘Danger’는 모두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하실이나 창고 같은 장소에서 거친 카메라 워킹으로 멤버들의 군무를 담아낸다. 이러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방탄소년단은 말 그대로 상남자 같은 보이 그룹의 이미지를 더욱 확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셈이다. 어떤 식으로든 강렬한 에너지가 드러나는 건 룸펜스가 연출한 모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타를 치며 힘차게 점프하거나 벽을 부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노래가 말하는 사랑의 설렘을 전달하고(조용필 ‘Hello’), 놀고 웃고 장난치는 멤버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섹시하고도 건강한 걸 그룹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스피카 ‘Tonight’, 씨스타 ‘I Swear’). 그래서 음악과 가수들은 룸펜스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넘치게 빛난다.


GDW, 영상으로 패션화보를 찍고 싶다면
GDW 스튜디오의 대표, 김성욱의 이력은 독특하다 못해 낯설다. 스케이터이자 프로 스노보더, 비디오그래퍼로 활동하는 그가 주로 찍어온 것은 당연히 보드에 관한 영상이다. 그 외의 작업 중에서도 매거진 패션필름과 브랜드 광고, 프로모션 영상의 비중이 큰 편인데, 현재까지 만든 몇 편의 뮤직비디오는 아주 특별한 스킬을 뽐낸다기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인상이다. GDW가 현대카드 뮤직과 함께 진행한 뮤직비디오 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늘과 풀밭, 나무 등 소품이나 세트가 아닌 풍경이 지닌 그대로의 색감을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살려내고, 걸어가며 노래를 하는 뮤지션의 움직임을 천천히 따라가는 등 비교적 자연스러운 연출이 돋보인다. 컷 전환이나 재생 속도 또한 종종 느려진다. CG와 정글처럼 꾸며진 세트가 눈에 띄는 레드벨벳의 ‘행복’ 뮤직비디오야말로 GDW의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인 작업이라 할 만하다.

그것이 곧 어색하거나 미숙해 보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과장된 꾸밈없이 간결하기에 세련된 스타일에 가깝다. 최근 공개된 프라이머리와 오혁의 ‘Bawling’ 뮤직비디오는 도시의 광경을 비추고 그 곳곳에서 노래하는 오혁의 모습을 담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세련된 음악의 정서를 잘 살려낸다. 그리고 수영장 옆에 누워 노래를 부르거나 여유롭게 스포츠카를 운전하고(가희 ‘It’s Me’), 기타를 든 채 포즈를 취하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태민 ‘Danger’) 뮤직비디오 속 가수들의 이미지는 한 장면을 오려내면 그대로 패션 화보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이국적인 풍광은 그 자체로 화보의 좋은 배경이 되며, 바람에 흩날리는 레드벨벳 멤버들의 금빛 머리카락이나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은 정지된 한 장의 사진처럼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더불어 점점 타오르는 불과 랩몬스터의 격정적인 랩을 교차 편집한 ‘각성’ 뮤직비디오도 한 컷의 이미지로 요약되는 것이다. 음악의 장르나 가수의 경력에 관계없이 패션 화보처럼 근사한 영상이라면, 가수에게는 물론이고 보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캡처해 간직하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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