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오늘의 창작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15.04.16

오늘은 4월 16일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창작해야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지난 1년이 그들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우리에게 정녕 붙잡고 변화시킬 세상이란 있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됐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우리는 참 불쌍한 국민이라고.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지켜주지도 못하는 국가의 무심함과 무능함을 알아챈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지금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거기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승환(뮤지션)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몇 개월 동안 우울했다. 그런데 그걸 글로 쉽게 정리해버리는 순간, 뭔가 잊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고민이기도 했던 거다. 당연히 그 전과 그 후의 내 삶은 달라졌고, 내가 소설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지겠지. 지금 쓰고 있는 장편 소설에서 구체적인 사례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죽음 앞에 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될 것 같긴 하다. 그 과정에서 분노의 원인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떻게’인지는 시간이 좀 지나야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나 스스로 이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해보는 과정이다. 다만 말을 하는 사람은 말로 추모를 할 테고,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글로 추모를 해야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자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김중혁(소설가)

“작년 9월에 공연된 [먼데서 오는 여자]는 원래 구상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4월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우리 사회의 태도가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를 다루는 정부나 잊지 않겠다 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대중에 대한 분노도 생겼고. 하지만 그들을 직접적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런 시각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를 작가로서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50년대 전후 세대 두 남녀를 통해 한국근현대사와 12년 전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다루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대한 냉정을 잃지 않고 작업했다. 그런데 쓰면서도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대구지하철화재와 세월호가 어쩔 수 없이 겹치면서 관객들에게 뜨겁게 다가간 면이 있지만, 지난 3월 안산 재공연에서는 불과 6개월만에 관객의 태도가 차갑게 변한 것이 느껴졌다. 참 씁쓸했지. 길게 봐서는 앞으로 이런 글을 쓰지 않게 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회적 문제를 멀리 두지 않을 거다. 대신 그 방식에 있어서는 즉물적이고 직접적이어서는 안 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삼식(극작가)

“세월호와 함께 한 지난 일 년은 우리가 ‘국민’이 아니라, ‘난민’이었음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정상적인 ‘국가’라고 보기엔 수상한 일들이 너무나 산재해 있었는데, 알량한 투표용지 몇 장에 그 동안 신기루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국가 공공성의 기본은 국민의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공성은 경제라는 껍데기로 위장한 투기장에 불과하다. 우리의 공인들은 결제권이 생기면, 세금이 자기 돈인 줄 안다. 국민은 세금을 내지만, 언제나 생명이 위태롭다. 당신이 내는 세금은 당신의 생명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지난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홍보해 준 [국제시장]은 우리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전쟁과 파독광부와 베트남전을 거치면서도 한 번도 국가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아버지. 미안하지만, 존경할 수가 없다. 적어도 자식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는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영화는 자기 가족을 지킨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할까? 지금 그런 아버지들이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하루같이 보내고 있다. 우리는 정확히 ‘난민’이다. 나의 연극은 ‘난민의식’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김재엽(작․연출가)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땐 당연히 모두 구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뉴스에 기울어진 배의 모습이 나오는 걸 보면서, 배 안의 아이들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 그림이 연상되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어른의 말만 믿고 있다가 살 기회를 영영 놓쳐버린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라서 지금도 그 영상을 보면 눈물이 난다. 유족들이 말하는 걸 보면 또 눈물이 나고. 솔직히 말해 과연 드라마를 하는 입장에서 이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나 자신부터 너무 힘이 들었으니까.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힘들어서 빨리 잊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그러려면 이 사건의 전말이 다 밝혀지고 해결되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1년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세월호를 내 창작의 원천으로 삼지 못하겠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만약 이 화두로서 서사를 만들어낸다면 다시 아픈 상처를 들춰보는 느낌으로 해야 할 텐데, 만약 자기 작품 안에서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김원석(드라마 감독)

“크게 웃거나 즐거워하다 덜컥 이래도 되나 싶었던 날들이 지나고 무심하게 하루를 사는 사이 1년이 지났다.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를 품은 가족들의 반대편에 피로감과 수상한 음모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세월호 특별법만큼 또 염려스러운 건 타인의 고통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세태다. 잊지 말아야 하고 부릅뜨고 봐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이렇게 목격한 바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이길 소망한다.”
윤태호(만화가)

“음악은 사람에게 어린이의 마음을 갖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플 땐 눈물을, 기쁠 땐 웃음을, 화날 땐 분노를. 이처럼 음악은 다양한 사람들의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이다. 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음악이 얼마나 큰 희생과 신념을 필요로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세월호 사고 1년이 지났다. 난 훗날 딸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야 할까. 아이의 눈을 볼 수 있을까. 침묵하던 나 또한 동조자였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현실에 기대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지 못한 내가 과연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생각하면 수많은 질문과 먹먹함과 자괴감이 날 아프게 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비겁한 어른 작곡가 나부랭이가 되어버린 나를.”
김형석(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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