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기 자리에서 세월호의 짐을 나눠 진다는 것

2015.04.16

설마, 라고 생각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보며 완성한 의문형의 문장들에는 언제나 설마, 라는 부사가 붙었다. 설마 배가 저대로 침몰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저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실종자를 다 찾지도 못했는데 세상의 관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설마 저 부모들의 서러운 눈물과 호소가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겠지? 설마 단식 중인 유민 아빠를 저렇게 방치해두는 건 아니겠지? 설마 1년이 지나도록 그날의 진실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밝혀지지 않는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고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데 설마, 세월호가 잊히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때마다 설마, 라는 말로 예측하던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기대는 붕괴한 마지노선처럼 끊임없이 후퇴했다.

지난 1년 동안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들었던 건 그 때문이다. 속보 경쟁이 되어버린 현재 포털 중심의 매체 시장에서 종종 잊히는 사실이지만, 매체가 어떤 팩트와 의견을 독자에게 굳이 전달하는 것은, 그것이 공익에 기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허세 같지만, 아주 간결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쓸 때조차 기자는 이 문장이 왜 독자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나름의 당위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기사나 비평의 문장도 스스로의 지성과 윤리의식을 뽐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릴 터다. 하지만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그 이후 세월호에 대한 정부와 동료 시민 일부의 부정적인 반응 앞에서, 사건이나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할 때 전제되었던 당위적 명제들은 과연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공유되고 있던 것인지 의문에 붙여졌다. 배는 가라앉았고, 문장은 부유했다. 그렇다면 이 글들이 결과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300여 명이 물속에 가라앉는 걸 목격하고도 배우는 게 없는 나라에서 글을 통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란 어렵다. 만약 기사에 주문과도 같은 힘이 있어서 쓰는 만큼 실종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면, 몇 날 밤을 새워서라도 수백 매의 원고를 썼을 것이다. 글의 날카로움이 실무자들의 가슴을 찔러 세월호 진상 조사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면, 문장 하나하나를 밤새 붙잡고 벼렸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설마의 마지노선이 붕괴하는 상황에선 당장 어떤 전제들 위에서 문장을 세울 수 있을 것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대한 글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때도, 프로야구 오심을 이야기하며 무능한 시스템을 비판할 때도 언제나 세월호를 염두에 뒀지만, 이젠 존재하는지 자신할 수 없는 공감의 가능성에 호소하는 것에 그쳤다. 가능한 건 두 가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젠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당위의 언어들로 작품이나 현상을 비평하며 글 안으로 도피하거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설마의 마지노선을 다시금 복구하는 데 힘을 보태거나. 대충 맞는 말만 하면 지킬 수 있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은 훨씬 근본적인 지점에서 시험받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글 쓰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 말했다. 말한 맥락과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그 말 자체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에 대한 믿음, 사회적 합의에 대한 믿음, 소통의 전제들에 대한 믿음,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어떻게 그 이전과 같을 수 있겠는가. 이 폐허 앞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2014년 4월 16일 이전에는 이러저러한 공약들의 표지판을 보고 ‘그래서’ 규범을 따랐다면, 이후에는 그 표지판들이 망가진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찾아내야 했다. 이전에는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면, 이후엔 희망의 근거를 자기 발밑에서부터 다져야 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세월호를 둘러싼 가장 커다란 정치적 의제인 진상 조사조차 이 거대한 숙제의 일부일 뿐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양심을 가진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세월호를 지고 간다는 것의 다른 말이 되었다. 만약 세월호 이후 시민사회가 다시 공통의 언어로 연결될 수 있다면, 아마도 같은 짐을 나눠 진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의 글쓰기 역시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함께 짐을 나눠 지는 것으로서의 글쓰기는 그다지 돋보이거나 특별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협업의 결과로 끝 간 데 없이 후퇴한 믿음의 전선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밀 수 있다면, 이 글쓰기는 과거의 어떤 화려한 미문보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지금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짐을 나눠 진 당신의 실천이 역시 그러할 것처럼.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