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작사가가 뽑은 아이돌 가사 BEST 3

2015.04.09
작사가 김이나가 최근 낸 책의 이름은 [김이나의 작사법]이다. 어떤 수식도 없이 오직 ‘작사법’이라는 말만을 붙여도 되는 작사가. 다시 말하면 조용필과 아이유와 브라운아이드걸스와 동방신기의 노래에 작사를 하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노래에는 거의 반드시 그가 쓴 노랫말이 섞여있다. 그래서 부탁했다. 작사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아이돌 그룹의 좋은 노랫말 셋을 뽑아달라고. 상업적인 제약이 있는 아이돌 그룹의 곡에서는 더욱 작사가의 역량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리고 김이나 작사가가 보내온 글은 가사 한 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기는가에 대해 알려주었다.


‘봄 사랑 벚꽃 말고’ - HIGH4, 아이유
싱어송라이터들은 전문 작사가와 달리 모든 가사가 ‘자신’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된다는 점에서 상업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곡과 가사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기에 이거다 싶은 한 줄이 나오면 멜로디라인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잘 나온 싱어송라이터의 자작곡은, 전문 작사/작곡가가 만든 그것과 비할 바 없는 완성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멜로디에 관여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곡에 가사를 붙이는 일은 아무래도 작사만 해온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 상업성 또한 더 잘 훈련되어 있다. 아이유가 가사를 쓴 HIGH4의 ‘봄 사랑 벚꽃 말고’는 그런 점에서 놀라웠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전문 작사가 둘 다를 할 수 있다는 능력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예전엔 겨울이 앨범 비수기였다. 연말에는 시상식 등 ‘새로 나온 음반’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힘들고, 머라이어 캐리 등의 스테디 음원이 게임으로 치면 ‘네임드 몹’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봄이 그렇다. 우선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과 로이 킴의 ‘봄봄봄’이 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봄캐롤’들이 어지간한 신곡보다 파워풀한 게 요즘 봄의 음원차트의 실상이다. 나조차도 봄에 나오는 노래 가사를 의뢰받은 경우 봄, 벚꽃을 피하느라 여간 머리 아픈 게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피하기엔 ‘봄’만큼 사람 마음 간질이기에 좋은 테마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즌에는 경쟁률을 불사하고 ‘봄노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모든 상황을 계산하는 것은 ‘전문 작사가’나 ‘제작자’만의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유가 가사를 잘 쓴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신인 팀이 데뷔하기에 이토록 모든 조건을 가진 테마를 뽑아낼 수 있는 기획마인드까지 갖추었을 줄은 몰랐다. 이 가사는 ‘봄, 사랑, 벚꽃’이라는 모든 상업적 테마를 아우르는 동시에 그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홀로 빛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불리한 상황들을 역으로 이용한 셈이다. 심지어 아이유 작사/작곡인 줄 알았을 만큼 멜로디에 가사가 찰싹 붙어 있기까지 하다. 이 곡은 작년 봄에 발표되었고, 올 해 차트에서 ‘봄 캐롤 네임드 몹’ 중 하나가 되었으니 이 가사가 단순히 ‘아이유’가 작사하고 피처링해서 사랑받은 노래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HIGH4는 아이유를 데뷔시킨 최갑원 프로듀서가 제작한 팀이다. 내가 아는 아이유는 은혜를 50배로 갚는 까치이다. 나는 그런 그의 성향이 이 가사에서 느껴진다. 그가 제작하는 팀이 잘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마 본인의 노래 가사를 쓸 때보다 고민했으리라.


‘공허해’ - 위너
이 노래를 듣고 나는 당연히 타블로나 테디, 지드래곤 등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날고 기는 아티스트의 가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곡의 작곡가인 PK의 이름이 작사가 명단 중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렇게 놀라울 일은 아니었을 테다. 내가 이 가사를 ‘기존의 YG 선수들이 썼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름 아닌 ‘공허해’라는 훅(hook) 탓이었다. ‘공허해’라는 말이 가진 발음 특성은 훅으로 쓰이기에 아주 좋다. 나는 “공.허.해.”라고 또박또박 부르지 않고 “공 uh eh”라고 발음을 흘리는 듯 부르는 것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저 멜로디에 세 음절의 다른 말을 붙여서 불러보면, 지금만큼의 매력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각자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사가 붙기 전 작곡가가 붙여놓은 가이드 버전에는 그 부분이 어떤 말로 불리워져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왠지 “don’t worry”가 아니었을까 유추했다. 가사 중에 “공허해”가 반복되는 멜로디에 “don’t worry”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부분이 가이드에 있었던 가사고, 그 어감 특성을 유지하되 다른 표현을 찾아서 “공허해”를 찾아낸 게 아닐까 싶다. 종종 중요한 부분에서 따로 노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반복되는 말이 있다면, ‘가이드에서의 그 느낌을 반드시 살려야 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것을 살리면서 맥락 또한 자연스럽게 푸는 것이 프로 작사가의 일이다. 따로 논다는 부분이 느껴졌다면, 그 둘을 충족시키기 어지간히 어려운 곡이라 아무리 많은 작사가에게 의뢰해도 그게 최선이었다는 뜻일 테다. 멜로디에 딱 달라붙어 있는 좋은 훅을 갖춘 가사는 대체로 그 곡의 작곡가가 가사를 동시에 썼을 때 자주 있는 일이다. 용감한형제(씨스타 ‘있다 없으니까’, 포미닛 ‘이름이 뭐에요’ 등)나 신사동호랭이(EXID ‘위 아래’, 포미닛 ‘Muzik’ 등)의 곡들의 가사들이 유난히 멜로디와 가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중독성을 갖게 되는 힘은 그래서이다. 

이 곡의 작사 정보를 찾아보니 위너와 아이콘의 멤버들이었다. 그 중 아이콘의 B.I가 작곡에 참여한걸 보니 ‘공허해’라는 훅은 B.I의 작품일까? 어쨌든 이런 식으로 갓 데뷔한 팀이 벌써부터 자작 가사에서 프로 작사가의 스멜을 풍기는 것은, 나로선 참 불안한 노릇이다.


‘유리구슬’ - 여자친구
신인 걸 그룹에게 가사를 요청받을 때 회사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는 경우 내가 늘 묻는 질문이 있다. ‘소녀시대 계보인가요, 2NE1 계보인가요?’ 이것은 팀 정체성이 반드시 그들과 닮아 있느냐를 떠나서, 걸 그룹으로서 지향하는 포지셔닝이 ‘소녀’ 쪽인지, ‘당당하고 센’ 쪽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질문이다. 그들이 제2의 누구누구를 표방하려 한다는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전자의 경우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팬시함’이다. 소녀감성을 소비하는 리스너들의 취향에 맞게 하는 것이 1차 목적이고, 그 취향을 기반으로 남성 팬을 흡수할 수 있는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 2차 목적이다. ‘팬시함’은 자칫 잘못 다루면 촌스러운 소녀감성이 될 수 있기에, 37세의 작사가로서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러블리즈 데뷔곡 ‘Candy Jelly Love’를 그런 계획 하에 썼다. 이를테면 가사의 내용이 어떤지를 떠나서 말랑말랑한 촉감과 파스텔 톤의 색감, 부딪히면 예쁜 소리가 날 것 같은 것들이 떠올려지는, 뭐 그런 단어들을 최대한 수집해서 만들었다. 아이돌그룹의 가사는 때론 내용보다 뮤직비디오와 붙었을 때 풍기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구슬’이란 그런 목적성에 가장 부합하면서도, 자칫 잘못 풀면 진부하거나 촌스러워질 수 있는 테마다. 일단은 곡에 끌려서 들었고, 그 다음 가사를 보았다. 나는 작사가이지만,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식으로 노래를 감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단 곡에 끌려서 듣고, 가사는 대체로 나중이다. 이 테마를 어떤 스토리로, 어떤 캐릭터로 풀었을지 궁금했다. 곡과 어우러져 언뜻 그려지는 이미지는 좋지만, 가사의 디테일을 보면 어딘가 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못된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사는 들여다보니 더 좋았다. ‘깨질 것만 같은 연약한 소녀’로 풀었을 거란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내가 그렇게 연약하지만은 않아-라는 것이 골자였다. ‘팬시한 이미지’와 ‘그렇지만 알고 보면 씩씩하고 건강한 캐릭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팬시함은 주로 캐릭터를 여리여리하게 만들지만, 마냥 여리여리만 해서는 요즘 ‘여성 리스너’를 사로잡기 힘들다. 이 가사는 팀 이미지와 남녀 팬덤을 모두 공략할 수 있는 요건을 두루 갖췄다. 처음엔 이렇게 예쁜 가사의 작사가들이 남자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놀랐지만, 그래서 남자들의 호감을 잡는 디테일 또한 본능적으로 나온 거구나 싶었다. 

나는 대중을 1차적으로 사로잡는 것은 곡이지만, 정들게 해서 롱런하게 만드는 공은 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인 팀들의 신곡들이 쉽게 ‘광탈’해버리는 요즘, 이 곡의 순위를 보아하니 나의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글. 김이나(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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